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vs 숙부, 총수 자리는 누구 품으로?
조카 vs 숙부, 총수 자리는 누구 품으로?
  • 강길홍 기자
  • 입력 2012-09-18 09:27
  • 승인 2012.09.18 09:27
  • 호수 959
  • 2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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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시멘트그룹 경영권 분쟁
한일시멘트 공장 전경.

[일요서울ㅣ강길홍 기자]  ‘개성상인’으로 잘 알려진 故 허채경 창업주가 1960년대 일으켜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한일시멘트그룹이 경영권 분쟁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허채경 창업주의 타계 이후 다섯 아들은 각각 그룹의 계열사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장남인 허정섭 한일시멘트 명예회장이 그룹의 주력사인 한일시멘트를 물려받았고, 차남인 故 허영섭 전 녹십자 회장과 5남인 허일섭 녹십자 회장이 녹십자 경영을 맡았다. 또 3남인 허동섭 한일건설 회장은 한일건설을, 4남인 허남섭 한덕개발 회장이 한덕개발을 책임졌다. 그러나 현재 한일시멘트그룹을 둘러싼 지분매입 경쟁이 숨가쁘게 진행되며 그룹 총수자리가 미궁에 빠졌다. 특히 형제간을 넘어선 조카와 숙부간의 분쟁이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로 인해 허채경 창업주가 지켜온 개성상인 정신이 퇴색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룹 지주회사 역할 하는 한일시멘트 지분매입 경쟁
방계 기업인 녹십자도 혼란…‘개성상인’ 정신 사라져

한일시멘트그룹의 오너家가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한일시멘트를 두고 지분 매입 경쟁을 벌이고 있다. 허정섭 한일시멘트 명예회장의 장남인 허기호 한일시멘트 부회장과 삼촌들인 허동섭 회장, 허남섭 회장 일가가 꾸준히 지분을 늘려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허동섭 회장의 딸 서연·서희 씨는 각각 한일시멘트 주식 3만5000주를 매입했다. 앞서 17일에는 허동섭 회장도 6만주를 취득했다. 이를 통해 허동섭 회장의 한일시멘트 지분은 5.17%에서 5.96%로 높아졌고, 두 딸의 지분도 각각 1.33%에서 1.79%로 늘었다. 허동섭 회장 일가는 한달여 동안 1.46%의 지분을 늘리면서 9.54%의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허남섭 회장도 주식을 사모으고 있다. 지난해 한일시멘트 주식 2만5000주를 매입한 바 있는 허남섭 회장은 올해 들어서만 25회에 걸쳐 지분을 사들이면서 지분율을 5.90%로 높였다. 허남섭 회장의 두 자녀인 정미·정규 씨도 각각 0.97%와 1.5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허남섭 회장 일가는 총 8.38%의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허기호 부회장도 삼촌들의 지분 확대를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허 부회장은 아버지인 허정섭 명예회장에게 지난 4월 5만7126주를 증여받으면서 지분율을 5.11%에서 5.87%로 늘렸다. 허 명예회장의 지분은 8.71%에서 7.96%가 됐다.

이 같은 오너가의 지분 확대 경쟁으로 인해 한일시멘트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일시멘트는 오너일가의 총 지분율이 45%에 달해 외부로부터의 경영권 위협에는 자유롭지만 내부에서의 경영권 분쟁은 언제든 터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재계 안팎의 시각이다.

경영권 분쟁에 오너家 총출동

한일시멘트그룹은 허채경 창업주가 타계한 이후 아들들이 그룹의 각 계열사 경영을 나눠 맡았다. 장남인 허정섭 명예회장이 한일시멘트를, 차남인 故 허영섭 회장과 5남인 허일섭 회장은 녹십자를, 3남 허동섭 회장이 한일건설을, 4남 허남섭 회장이 한덕개발(서울랜드)을 책임졌다. 1차 교통정리가 어느 정도 이뤄졌던 것이다.

이 때문에 2003년 허정섭 명예회장이 한일시멘트 경영에서 물려날 때만 하더라도 허 명예회장의 장남인 허기호 부회장이 한일시멘트의 경영권을 물려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허 부회장의 삼촌들이 지분 확대를 이어가 그룹 총수자리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일시멘트를 두고 벌어지는 지분 매입 경쟁은 한일시멘트가 그룹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주회사이기 때문이다. 한일시멘트는 한일산업(98.51%), 한일건설(50.54%), 한일개발(99.90%), 한덕개발(85.36%)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한일시멘트 지분이 늘어날수록 각 계열사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게 된다.

아직까지는 허기호 부회장이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허 명예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물려받으면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다. 또 허 부회장은 한일시멘트 지분 1.4%를 보유한 중원전기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하지만 삼촌들의 합종연횡이 이뤄질 경우 결과를 장담하기 힘들다. 또 앞서 허채경 창업주의 2남과 5남이 맡았던 녹십자에서도 조카와 삼촌 간에 경영권을 두고 미묘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한일시멘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허일섭 녹십자 회장의 자녀 3명이 녹십자홀딩스의 지분을 각각 400, 1310, 1430주씩 매입했다. 허일섭 회장과 아내 최영아 씨도 올해 들어 20여회에 걸쳐 주식을 사모았다. 이에 따라 허 회장 일가의 지분율은 11.84%까지 늘었다.

故 허영섭 전 녹십자 회장 일가도 움직이고 있다. 故 허영섭 회장의 두 아들인 허은철 녹십자 부사장과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부사장도 2009년 아버지가 타계한 이후 꾸준히 지분을 늘리면서 각각 0.77%, 0.65%에서 1.32%, 1.28%로 증가했다.

녹십자는 2009년 허영섭 회장의 별세 이후 경영권과 관련해 혼란을 겪었다. 특히 故 허영섭 회장의 부인인 정인애 씨와 장남인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이 갈등을 겪으면서 유산과 관련해 법정 공방도 진행 중이다.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지만 정인애 씨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법원 판결이 이뤄지면 정씨와 두 아들 은철·용준 부사장은 155만주를 상속받으면서 지분율이 7%대로 높아진다.

故 허영섭 회장이 사회복지법인에 남긴 9.9%의 지분도 관건이다. 지분을 보유한 재단의 의결권은 경영권을 차지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이밖에도 지분 3.45%를 보유하고 있는 박용태 녹십자홀딩스 부회장과, 3.15%를 보유한 허남섭 한덕개발 회장의 딸 허정미 씨의 선택에 따라 더욱 복잡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일시멘트그룹을 둘러싼 가족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故 허채경 창업주가 남긴 개성상인 정신이 퇴색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허 창업주는 생전에 ‘가족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그룹내 구성원들의 인화와 단결, 협동심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한일시멘트그룹 측은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말을 아끼고 있다.

slize@ilyoseoul.co.kr

강길홍 기자 sliz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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