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검찰에서 보고 있는 외화유출액은 대략 200억달러(약 20조원)에 이른다. 검찰은 이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영국 런던에 소재한 BFC(브리티시 파이낸스센터)로 보고 있다. 이곳이 대우가 ‘세계경영’을 추구했던 만큼 지구촌에 산재해 있던 수백 개 공장과 현지법인들을 하나로 묶는 자금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2000년 3월 중순 대우그룹 분식회계조사를 맡은 금융감독원은 회계사를 비롯한 전문가 7명으로 구성된 특별팀을 런던으로 긴급 파견했다. 이 팀의 반장은 이성희 국장이 맡았다. 이들은 런던 서쪽 외곽에 있는 히드로 공항에서 북서쪽 미들섹스에 있는 (주)대우 런던 현지법인을 찾아가 직원들의 저항을 물리치고 회계장부 등 일체의 경영서류를 확보했다.
확보한 자료를 긴급 공수한 금감원은 수개월에 걸쳐 BFC 장부를 정밀분석했다.그래서 나온 것이 ‘BFC 항목별 손익요약표’. 이 문서에는 1996~99년까지의 BFC의 입출금내역이 정리되어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1996년 59억 9,000만 달러(당시 환율로 5조 600억원)였던 BFC 입출금거래액이 1999년엔 76억 9,000만 달러(8조8,000여억원)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금감원은 8조원이 넘는 이 돈이 본사 회계장부에 한 건도 기재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이 자료를 근거로 검찰은 “대우가 BFC를 통해 매년 5~8조원씩 4년 동안 25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분식했다”고 발표했다.
사라진 8조 8,000억원 어디로
금감원이 확인한 결과 BFC로 들어온 돈은 현지법인이 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차입금이 대부분이었다는 것. 이 돈도 본사 장부에는 기재하지 않은 부채(부외부채)였다. (주)대우 본사로부터 차입했거나 대우자동차 현지법인, (주)대우 건설부문에서 입금된 자금도 있었다. 결국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김 전 회장을 상대로 외화밀반출 혐의를 적용했다.당시 이 조사에 참여했던 금감원 관계자는 “BFC 회계장부에는 대우차 관련 출금이 가장 많았는데, 해외 법인 지원이나 손실보전 항목의 돈이 13억6,000만 달러에 달했다”고 회고했다. 금감원과 검찰은 이 자금 중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돈이 전체의 10% 정도에 이르는 7억5,000만 달러(우리돈으로 약 7,000억원)에 이르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러면 BFC는 무엇인가. 검찰 조사 이후 BFC는 대우의 비자금 창구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김우중 전 회장의 변론을 맡고 있는 석진강 변호사는 “BFC는 (주)대우가 런던에 개설한 계좌를 통칭하는 이름이다. 외환관리법상 절차를 밟지 않았지만 (주)대우의 감독 아래 있었고 회계처리도 확실했으며, 비밀계좌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BFC는 대우그룹의 ‘역외은행’격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 계좌는 난마처럼 얽힌 수만건의 거래관계가 담긴 김우중 회장의 비밀장부였다. 대우가 BFC의 실체를 비밀에 부쳤던 이유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BFC가 대우사태와 함께 위기를 맞게 된 것은 1998년 10월경 이곳의 책임을 맡고 있던 L모씨가 교통사고로 폴란드에서 사망한 것이 발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BFC를 4년 이상 이끌었던 L씨가 금융기관 관계자들을 데리고 폴란드 FSO 자동차공장을 방문하던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S씨가 이곳을 책임졌다. 그러나 BFC의 금융인맥과 관리 노하우가 일시에 붕괴된데 따른 후유증으로 BFC는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검찰 조사결과 BFC는 (주)대우가 허위 또는 이중 수입서류를 작성해 은행에서 빌린 25억7,300만 달러를 고스란히 넘겨받았으나, 자동차 수출대금 17억 8,000만 달러를 국내로 들여오지도 않고 바로 BFC로 넘긴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계좌에는 대우그룹 계열 해외법인이 한국정부의 허가없이 빌린 20조 7,000억원 등 26조4,000억원이 BFC로 입금된 것으로 드러났다.대우그룹 고위임원 출신들은 BFC는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비밀조직’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BFC는 지난 1981년 (주)대우 런던법인의 금융파트가 설치한 텔렉스코드의 이름이었다는 것. 당시 본사와 지사간의 주요 통신수단이었던 텔렉스를 이용하기 위해 부서별 텔렉스코드가 필요했고, 런던 금융팀은 코드명 ‘BFC’를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나중에 BFC는 (주)대우가 체이스맨해튼 등에 개설한 해외계좌 또는 그 계좌를 관리하는 조직을 총칭하는 것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BFC가 부서별 텔렉스코드(?)
실제로 지난 20여년 동안 대우그룹의 많은 직원들이 BFC 업무를 담당해왔고 대우와 거래하는 외국계 은행들도 BFC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BFC의 역할도 본사의 지시를 받아 집행하는 전문가 역할에 충실했으며, 팀장도 정식 이사가 아닌 이사부장이었다는 것. 또 대우 국제금융팀은 매년 해외법인 금융담당자회의를 열어 그룹 전체의 해외 자금운용계획을 수립했고 이 결과를 BFC를 통해 실행했다. 그러다가 김 전 회장이 90년대 초반 ‘세계경영’에 본격 나서면서 이 조직이 막강하게 됐다는 것이다. 과연 대우 해외현지법인에서 사라진 200억달러의 행방을 찾아낼 수 있을 거인가. BFC에 대한 검찰의 전면조사와 김 전 회장측의 양심고백이 어떻게 나올지 국민들의 눈과 귀가 모아지고 있다.
# “BFC 계좌는 김 전 회장과 일부 임원만 알았다”
대우그룹 분식회계조사가 시작됐던 2000년 3월 당시 BFC의 조사를 직접 담당했던 사람은 이성희 전 금융감독원 국장(전 시티은행 이사)이었다. 당시 대우그룹 분식회계조사.·감리 특별반장을 맡았던 그는 조사반원을 이끌고 BFC를 찾아 조사를 벌였다.다음은 이 전 국장의 회고.
- BFC를 조사한 목적은.▲“대우 계열사의 분식회계와 부실감리에 대한 증빙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2000년 당시 대우가 제출한 재무제표나 장부 등의 자료만으론 100% 분식회계를 입증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BFC 조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 BFC의 정확한 실체는.▲“김우중 전 회장과 일부 측근들이 내부적으로 사용한 편의상의 코드이름이었다. 관리목적으로 사용한 일종의 계정과목이었던 셈이다. 물론 10여개 비밀계좌가 있지만 이를 통틀어 하나의 해외 계정과목으로 본 것이 BFC였다.”
- 당시 BFC 조사에서 얻은 성과는.▲“8조원의 장부조작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또 BFC 관련 서류 등 수기장부와 테이프, 디스켓 등 컴퓨터 파일을 모두 서울로 가져왔다. 사과박스로 수십개에 달했다. 만일 BFC 자료를 확보하지 않았다면 대우재판 과정에서 증거를 제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 BFC 조사에서 김 전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용을 확인했나.▲“개인용도의 비자금은 찾지 못했다. 다만 지출내역 중에 규명되지 않은 항목이 7억달러 정도였다.”
- BFC 진짜 관리자는 누구였나.▲“(주)대우 런던 현지법인 내에 BFC 전담 관리직원 5명이 있었다. 물론 김 전 회장의 지시로 자금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 계좌는 계열사 사장 1~2명만 존재를 알았던 것 같다. 계열사 회계담당 임원도 BFC를 정확히 모를 정도였다.”
# 김우중 수수께끼 풀릴까?
“김우중 회장은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귀국하면서 그동안의 해외 도피생활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특히 인터폴에 적색수배된 상태에서 어떻게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는지 등 그동안 의문을 낳았던 사항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김 전 회장은 대우사태 직후인 지난 99년 10월 중국 옌타이 자동차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후, 종적을 감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중국으로 출국한 뒤 종적을 완전히 감춘 것이 아니라 입국 뒤 일본을 거쳐 유럽으로 가 종적을 감춘 사실이 검찰 조사결과 새롭게 드러났다. 이에 따라 김 전 회장의 출국 배경을 둘러싸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지난 99년 10월 17일 중국으로 출국해 사흘 뒤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준공식에 참석한 후 당일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튿날인 21일 일본 도쿄로 출국했다. 옛 대우그룹 관계자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김 전 회장이 행사 직후 귀국했다 하룻만에 갑자기 일본으로 출국했다”며 출국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최근 김 전 회장이 지난 2003년 서울 한복판에서 프랑스 기업인을 만나 사업을 논의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출입국 업무를 담당하는 법무부는 현재 이같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프랑스와 국내 여권으로 조회해본 결과 99년 출국 이후 한번도 귀국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도 언론을 통해 “기소중지 상태에서 어떻게 서울에 들어올 수 있었겠냐”면서 관련 내용을 부인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을 서울에서 만났다고 말한 프랑스 기업가는 “입국 날짜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김 전 회장을 서울에서 만난 것은 사실”이라고 증언해 그 배경에 의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후 김 전 회장은 홍콩, 태국, 베트남, 프랑스, 로마 등을 돌며 5년째 도피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그동안 인터폴에 적색수배된 상태였다. 국내 여권기간도 이미 만료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김 회장이 어떻게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김 전 회장이 지난 87년 프랑스 국적 취득 당시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 그러나 이를 본인이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적상실 이후에도 대한축구협회장, 전경련 회장 등을 지낼 수 있었다”면서 “대신 도피생활 때는 프랑스 여권을 이용해 자유롭게 제3국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김우중 회장이 도피생활 중에도 활발한 활동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최종 목적이 개인의 재기인지 대우의 재건인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김 전 회장의 가족들은 현재 활발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에 김우중 회장 개인 재산을 둘러싼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측근들은 김 전 회장의 개인 재산이 거의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부인 정희자씨는 경주 힐튼호텔과 경기 포천의 아도니스 골프장을 운영하며 수천억원대의 자산가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이 재산들은 김 전 회장이 가족에게 적법하게 증여한 것으로 법원에서 판단이 내려진 상태다. 일단 가족 재산에 대해선 면죄부가 주어진 셈이다. 그러나 일부에선 재기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위장계열사도 여럿 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영국의 비밀 금융계좌를 이용해 빼돌린 재산도 상당할 것이란 추측도 있다. 김 전 회장의 아들이 다니던 하버드대에 기부한 300만달러도 이 계좌에서 빠져나간 돈으로 확인됐다. 김 전 회장의 차남 선협씨는 최근 현재 운영 중인 골프장 입구에 지상 5층, 지하 1층 규모의 호텔을 오픈했다. 김 전 회장의 막내아들도 현재 하노이에서 골프장과 주택단지 건설을 하는 노블베트남의 회장을 맡고 있다. 김 전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가 운영하는 필코리아는 케이만 군도의 페이퍼컴퍼니 퍼시픽인터내셔널의 지분을 90% 이상 확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회사가 김 전 회장의 자금으로 만든 회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석 ,김재윤 suk@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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