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의 계절 가을이 왔다. “산이 거기 있기에 산을 오른다.” 에베레스트 정복에 나섰던 영국의 탐험가 조지 말로리(George Mallory)의 말이다. 산은 언제나 말없이 거기에 있지만 산에는 신의 섭리와 자연의 이치 그리고 인간의 길도 함께 있는 것 같다. 산 정상에 올라 청량한 바람과 함께 발아래 펼쳐진 드넓은 세상을 내려다보는 순간 모든 것을 얻은 듯 장쾌함의 희열에 젖는다. 평범한 산행이라도 산과 함께 자연을 호흡함으로써 심신에 낀 일상의 먼지를 훌훌 털고 신선한 활력을 충전함과 동시에 삶을 즐기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
본격적인 F/W(Fall & Winter) 시즌과 함께 아웃도어(Outdoor) 브랜드들의 마케팅 활동도 본격화 되고 있다.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각축하는 가운데 특히 토종 브랜드‘블랙야크(Black Yark)’의 광고가 눈길을 끈다.
모델 조인성과 한효주 커플이 히말라야 산악에서의 캠핑 장면을 담은 이 광고는 별을 이야기 한다. ‘어제보다 오늘의 별이 더 커졌다. 어제보다 오늘의 내가 더 커졌다. 히말라얀 오리지널 블랙야크’라는 카피와 함께 텐트 속의 불빛과 산악의 밤하늘 별빛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젊은이들의 감성적 낭만을 담고있다.
이 광고는 중성자극인 상품 ‘블랙야크'를 강조하기 위해 ‘히말라야 산악 등반’이라는 무조건적 자극에 의한‘블랙야크 소유의 즐거움’이라는 무조건적 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고전적조 건화Classical conditioning)기법의 설득이론을 활용하고 있다. 즉 히말라야 산악등반과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하면 ‘블랙야크’가 연상되도록 하는 기법의 광고다.
‘블랙야크는 그동안에도 줄곧 히말라야 산악 배경의 4계절 변화를 고려하며 유사한 스타일의 광고를 해왔다. 험난한 산악과 그리고 거기에 서식하는 야크(Yak)라는 들소를 광고의 소재로 삼아 ‘히말라얀 오리지널’이라는 이미지의 브랜드 포지셔닝(Positioning)화를 위한 전략이다.
산악등반 시장을 겨냥하는 업체로서의 당연한 목표 달성을 위한 광고이기도 하지만 히말라야라는 세계 최고봉의 산을 마케팅의 소재로 삼아 글로벌시장마저 노리고 있어 블랙야크의 밝은 비전이 담겨있기도 하다. 한국CM전략연구소에서 지난해 11월 12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아웃도어 브랜드 광고 중 가장 높은 광고 선호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 아웃도어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와 관련해 선 블랙야크의 이번 광고 콘셉트는 다소의 오류가 있는 듯이 보인다. 아웃도어 제품이 패션 무대인 ‘런 웨이(RunWay)’에 오를 만큼 제품 카테고리가 변하면서 일상복과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등산복 등 아웃도어는 이른바 ‘고어텍스(Gore tex)’라 하여 방수, 방풍, 흡습성, 속건성 등의 기능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최근엔 디자인이 밝고 선명한 비비드(Vivid)로 컬러풀해지는 것은 물론 일상복과도 겹쳐 입을 수 있는 레이어드(Layered)가 가능한 패션 룩으로 진화하고 있다. 주말 나들이나 일상복과의 믹스매치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 최근 트렌드다.
히말라야라면 전문 산악인들 외에는 보통사람들은 일평생 한 번도 가보지 못하는 먼 곳이다. 그래서 블랙야크 광고 속 조인성과 한효주의 모습은 마치 백설공주와 백마를 타고 온 왕자님이 히말라야 고지대에서 만나 오붓한 한 때를 보내는 동화 속의 그림처럼만 보인다. 블랙야크가 그동안 광고를 통해 지속적으로 의도해왔던 무조건적인 자극에 의한 무조건적 반응으로 얻으려 했던 중성자극 ‘블랙야크’가 이번 새로운 광고에서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것은 즉, 그동안 줄곧 익스트림 스포츠로 각인 돼왔던 블랙야크 이미지와 도심 거리의 패션으로 진화한 새로운 트렌드의 제품 카테고리와의 괴리 현상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국내 아웃도어 시장엔 명품심리마저 불고 있다. 이름 값 좀한다는 브랜드로 갖춰 입으면 100만 원은 가뿐히 넘는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시장 규모도 지난해 4조 원을 훌쩍 넘어 올해는 5조 원 규모에 달하리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시장 확대와 더불어 국내 아웃도어 의류 시장의 각 브랜드는 기능성과 패션성 그리고 젊은 층과 노년층 등으로 구분되는 ‘브랜드 맵(BrandMap)’을 형성하며 어느 라인에 자사의 브랜드를 포지셔닝시켜야 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블랙야크 광고는 혼재된 시장 요소를 흡수하기 위해 고지대의 히말라야 산악을 배경으로 한 정통 등산용품 이미지는 물론 조인성과 한효주를 모델로 선택하여 감각적인 이미지마저 동시에 겨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성장 가능성이 큰 산업의 기업이라도 경쟁자들과의 포지셔닝 차별화에 실패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현재 제시되고 있는 블랙야크의 브랜드 포지셔닝은 다소 모호 한 듯하다. ‘정통등산용품인가 아니면 ‘감각적인 등산용품’인가의 선택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자사의 제품 카테고리를 어디에 놓고 경쟁을 할 것인가.
히말라야 산악이 광고 콘셉트의 핵심이라면 도회적 감성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타브랜드 포지셔닝을 부러워하는 곁눈질을 통해 자사의 브랜드에 덫 칠하는 것은 오히려 기존의 이미지만 흐리게 할 뿐이다. ‘나를 버린 순간 히말라야를 만났고 나를 넘어선 순간 블랙야크가 되었다'는 야성적이고 도전적인 일관된 메시지, 이것이 바로 블랙야크의 해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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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 IMI 대표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