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경선 불공정성 논란과 흥행 부진 등으로 지도부 책임론이 거론됐던 민주통합당이 당직자 일괄 사퇴라는 쇄신카드를 꺼내들었다.
대선이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해찬-박지원 투톱체제 경질론이 당내 또 다른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사무총장 이하 정무직 당직자들이 사퇴, 좀 더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선 후보 중심으로 당 운영 체제를 전환하고 선대위 구성 및 인사·재정권까지 부여하는 등 대대적 쇄신도 함께 단행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퇴진론이 불거졌던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2선으로 물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지도부에 대한 당내 불신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지도부 자진 사퇴론도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후보 중심체제… 고강도 쇄신책 마련
민주통합당이 대선 후보 선출을 전후로 ‘후보 중심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고강도 쇄신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도부 책임론과 관련 숨고르기에 들어간 민주통합당은 지난 11일 진행된 긴급 의원총회에서 ‘후보 중심의 당 쇄신을 단행하자’고 의견을 모은 뒤 이를 뒷받침할 쇄신책을 준비 중이며, 현재 당직자 일괄 사퇴론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통합당의 이 같은 결정은 혁신파 일각에서 제기됐던 ‘이-박(이해찬-박지원) 퇴진론’ 등 극단적인 방법은 피하되 지도부 책임론을 일정부분 통감함으로써 쇄신 의지를 분명히 하자는 취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난상 토론된 의총… 숨고르기 들어간 민주
민주통합당은 지난 ‘쇄신 의총’에서 경선 파행에 대한 지도부의 책임과 당 쇄신을 요구하는 논쟁이 벌어졌다. 일부 의원들은 “지도부가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며 당의 화합을 주문하는가 하면, 일부는 “당이 분열될 위기”라며 지도부의 책임 있는 모습을 촉구했다.
조경태 의원은 “경선장에서 막말과 달걀·물세례가 벌어진 모든 책임은 경선을 관리한 지도부에 있다”며 “의원을 졸로 보는 정당이 민주정당이냐. 지도부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도부 사퇴론을 제기했다.
주승용 의원은 “모바일투표 문제가 현재 당 분열의 원인”이라고 지적했으며, 노웅래 의원은 “당이 변화하고 쇄신해야 하지만 지도부의 위기의식이 너무 없다”고 비판했다. 황주홍 의원은 “지도부가 도덕적 책임감을 통감하고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민주통합당은 지도부 경질론이 제기되면서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 긴급 의총을 제안하는 서명을 받아내는가 하면, 4선 이상 중진 의원들은 비공개 회동을 갖고 당 쇄신을 위한 지도부의 책임 있는 모습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도부 책임론이 거론됐던 민주통합당은 ‘쇄신 의총’을 기점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일부 혁신파 의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지도부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재로선 정권교체에 힘을 모을 때라는 점에서 현실론에 무게를 둔 결정으로 분석되고 있다.
당 수습 방안은 ‘단합론’
의총 이후 당의 수습 방안은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단합해야 한다”는데 모아졌다. 후보가 확정되고 선대위가 구성되면 자연스레 당 쇄신이 수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게 나타났다. 이를 반영하듯 이해찬 대표는 ‘탕평 선대위’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선대위를 구성할 때 경선 과정에서 있었던 갈등·이견을 잘 해소할 수 있도록 ‘탕평 선대위’를 구성해야 당이 일사불란하게 집권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며 탈락한 경선 후보 진영까지 모두 보듬어 안을 것을 주문했다.
김한길 최고위원은 의총 다음날 진행된 최고위원회의에서 쇄신 의총과 중진모임을 거론하며 “당의 소통 기능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한 뒤 “소통을 통해 대선 승리, 정권 교체를 반드시 실현해야겠다는 의원들의 비장한 심정을 확인했고 우리 당의 변화와 쇄신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우상호 최고위원 역시 “경선이 파행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도부에서 논의된 쇄신방안을 실천에 옮기지 못한 점은 아쉽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당내 의견을 수렴해서 당이 변화하고 혁신되는 방안이 실시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대위 중심체제 전환… 당직자 일괄사퇴 거론
민주통합당이 꺼내든 화합과 쇄신카드는 먼저 대선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취지에서 당직자 일괄 사퇴론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 당직을 맡고 있는 의원들 사이에서 상당한 얘기들이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찬-박지원 투톱 체제를 바꾸는 것이 사실상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무직 당직자들의 사퇴를 통해 당의 인적 쇄신을 불러오겠다는 계산이다. 자연스레 기존 지도부는 2선으로 빠질 것으로 보인다.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선거대책위원회가 꾸려지면 당내 인사권과 개혁을 주도함으로써 현 지도부는 일선에서 물러나 선대위의 보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매주 세 차례 열리는 최고위원회의도 선대위회의로 대체되고 원내대책회의는 선대위회의와 병행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민주통합당 모 의원은 지난 14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당직자가 총사퇴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동료 의원이나 초선 의원들을 만나보면 일부 당직자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며 “당 대표는 그대로 인정하되 일부 당직자는 사퇴하고 새로 구성되는 선대위에서 새롭게 인선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당내 일각에선 당직자가 일괄 사퇴할 경우 당직 공백이나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론도 대두되고 있다. 이 때문에 당 사무총장을 비롯한 핵심 당직을 중심으로 인적 쇄신이 단행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이해찬 담합론 ‘여전’
선대위 체제로 전환되고 당의 전권을 위임하는 한편 당직자의 일괄 사퇴까지 검토되고 있지만 여전히 문재인-이해찬 담합론은 식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선 언제든 지도부 퇴진론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손학규 대선경선 후보는 “지도부가 선대위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특정 후보와 한통속이라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손 후보는 지난 12일과 13일, 라디오인터뷰와 기자회견을 잇달아 열고 “선대위는 후보자가 확정된 후 후보자 중심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당이 하는 것이 아니다”며 “지도부가 선대위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당이 특정 후보와 한 통속이라는 명백한 얘기”라고 날을 세웠다.
실제 이해찬 대표 비서실장인 김태년 의원은 지난 8일 진보성향 학자인 서울대 조국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선대위에 참여해달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 확인되면서 일부 의원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한 언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조국 교수에게 개인적 차원의 비공식 제의를 한 것이며, 당직자로서 그저 일반적인 제안을 드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당내 한 중진의원은 이와 관련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 의원이 외부인사에게 전화해 선대위 참여를 제안한 것은 잘못됐다”며 “선대위 구성은 전적으로 후보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 대표가 어느 정도 지분을 갖고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아직 후보가 확정되기도 전에 대표의 비서실장이 이를 거론하는 것은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만약 문재인 후보가 최종 후보로 선출된다면 이 대표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