노 대통령도 대표단 방북 전날인 지난 13일 6자회담 복귀를 위한 김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하고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내용의 ‘구두 메시지’를 정 장관 편에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김 위원장은 정 장관의 제안에 대해 남북관계 복원에 동의하고 6자회담 복귀 등에 대해서도 긍정적 입장을 보인 것으로 통일부 관계자는 전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 장관이 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김 위원장을 면담한 만큼 국내 정치 등과 관련된 민감한 대화도 오갔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5년 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약속한 서울 답방 문제와 관련해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주고 받았는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핵 문제 등의 원만한 해결을 전제로 언제든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여러차례 표명한 바 있다. DJ도 최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반드시 성사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직접 특사역을 맡을 것”이란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등 야권은 노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가 오래전부터 2차 남북정상회담을 비공개로 추진하고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집권 중반기에 접어든 현 정부가 각종 악재로 총체적 위기상황에 몰려 있는 만큼 정국반전을 꾀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물밑 추진하고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의 정상회담 카드는 17대 총선을 힙쓸고 간 ‘탄핵태풍’에 버금갈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 장관이 김 위원장을 단독 면담한 것과 공개되지 않은 대화 내용에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정 장관이 어렵게 김 위원장과 면담한 만큼 서울 답방 등 정상회담과 관련한 자신의 의중 내지는 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특히 정 장관이 여권내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상회담 카드는 정국주도권을 장악하는 동시에 자신의 대권행보를 유리하게 이끌수 있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여권내 또다른 차기주자인 김근태 복지부 장관이 입각 과정에서 통일부 장관직을 은근히 기대했던 것도 대권 손익계산서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여권이 처한 총체적 위기상황 돌파 플랜과 자신의 대권입지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 사냥에 나선 정 장관이 김 위원장과의 밀담을 통해 어떤 선물보따리를 건네 받았는지 남북관계 해법과 맞물려 향후 대권구도에 적지 않은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대권주자 김정일 면담 경쟁, 김정일 만나야 대권이 보인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났다. 남북관계의 주무부처 자격이지만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라는 점에 두 사람의 만남은 더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정 장관은 그동안 북으로부터 냉대를 받아와 이번 6·15남북정상회담 5주년 기념 대축전 참가시 북에서 어떤 대접을 받게 될 것인지 정치권은 큰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북한은 “북쪽 땅을 한 번도 밟지 못하는 통일부 장관이 될 것”이라며 냉대했던 예전과는 달리 서열 2위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단독 면담에 이어 김 위원장까지 만나는 환대를 받았다.
당내에선 “정 장관이 소원 성취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남북관계에 진전이 없어 자칫 차기대권을 위해 그토록 원했던 통일부 장관직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우려감이 컸던 정 장관 진영은 무척 고무된 표정이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통일부 장관직을 놓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며 당 안팎의 비난도 들었지만 그 성과가 이제야 나왔다는 것이다. 반면 김 장관 측은 통일부 장관직을 맡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모습이 역력하다. 그 만큼 김 위원장과의 만남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차기대권주자들은 북핵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며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원하고 있다. 김 위원장과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인연“이 돼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정 장관이 만남을 갖기 이전까지 차기 대권주자 중에서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유일하게 김 위원장과 만나 회동을 가졌다. 박 대표는 지난 2002년 5월 13일 유럽-코리아 재단 이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을 만났다. 이날 만남이후 박 대표는 종종 대북특사로 거론되고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 만남의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홍성철 anderia1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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