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본부장에 따르면 김 회장은 축구나 테니스와 같은 운동을 좋아한다. 1년에 한번 효창운동장에서 열리는 ‘대우가족 체육대회’ 때는 축구선수로 직접 출전할 정도다. 그러나 골프만은 유독 싫어한다. 임원들의 권유에도 “체질에 안맞다”면서 고사해 왔다. “몇 번 정도 골프 치러 나간 적이 있는데 비즈니스에 도움이 안된다면서 거절하더군요. 비즈니스는 ‘시간과의 싸움’인데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김 회장에게도 어쩔 수 없이 골프를 쳐야 할 때가 돌아왔다. ‘골프광’으로 알려진 리비아 건설부장관을 만났을 때다. “리비아 건설부장관은 상당한 ‘골프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김 회장은 리비아 사막에서 골프를 쳤습니다. 당시 고생을 많이 한 눈치였습니다. 나중에 리비아 본부장에게 ‘두 달만에 80타를 치겠다’면서 관련 장비를 구입해놓으라고 지시하더군요.” 대신 일에 관한 한 ‘미쳤다’고 할 정도로 열심이다. 잠자는 시간을 재외하고는 일에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번은 새벽 1시에 차를 타고 시청을 지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삼성그룹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데, 대우에는 불이 모두 꺼져있던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다음날 임원회의 석상에서 ‘이래가지고 어떻게 삼성을 따라잡겠냐’면서 호통을 치더군요.”
‘세계 경영’이 본격화된 90년대에는 특히 외국을 자주 다녔다. 1년 중 180일은 해외에서 생활했다. 때문에 계열사 사장이나 임원들은 김 회장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1주일을 기다린 적도 있다고 한다. “한번은 김 회장이 해외 계열사 점검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적이 있습니다. 계열사 사장 40명 정도가 도열해 있더군요. 모두 보고서를 들고 있었습니다. 김 회장이 너무 오래 해외에 나가 보고를 하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김 회장의 이중에서 한명을 찍어 차에 태운다. 이렇듯 김 회장은 임원들이나 계열사 사장들에게 김포공항에서 힐튼호텔, 여의도, 강남을 이동하는 차안에서 필요한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한다. 이로 인해 김 전 본부장은 새벽 2시에 김 회장에게 불려나갈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당시 김 회장은 티코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임원들이 말렸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때문에 김 회장이 힐튼호텔에 도착하면 아카디아를 탄 임원들이 몰려오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김 회장의 천성적인 근면성은 회의에서도 엿볼 수 있다. 김 회장은 반드시 아침 7시에 회의를 갖는다. 회의는 업무가 아니라는 것이다.“미국의 운수회사인 US라인이 방한한 적이 있습니다. 양측 대표단은 힐튼호텔서 10명씩 만나 회의를 가졌습니다. 회의는 새벽 3시까지 이어졌고, 대우 직원들뿐 아니라 US라인 직원들도 피곤을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김 회장은 이같은 방법으로 협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었습니다.” <계속>
# 박정희 대통령 서거 큰 충격 선협씨 사망후 가족관 각별
1968년 대우실업이라는 작은 회사를 세워 4대재벌로 키운 김 전 회장에게는 몇가지 인생의 지표를 바꾼 대사건들이 있었다. 첫 번째 큰 사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그는 사석에서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대우그룹을 그만두려 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두 번째 그에게 큰 사건은 맏아들 선협씨의 죽음이었다. 평소 일에만 몰두하던 그에게 아들의 죽음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그후 그의 인생관은 일보다는 가족에게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쪽으로 변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생각도 그룹이 해체되기까지 실천에 옮기진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그에게 가장 큰 사건은 1999년 대우그룹 해체였다. 이 일로 그는 5년간 해외유랑 생활을 해야 했으니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일 것이다. 숱한 일화와 사건을 가슴에 묻은 김 전 회장의 앞으로의 행보가 어찌 될지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다.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취미는… 바둑 명인들과 틈틈이 교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재직 시절 ‘일벌레’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에게 세상 사람들은 ‘아마 평소 즐기는 취미’도 없을 것이라는 눈길로 바라 보았다. 그러나 그에겐 남다른 자신만의 취미는 있었다. 김 전 회장의 취미 중 눈길을 끈 부분은 바둑이었다. ‘아마추어 단급’으로 알려진 그의 바둑실력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가 한 때 바둑협회장을 맡은 점에서 어느 정도 바둑을 즐겼는지 알 수 있다. 그는 그룹내에서도 바둑을 잘 두는 직원을 불러 회장실에서 한두시간씩 속기바둑을 둘 정도였단다. 이런 취미 때문에 그는 바둑계의 거물들과 자주 교류를 가졌다.
조치훈 명인이나 조훈현, 서봉수 등 프로기사들은 그가 아주 좋아했던 사람들이었다. 이창호 9단을 비롯한 젊은 기사들과도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냈다. 바둑협회장 시절 바둑계에 대한 그의 지원은 남달랐다.그는 골프나 다른 운동은 별로 즐기지 않았다. 특히 골프에 대해서는 ‘시간만 낭비된다’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의 부인 정희자씨는 여러개의 골프장을 운영할 정도로 ‘골프광’이어서 대조적이다. 골프에 대해 ‘시간낭비’라는 이유로 거부하던 그였지만 그룹이 해체되기 전이던 90년대 후반부터는 몇차례 라운딩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해외 유랑시절 골프를 자주 즐겼다는 후문이다. 김 전 회장은 술은 입에도 대지 않기로 유명하다.
술을 먹으면 금세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술에 유난히 약했던 그는 부득이한 술자리가 있으면 측근을 데리고 나가 대신 마시도록 했다. 대우 임직원 가운데 K임원은 김 전 회장의 ‘술상무’로 유명하다. 그런 그지만 담배는 하루 세갑을 피울 정도로 많이 태웠다. 대우그룹 회장실에는 담배냄새가 배지 않도록 특별 환기시설을 설치해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애용하던 담배는 국산 담배였는데 지금은 생산이 중단된 한라산, 88라이트 등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애연가였던 그도 나이를 먹으면서 담배를 끊었다. 대우 해체직전이던 98년 무렵 그는 담배를 끊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김 전 회장은 담배를 끊고 골프를 시작해 그룹 안팎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석 suk@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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