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뒷북 치는 경찰’ 유치장 탈주 의혹 증폭
초기대응 곳곳 ‘구멍’…대담한 탈주 행각 ‘헉’
‘제2의 신창원’ 사건이 발생했다. 유치장에 구속 수감된 강도 피의자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주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 탈주범 최갑복(50)이 배식구를 통해 달아나 그 과정에 각종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경찰은 최가 달아나는 과정이 담긴 CCTV를 인권문제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어 의혹만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최가 배식구를 통해 경찰서 밖으로 빠져나가기까지 채 1분도 안 걸린 것으로 확인돼 경찰의 근무태만과 초동수사 부실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달아난 최의 행방이 묘연해 경찰 내부에서는 신창원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지난 17일 오전 5시께 대구 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강도 상해 혐의로 수감된 최가 달아났다. 키 165㎝, 몸무게 52㎏인 최는 가로 45㎝ 세로 15㎝인 배식구를 빠져나오는데 불과 34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경찰은 최가 왜소한 체격이라 탈주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성인 주먹 두 개를 합친 크기에 불과한 15㎝를 성인의 머리와 어깨가 빠져나갈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일고 있다.
CCTV 공개 못하는 사연은?
최는 탈주에 앞서 탈주 사실이 뒤늦게 발각되게 하기 위해 위장을 했다. 그는 유치장 내에 비치된 책과 베게 등을 모포로 덮어 사람이 자는 듯한 모양을 만든 후 본격 탈주에 착수했다. 검은색 체육복 바지만 입고 상의는 탈의한 채로 배식구를 빠져나갔다.
경찰에 따르면 최는 반소매 티셔츠를 벗고 등과 복부에 연고로 추정되는 물질을 바르고 배식구 철장에도 칠했다. 똑바로 누운 채로 나오려다 실패하자 엎드린 자세로 다시 시도했다. 그런 뒤 머리, 오른팔, 오른쪽 어깨, 왼팔, 왼 어깨, 배, 엉덩이 순으로 창살에 걸린 몸을 비틀어 빼내는 방법으로 손쉽게 통과했다.
이 모든 과정은 같은 방에 있던 유치인이 “연고 같은 것을 바르고 도주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지켜보기만 하고 경찰에 알리지는 않았다”고 조사관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의 탈출 장면은 개인 감방을 감시하는 고정식 CCTV와 회전식 CCTV에 담겨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최는 옷을 추스린 뒤 단 몇 초 만에 3~4m 떨어진 2m 높이의 경찰서 창문으로 오리걸음으로 기어가 매달린 뒤 창살 사이를 벌려 빠져나갔다. 이 창문에는 3개의 창살이 13.5㎝ 간격으로 설치돼 있다. 일반적인 성인의 머리 폭보다 좁은 창살 틈으로 성인 남성이 빠져나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15초 뒤 CCTV가 다시 창문을 비췄을 때는 이미 최는 사라진 뒤였다. CCTV 카메라가 회전식인 탓에 창문 창살을 잡는 모습과 최가 이미 빠져나간 뒤 빈 창살의 모습만 찍혔다. 이 모든 과정은 놀랍게도 단 1분여 만에 이뤄졌다.
경찰은 다른 유치인의 인권 보호 등을 이유로 CCTV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단지 최가 배식구를 쉽게 빠져 나오기 위해 상의를 벗은 채 연고로 추정되는 물질을 바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로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성인남성이 아무리 왜소하더라도 유치장 배식구로 빠져나올 수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아 CCTV 공개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이에 경찰이 CCTV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인권문제’를 표면에 내세웠을 뿐 사실상 근무자의 심각한 근무 태만 등 경찰의 근무수칙 위반을 숨기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팽배해지고 있다. 당시 유치장에 근무한 경찰관 3명은 최의 탈주 과정을 보지 못했으며, 2시간 반이 지나서야 탈주 사실을 알아챘다. 유치장 내 면회실이 있고, 경찰관이 5m 이내의 거리에 앉아 있는데도 탈주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부분에는 의혹이 일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경찰은 “근무자 중 1명은 유치장 감시대 책상에서 나머지 한명은 유치장 옆 면회실에서 잠을 잤다”고 밝혔다. 유치장은 새벽(1~7시) 근무 때 근무자 3명 중 1명이 2시간씩 쉬도록 돼 있는데 경찰은 당시 휴식자를 제외한 2명을 직위해제했다.
경찰은 경찰서 밖 도로에서 찍힌 최의 도주모습을 공개하며 의혹 해소에 나섰지만 탈주 과정의 의문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찰은 비보도를 전제로 언론에 유치장 CCTV를 제한적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하려다 취소해 이 배경에도 의혹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근무 중 졸음 이상의 충격적 근무태만 상황이 CCTV 속에 담겨 있거나, 유치장의 잠금장치가 채워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이 CCTV를 공개하지 않는 배경은 CCTV 영상이 공개될 경우에 불어 닥칠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의 발표대로 최가 배식구를 통해 탈주에 성공한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대구 동부경찰서의 규격과 같거나 큰 크기의 전국의 모든 유치장 배식구와 창틀은 모두 보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와 체격이 비슷하거나 더 왜소할 경우 제 2, 3의 최의 사례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의 발표가 맞다면 몸이 유연하거나 왜소할 경우 제집 드나들듯 배식구를 통해 유치장을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치안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현행 유치장 설계 규칙에는 유치장 배식구 크기를 규정하는 별도의 조항이 없다. 최의 탈주 소식이 알려지면서 경찰서에서는 유치장 시설에 대한 일제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대구지방경찰청은 유치장 시설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청도 배식구 크기 등을 규격화할 수 있는 지침을 일선 경찰서에 내려 보낼 방침이다.
넋 놓은 경찰, 사건만 키웠다
최의 신출귀몰한 행각은 탈주 이후에도 계속됐다. 반면 경찰은 검문과 수색에서 허점만 드러내고 있어 비난을 사고 있다. 특히 초동수사에서 허점을 여실히 드러내며 최를 코앞에서 번번이 놓쳤다. 최는 마치 경찰의 추격을 비웃듯 미꾸라지처럼 유유히 빠져나갔다. 감시 태만에 후속대응까지 부실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경찰력 부실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는 유치장을 빠져나온 뒤 1㎞ 떨어진 대구 동구 신서동 김모(53)씨 집에 들어가 김씨의 승용차 열쇠와 신용카드 등이 든 지갑을 훔쳐 달아났다. 오후 10시 44분께는 경북 청도의 한 주유소에서 김씨의 신용카드로 휘발유를 넣었고, 편의점에서 먹을 것도 사는 등 거리를 활보했다.
신용 카드 사용 내역이 휴대전화 문자로 전송되면서 도난 사실을 눈치 챈 김씨가 밤 11시께 경찰에 신고했다. 또 최가 먹을거리를 산 편의점에서 최를 수상하게 여기고 신고해 경찰이 11시 8분께 출동 청도군 청도읍 초현리 새마을로 한재초소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검문검색에 나섰다.
하지만 최는 밤 11시 27분께 훔친 EF소나타 승용차를 타고 검문 현장으로 다가오다 불과 200여m를 앞두고 경찰 검문을 눈치 채고 경찰 초소 앞에서 차량을 버리고 야산으로 도주했다. 경찰관과 전경 등 7명이 15m 뒤에서 최씨를 50m가량 쫓아갔지만 결국 코앞에서 최씨를 놓치고 말았다. 탈주 당시 맨발에 체육복 차림이었던 최는 검은색 정장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현장에는 경찰관과 의경 등 5명이 있었지만 눈앞에서 달아나는 최씨를 붙들지 못했다. 경찰은 당시 이를 수상하게 여겼지만 날이 어두워 제대로 추격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곧바로 특공대·112 타격대 200여 명과 수색견 등을 투입해 청도 화악산·남산 일대를 수색했지만 검거에는 실패했다.
날이 밝자 경찰은 수색 인력을 500여 명으로 늘리고 헬기와 수색견을 투입했지만 최씨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앞서 최가 대구를 빠져 나간 17시간 동안 주요 도로조차 차단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경찰의 초동대응에 비난 여론이 잇따르고 있다. 최는 탈주 이후 산으로 달아날 때까지 단 한 번의 경찰 검문도 받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최가 도보로 도주했고 차를 훔쳐 도주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해 톨게이트 검문검색을 소홀히 했다는 해명만 내놓았다. 경찰은 동대구 시외버스 터미널 고속터미널, 동대구역 주변과 연고지 위주로만 도주로를 파악했던 것. 경찰은 검문검색으로 최를 쉽게 검거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셈이 됐다.
경찰은 최가 밤 8시에서 10시 사이에 차량이 훔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로 미뤄볼 때 최는 최대 15시간 가량을 경찰서 주변에 숨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경찰이 허술한 초기 대응으로 수사 장기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앞서 최는 검거 시에도 신출귀몰한 도주행각을 보여 경찰이 애를 먹었다. 대구 동부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기 전 체포과정에서 수중 추격전까지 벌였던 것. 지난 7월 가정집 강도짓으로 수배된 그는 대구 달성군 옥포면의 한 저수지 근처에 은신해 있었다. 저수지 부근에 주차된 차량 안에서 인기척을 느낀 최는 잠복 경찰관 6명을 발견하자마자 10여m 제방을 뛰어내려 깊이 8m의 저수지에 뛰어들었다. 최는 당시 경찰을 놀리듯이 저수지를 40여 분 간 헤엄치며 달아났다. 발만 동동 구르던 경찰은 소방서에 도움을 요청, 보트까지 동원해 저수지 한가운데서 최를 붙잡았다.
이처럼 신출귀몰한 도주행각을 벌였던 최가 다시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치장에서 미꾸라지처럼 달아나면서 시민들은 불안감을 표시하는 한편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최가 어디로 갈지를 모르니 답답하다’, ‘경찰 기강부터 바로 잡아야겠다’, ‘잡았던 범인 마저도 놓치는 경찰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냐’는 등의 비난 여론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