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 충격 실태 보고
‘은둔형 외톨이’ 충격 실태 보고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2-09-26 09:56
  • 승인 2012.09.26 09:56
  • 호수 960
  • 2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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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담쌓은 자포자기형 은둔, ‘잠재적 시한 폭탄’

사회 부적응·가정 해체· 가족의 폭행·학교 폭력·인터넷 게임 중독이 원인
사회에 대한 이해 부족, 좌절·분노로 촉발된 범죄 일으킬 가능성 높아

현실과 담쌓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은둔형 외톨이’의 강력범죄가 우리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강력범죄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은둔형 외톨이였다. 은둔형 외톨이는 집안에서만 칩거한 채 가족 등 소수의 사람들과만 인간관계를 맺는 등 사회적으로 단절된 생활을 하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오랜 고립 생활로 인해 우울증, 대인기피증을 앓는 경우가 많으며 나홀로 문화에 탐닉하면서 폭력성, 공격적 성향, 반사회적 성향을 드러내는 경향이 짙다. 최근 발생한 울산 자매 살인 사건의 범인인 김이 자매를 살해한 이유도 은둔형 외톨이적 성향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은둔형 외톨이의 실태를 짚어봤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라는 이름으로 먼저 사회적 이슈가 된 은둔형 외톨이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공식적인 조사나 통계는 없지만 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청소년위원회가 발표한 ‘은둔형 외톨이 등 사회부적응 청소년 지원방안’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는 ▲최소한의 사회적 접촉 없이 3개월 이상 집 안에 머물러 있고 ▲진학·취업 등의 사회 참여활동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고 있으며  ▲친구가 하나밖에 없거나 한 명도 없고 ▲자신의 은둔상태에 대해 불안감이나 초조감을 느끼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국내에서는 은둔형 외톨이 현상이 2000년 이후부터 본격화됐다. 각종 시사고발 프로그램들이 은둔형 외톨이 실태가 적나라하게 고발하며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여겨졌던 은둔형 외톨이의 문제를 환기시켰다. 이 같은 은둔형 외톨이 현상은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 <은둔형 외톨이에 관한 내용을 담은 영화 ‘김씨표류기’의 한장면>
은둔형 외톨이 왜 생겨나나

은둔형 외톨이가 생기고 늘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거부한 채 방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은든형 외톨이적 성향은 사회 부적응, 가정 해체, 가족의 폭행, 학교 폭력, 인터넷 게임 중독 등의 상황에 반복적·지속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입시지옥과 취업난, 불황의 장기화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져가고 실직자 등 경제적 낙오자로 전락하는 사람들은 늘고 있는 것도 은든형 외톨이의 오름세와 연결된다. 낙오로 인한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 외부활동을 중단한 채 방 안에 틀어 박혀 현실 세상이 아닌 인터넷 게임 등과 같은 온라인 세상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 낙오로 인해 스스로 사회적 단절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자포자기형 은둔’이 늘어난 것.

외환위기 이후 큰 변화를 겪은 한국경제는 2008년 하반기 몰아닥친 글로벌금융위기로 기업 양극화, 개인양극화가 확산됐다. 현재 20~40대 실업자는 57만 명에 달한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가운데 20~40살 청년층만 16만 명이다. 빚이 많아 정상적 경제활동이 어려운 신용 최하위등급(10등급)은 지난해 5월 기준으로 약 40만5000명이다. 이같은 통계는 극심한 취업난으로 일자리를 찾는 데 지친 니트(NEET·구직활동포기)형 외톨이와 여전히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층이 늘고 있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

전문가들은 실업자들 가운데 ‘절망 범죄’의 충동을 느끼는 절망형·은둔형 외톨이 집단이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회적·경제적으로 낙오돼 절망을 느끼고 궁핍에 대한 분노를 곱씹다 누적된 분노와 불만을 자신을 부당하게 대우한 사람을 향해 표출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사람에게도 위해를 가한다. 최근 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여의도 칼부림 사건’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은둔형 외톨이는 과거부터 꾸준히 문제제기가 되어왔다. 2005년에는 사회 부적응 현상을 보일 위험이 높은 ‘은둔형 외톨이 위험군’ 고교생의 수가 4만3000여 명에 달하고 학업까지 아예 포기한 고위험군 고교생도 56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발표돼 사회적 충격을 안겨줬다. 학업 결손을 겪은 이들 청소년은 반사회적·비사회적 성인으로 고착될 수 있는 데다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 우려를 샀다.

이 같은 은둔형 외톨이는 인터넷 게임과 온라인 세상이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운영되는 은둔형 외톨이 관련 커뮤니티만 수천여 개에 이르고 있다. 각 커뮤니티에는 10명 이하의 소수의 회원에서 많게는 수천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각 게시판을 통해 각자의 은둔 생활 노하우를 주고받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또 생활 속에서 생기는 궁금증을 묻고 답해주기도 한다. 다른 일반적인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친목’의 성격을 갖는 셈이다. 은둔형 외톨이에게는 이 커뮤니티가 또 다른 하나의 ‘세상’과도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연결통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커뮤니티들이 일상적인 글들만이 게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게시판에는 성매매나 동반자살을 유혹하는 글들로 도배되어 있다. 또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약을 판매하는 게시물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런 글들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게시물 내용에 동조하는 글이나 약을 구하고 싶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은둔형 외톨이의 경우 사회적 교류가 없어 자신의 고민을 토로해놓을 상대가 없고 자신만의 세계에 함몰되어 있어 이 같은 유혹에 취약하다. 은둔형 외톨이가 이 같은 유혹이나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될 대로 되라’ 극단적 범행

은둔형 외톨이는 이처럼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다 보니 의사소통, 관용, 규범 등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좌절 혹은 분노로 촉발된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사회 부적응으로 이어진 스트레스와 현실 불만족이 고조되면 자신의 분노를 적절한 방법으로 통제·해소하지 못해 외부에 대한 공격 성향으로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최근 잇달아 일어난 묻지마 범죄에서 보듯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불만, 소외에 대한 억눌림이 폭발해 ‘될 대로 되라’는 식의 극단적인 범행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맞이하기도 한다. 특히 급증하는 가정해체 현상, 갈수록 흉포해지는 학교 폭력, 취업난과 높은 실업률에다 사회적 안전망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한국 사회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폭발할 외부조건이 발화점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묻지마 범죄’를 두고 전문가들은 한국이 만약 미국처럼 총기 사용을 허가한다면 조승희 사건과 같은 대량 학살 사건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처럼 은둔형 외톨이적 성향으로 촉발된 범죄가 갈수록 잔혹해지고 그 수 또한 늘어나고 있어 우려를 사고 있다.

지난 7월 20일 발생한 울산 자매살인사건의 살해 동기도 은둔형 외톨이 성향이었다. 이 사건의 범인인 김은 50여 일간 공개수배 끝에 경찰에 검거됐다. 주위에 자신을 도와줄만한 친구나 지인이 없었던 김은 범행 이후 2달 가까이 함박산에서만 지냈다. 김은 계곡물을 마셔 배를 채우거나 범송전탑 공사장 인부들의 음료수와 과자를 훔쳐 먹으며 검거될 때까지 산속에서 혼자 생활했다.

김이 산 속에서 50일 넘게 혼자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은둔형 외톨이 성격이 한몫했다. 부산이 고향인 김은 초등학교 시절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를 따라 성남, 천안, 부산, 울산 등지를 떠돌면서 살았다. 김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범행 전까지 특별한 일탈 행동을 한 적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은 평소 자신이 좋아했던 피해자매 언니를 비롯한 언니 주변 인물을 제외하고는 전혀 만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홀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자존심이 강한 김은 자신이 먼저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언니를 만나는 휴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냈다. 숨진 자매의 친구들은 김을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로 기억했다.

김에게 언니는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였다. 김이 언니를 처음 본 것은 2008년 4월 전경 복무를 마친 후 자매의 부모가 울산 중구에서 운영하고 있던 주점에서다. 언니에게 관심이 간 김은 급기야 자매 부모가 운영하는 주점에서 5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 뒤에도 두 사람은 3년 정도 교제했다. 김은 교제 초기부터 언니에 대한 집착을 드러고 갈수록 정도를 더해갔다. 김은 언니가 친구를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페이스북에 언니 폴더를 따로 만들어 사진을 빼곡히 업로드하기도 했다. 그의 SNS와 통화목록 90%가 언니일 정도였다.

경찰도 범행 전 통화내역 분석을 통해 “피해자 외 통화 내역이 없는 등 인간관계가 협소했다”고 전했다. 산 속 은신처에서 지내던 기간 내내 어느 친구에게도 따로 연락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관계자는 “도피 과정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외톨이로 살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의 주위에는 친구 등 스트레스의 완충작용을 해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없었던 셈이다.

김의 언니에 대한 관심이 점점 집착으로 변질되자 언니는 김을 피하기 시작했다. 범행 일주일 전 언니가 ‘헤어지자’는 내용의 SNS를 보내자 격분했으며 이튿날 직접 만나 다시 이별을 통보받자 울산의 한 가게에서 흉기를 구입하는 등 범행을 계획했다. 살인을 결심한 김은 사건 전날 회사에 무단결근했으며 부산의 한 안마시술소에서 성매매를 한 뒤 울산으로 돌아왔다.

급기야 김은 지난 7월 20일 오전 3시 22분께 울산 중구 성남동의 2층 다가구주택에 배관을 타고 들어가 잠자던 박씨 자매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김은 먼저 눈에 띈 동생을 홧김에 살해한 뒤 배관을 타고 내려왔다. 김은 원래 목적이었던 언니를 살해하기 위해 다시 배관을 타고 침입, 112에 신고하고 있던 언니를 수십 회 찔러 살해했다.

김은 피해자 부모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피해자 부모들이 새벽에 장을 보러 나가면 집에 자매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김은 경찰 조사에서 “언니를 죽일 마음으로 갔지만, 동생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 범행했다”며 “밖으로 나오던 중 언니의 비명을 듣고 다시 들어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사회적 안전망 확충 시급

이런 은둔형 외톨이 범죄는 전조조차 파악하기 힘들어 사회적 방어 시스템을 작동시키기가 쉽지 않다. 사회적으로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고 소외된 은둔형 외톨이의 분노를 적절한 치료를 통해 해소시켜 주지 못하면 이들로 인한 묻지마 범죄를 비롯한 강력범죄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대책으로 후생노동성이 각 도도부현에 설치한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전국 29개)’나 각 도도부현에 있는 보건소나 정신보건 센터를 통해 히키코모리에 관한 상담및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또 교육기관이나 자원봉사, 복지단체등과 연계해 교육 훈련, 취업 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같은 일본의 대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은둔형 외톨이 양산을 방지할 대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또 무엇보다도 시민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정책 마련과 함께 실직이나 취업실패 만으로도 밑바닥으로 전락하는 미비한 사회 안전망도 개선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부는 사회적 외톨이에 대한 정확한 실태 조사 바탕으로 이들이 재기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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