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청소년 ‘가출팸’ 충격 실태
벼랑 끝에 선 청소년 ‘가출팸’ 충격 실태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2-09-18 11:07
  • 승인 2012.09.18 11:07
  • 호수 959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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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위험한 동거 ‘가출팸’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경찰 통계로 가출 청소년이 20만 명이 넘어서고 있는 가운데 ‘가출팸’이 범죄조직화 되고 있어 우려를 사고 있다. 가출팸은 가출한 청소년들끼리 모여 숙식을 함께 해결하는 것으로 가출 패밀리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가출 청소년들은 가출 뒤 자신을 보호해 줄 대상과 장소가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오는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또래집단을 찾게 되면서 형성된다. 가출 청소년들은 가출 후 ‘따뜻함’을 기대하고 찾은 보금자리인 가출팸에서 배신과 폭력을 경험하고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이처럼 가출 청소년의 기대와는 달리 가출팸이 실질적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 역할을 해주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들은 또래나 어른들에게 이용을 당하거나 범죄의 유혹에 빠져 생계형 범죄에서부터 조직폭력배처럼 조직적인 범죄에 덫에 빠져 주요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위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함.

최근 인터넷 등을 통해 가출팸을 형성하는 가출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주요 포털사이트에 ‘가출팸’이란 단어만 검색해도 가출팸 모집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각종 친목사이트, 채팅사이트 등에는 ‘믿고 의지하면서 살 사람을 구한다’, ‘보증금, 월세를 분담할 성격 좋은 가출팸을 구한다’, ‘현재 찜질방에서 지내고 있지만 아르바이트를 해 같이 돈을 모아 방을 구해서 함께 살고 싶다’는 등의 글들이 넘쳐난다. 가출팸을 구하는 가출 청소년의 연령대는 14~18세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서울의 경우 동대문 대형 의류상가 일대, 천호동 로데오 거리, 신림역 등이 가출 청소년들의 주요 아지트다. 가출팸을 경험한 가출 청소년들이 10명에 2명꼴에 이를 정도로 가출 청소년들 사이에서 가출팸 형성은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돈 벌기 위해 수단 안 가린다

이들이 가출 후 제일 먼저 직면하는 어려움은 숙식이다. 또 숙식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가출 청소년들은 나이 등을 이유로 번듯한 일자리 하나 구하기 쉽지 않아 생계문제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가출 후 유해한 환경에 쉽게 노출돼 음주, 성관계, 본드 흡입 등 각종 비행에 빠지고 생활비 조달 등의 문제에 부닥치면서 집단적으로 범죄의 유혹에 빠져드는 경우가 잦다. 가출팸은 앵벌이, 뻑치기, 삥 뜯기, 소매치기, 아리랑치기, 절도, 차털이 등의 범죄에 나서기도 한다.

시민단체인 세계빈곤퇴치회는 가출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5월부터 두 달 동안 서울·인천·부산 등 전국 16개 도시에서 가출 청소년 423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하고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가출팸을 구성한 뒤 돈을 훔치거나 빼앗아 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가출 청소년은 155명으로 전체의 36.6%에 달했다. 생활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절도 등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30.8%였다. 또 가출-팸이 사는 곳은 ‘모텔’ 12.8%(54명)로 가장 높았고, ‘원룸’ 9.8%942명), ‘고시원’ 6.1%(26명) 순이었다.

최근 한 가출팸이 범죄단체를 결성하는 등 ‘조폭화’된 양상을 보여줘 충격을 던져줬다. 가출한 청소년들이 ‘영계파’라는 조직까지 만들어서 스마트폰을 훔쳐 팔고 강도짓을 일삼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조직폭력배를 흉내 내 조직을 결성하고 모텔 등에서 합숙까지 하며 범행을 공모했다.

이모(16)군 등 3명은 가출한 뒤 24시간 운영하는 찜질방, PC방을 떠돌아다니다 알게 돼 함께 지내다 스마트폰을 훔쳤다. 훔친 스마트폰을 팔아 쉽게 돈을 벌게 되자 아르바이트 대신 PC방, 찜질방, 커피숍 등을 돌아다니며 스마트폰을 훔치는데 더 골몰했다. 길가는 행인에게 스마트폰을 빌려 달아나기도 했다.

이들은 이 돈으로 가출청소년들에게 음식과 술, 담배 등을 사줬고 자연히 이들 주위에는 가출 청소년들이 모여들었다. 16명으로까지 몸집이 불어나자 이들은 ‘돈을 빼앗으려면 여러 명이 뭉쳐 다녀야 한다’고 생각, 모텔에서 합숙하며 영계파를 결성했다. 이후 이들은 몸에 문신을 하는 것을 계기로 더 과감히 범행을 저질렀다. 또 성인 폭력조직처럼 나이에 따라 서열을 정해 선배의 말에 복종하도록 하고 두목, 행동대원 등으로 각자 역할을 분담해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지난해 7월부터 최근까지 서울 북부지역 및 의정부 일대 휴대전화 대리점에 침입해 스마트폰을 훔치거나 사우나, 찜질방에서 스마트폰을 몰래 들고 나와 장물업자에게 한 대당 10만~30만 원 씩 받고 넘기는 수법으로 스마트폰 70여 대 총 6700여만 원을 챙겼다.

훔친 스마트폰을 팔아 돈을 마련하던 영계파는 휴대폰 장물업자가 현금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범행을 계획했다. 이들은 훔친 면허증을 이용해 승용차와 승합차를 빌린 뒤 장물업자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유인했다. 지난 6월 19일 새벽 3시께 이들은 서울 중랑구 노상에서 장물업자 권모(23)싸를 주먹과 발로 얼굴을 때리고 현금 100만 원과 198만 원 상당의 시계를 빼앗은 뒤 훔친 차량을 타고 달아났다. 이들의 범행은 나날이 대범해져 갔다. 지난 7월 17일에는 경기 남양주시 진전읍의 한 휴대전화 매장에 망치로 유리창을 깨고 침입해 휴대전화 32대를 훔쳐 달아나기도 했다.

성범죄 표적되는 여성 가출 청소년

여성 가출 청소년의 경우 성범죄의 표적이 된다. 숙식 제공에 속아 성폭행을 당하거나 혼숙을 하는 가출팸 안에서 문란한 성관계를 맺기도 한다. 또 생활비 조달을 위해 각종 위험에도 불구, 스스로 성매매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13∼18세 일반청소년과 가출 청소년 4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여성청소년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피해실태와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가출 또는 학업을 중단한 여성 위기 청소년의 47.7%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남성 위기 청소년(24.1%)과 학교생활을 하는 여성 청소년(22.5%)들에 비해 2배 정도 높은 비율이다.

지난해 4월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가 가출 청소년 90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17.6%가 가출팸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출팸 구성 후에는 절반이 넘는 53.7%가 혼숙을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빈곤퇴치회의 가출팸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이성을 성폭행하거나 폭력을 행사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18.6%로 전체의 5분의 1에 달했다. 성매매나 원조교제를 강요당하거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다른 ‘팸’들이 보내주지 않는다고 말한 응답자는 18명으로 전체의 13.8%에 달했다.

김모(14)양은 매일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중학교 1학년이던 지난해 초부터 가출을 반복하다 지난 3월 가출해 서울 수유동과 경기도 성남의 가출팸들을 만나면서 완전히 집을 떠나게 됐다.

가출 후 만난 가출청소년 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성매매를 권했다. 김양은 이들에게서 미성년자도 잘 받아준다는 모텔과 성매수남을 만나는 방법 등을 알게 돼 많게는 하루에 세 번씩 성매매에 나섰다. 한 번에 15만~18만 원을 받았다. 김양은 성매수남들에게 “나이가 어리니 돈을 더 많이 달라”고 요구했다. 김양이 강북구 번동과 수유동 일대의 모텔을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었지만 신분증 검사를 하는 모텔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김양이 상대한 남성들은 평범한 회사원, 성범죄 전과자, 서울 모 대학 직원, 서울의 한 특급호텔의 직원 등으로 다양했다. 남성들은 대부분 김양이 미성년자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성매매특별법 위반혐의로 적발된 적 있었던 모모(33)씨는 강북구 D모텔에서 김양과 변태적인 성행위를 하려고 했다. 결국 김양은 가출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모텔로 찾아온 가출팸은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실을 경찰에 알리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어냈다.

경찰은 지난 6개월 동안 김양이 인터넷을 통해 성매매한 남성이 1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김양은 성매수한 남성들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고, 성매수 사실을 시인하는 남성들을 보고도 “누군지 잘 모르지만 저랑 했다고 했다면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니들이나 잘해” 반발

세계빈곤퇴치회의 가출팸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가출을 선택하는 이유 중 65.7%가 부모로 인한 것이었다. 부모와의 갈등, 지나친 간섭, 차별 등 가족과의 소통 부재에 대한 문제와 갈등이 전체의 55.1%에 달했다. 부모의 이혼이나 재혼 등에서 오는 가정 해체(6.5%)보다 10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세계빈곤퇴치회 관계자는 “가출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 보라고 했더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니들이나 잘해’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며 “가출 청소년들은 일탈 행위 등은 다 어른들에게서 보고 배운 것이라며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어른들부터 잘하라는 이야기를 쏟아냈다”고 말했다. 가출청소년들은 가정과 학교, 사회 모두에서 갈등 구조를 겪으면서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게 내리고 있는 셈이다.

가출 청소년들은 자신을 품어줄 또 다른 보금자리를 위해 가출을 하지만 오히려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 최근 일산에서는 함께 가출해 생활하던 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뒤 암매장 한 사건까지 벌어졌다. 이날 오후 3시 가출여학생 A양이 같이 살던 다른 가출청소년 백모(17·여)양 등 9명으로부터 11시간 동안 감금당하고 야구방망이등으로 폭행당해 숨졌다. A양이 자신들의 말에 복종하지 않고 여자 친구가 있는 남학생을 좋아한다는 이유였다. 집을 나온 뒤 함께 모여 살며 그들 스스로 만든 규칙을 A양이 어겼다는 것.

이들은 A양이 숨지자 방 안에 하루 동안 방치해 둔 뒤 3단 서랍장에 A양 시신을 넣어 7일 오전 2시께 집에서 직선거리로 100m가량 떨어진 행신근린공원으로 옮긴 뒤 암매장했다. 이 사건은 이들 중 양심의 가책을 느낀 2명이 부모와 함께 자수를 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최근 이처럼 청소년 가출 강력사건에서도 가출팸이라는 공통분모가 발견되고 있지만 가출 청소년의 수가 얼마에 이르는지, 어디서 어떻게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지 정부·교육당국·수사기관도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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