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명단 살펴보니 다수가 지경위…

“檢 수사대상자 18명 연루자 105명”
지경위 핵심 K 의원측, “문제될 것 없다”
[전성무 기자] = 기업 노조의 ‘쪼개기 불법후원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치권을 초긴장 상태에 몰아넣고 있다. 정치권에 ‘줄’을 댄 노조가 검찰 수사를 통해 속속 드러남에 따라 수사선상에 오른 정치인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여의도 정가에는 이미 검찰 수사대상자 리스트가 비밀리에 나돌아다니고 있는 상황. 정치권은 현 정치자금법을 개정하겠다며 검찰 수사에 맞불 작전을 놓고 있다. 여의도에 불고 있는 검찰발 노동조합의 입법로비 수사를 추적해 봤다.
노조의 쪼개기 후원금 사건은 후원금 규모가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입법로비’ 사건 규모보다 큰 역대 최대 규모라는 점에서 상당한 정치적 파문이 예상된다. 검찰의 수사망에 걸려든 각 노조에는 비상이 걸렸다. 검찰의 압수 수색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각종 정보가 담긴 노조 홈페이지 서버를 폐쇄하고 교체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민주노총 압수수색 한다니
서버 폐쇄
지난 3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은 긴급회의를 통해 서버 폐쇄 결정을 내렸다. 서버는 이날 오후부터 폐쇄됐고, 현재는 정상 운영 중이다. 민주노총의 서버 폐쇄 조치는 검찰의 압수수색영장 청구 정보를 입수했고, 이에 따른 불필요한 내부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민주노총이 서버를 폐쇄한 당일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노조 홈페이지 서버관리업체인 진보넷과 사무금융연맹의 홈페이지 관리업체를 압수수색했다.
민주노총은 서버 폐쇄 이후 노총의 활동 내용 등 각종 주요 정보가 저장된 하드디스크를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하드디스크는 외부에 별도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은 이와 함께 민주노총 본부뿐 아니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산하 노조 서버에 대해서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의 이 같은 조치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증거인멸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에 검찰은 민주노총이 검찰 수사에 대비해 서버를 폐쇄한 데 대해 증거인멸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선상에 오른 기업 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 압수수색에 대비해 고의로 서버를 폐쇄한 게 아닌지 살펴보고 있다”며 “정확한 경위를 파악한 뒤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증거인멸죄는 ‘사건과 관련된 제3자’를 위해 증거를 없애려 했을 때 적용된다. 검찰은 민주노총이 산하 노조의 후원금 제공을 계획ㆍ지시한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혐의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형법 155조는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하거나 변조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서버 폐쇄의 구체적인 경위와 고의성 여부를 확인하는 대로 이를 주도한 관련자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23일 민노당과 진보정당에 후원금을 제공한 혐의로 민노당 사무금융 연맹 소속 LIG손해보험과 KDB생명 노조를 압수수색하고 관계자 소환조사에 나섰다.
검찰은 또 3일 민주노총 산하 전국사무금융노조 홈페이지 관리업체와 전국손해보험노조 홈페이지 관리업체 등 세 곳을 추가로 압수수색해 후원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은 지난 7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은 치졸한 공작수사를 중단하고 정치후원금을 빌미로 노조 및 진보정당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최근 국회에서 진행 중인 중수부 폐지방침에 반발하여 정치권을 협박하고 있는 검찰이 해묵은 사건을 들춰내 민주노조의 정당성까지 훼손하고 있다”며 “정치 후원금을 빌미로 한 노조 탄압과 진보정당 압박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이번 검찰 수사가 민주노총에 집중돼 있다며 강한 불만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는 논리다.
이날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근 검찰총장이 검찰개혁과 관련해 ‘작전을 앞둔 상황에서 해병대 사령부를 해체하는 격’이라고 비교했다”며 “색검, 떡검 등 부패로 치닫고 있는 검찰조직이 국민의 81%가 찬성하는 개혁과 중수부 등의 폐지에 대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는 양상”이라고 검찰의 행태를 비난했다.
국회, 검찰과 일촉즉발 상황
검찰과 노조의 대립각에 이어 정치권도 검찰과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국회와 검찰은 지난해 ‘청목회 쪼개기 후원금’ 수사 과정에서 현행 정치자금법 개정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이때부터 골이 깊어진 검찰과 정치권의 앙금은 최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기능 폐지를 놓고 또 다시 불이 붙을 태세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검찰소위는 이미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에 합의한 상태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이번 검찰 수사가 정치권과의 신경전에 노조가 이용되고 있다는 주장을 하며 강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검찰의 압박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미 여의도 정가에는 쪼개기 후원금 사건의 일환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 산하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노조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국회의원들의 명단(일명 ‘한전 로비 리스트’)이 돌고 있다.
이 리스트에 따르면 한전 노조로부터 1인당 10만 원씩 쪼개기 방식으로 후원금을 전달받아 사건에 연루된 국회의원은 한나라당 51명, 민주당 35명, 기타 19명 등 총 105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검찰 수사대상자는 한나라당 9명, 민주당 7명, 자유선진당 1명, 무소속 1명 등 모두 18명인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 대상자들은 1명(환경노동위원회)을 제외하곤 모두 지식경제위원회 소속인 것으로 본지 취재 결과 드러났다.
이들 의원들 대부분은 아직 검찰로부터 소환 통보는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리스트에 오른 한나라당의 L 의원 측은 “아직 검찰로부터 수사 협조 요청이나 소환 통보는 없었다”면서 “(한전 노조로부터 후원금 받은 사실은)이미 해명 한 것으로 정상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받은 것이라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당의 K 의원실 관계자는 “검찰 수사대상자에 올랐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면서 “한전 노조 측으로부터 지난해 관례적으로 1인당 10만 원씩 후원금 받은 사실은 있지만 액수를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지경위의 핵심 위원인 민주당 K 의원 측은 검찰 수사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K 의원실 관계자는 “개인이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은행 계좌로 입금 받은 것이라 보냈는지 안보냈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면서 “1인당 10만 원씩 소액 후원한다는 것이 취지인데 그런 걸로 검찰 수사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면 소액 후원 받은 사실이 있는 모든 국회의원들을 다 수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 (검찰의) 수상한 언론플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여야가 ‘중수부 폐지’ 카드에 따른 맞불카드가 아니냐는 의혹이다.
민주당, ‘불법’을
‘합법’으로?
검찰의 압박이 거세지자 민주당은 현행 정치자금법을 개정해 ‘쪼개기 후원금’을 합법화 한다는 방침이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회에서 민주노총 이영훈,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검찰이 현행 정치자금법의 미비한 조문을 악용해 양대 노총이나 야당, 진보정당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며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다 중단됐는데 빠른 시간 내에 국회에서 결론을 내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백원우 의원이 대표 발의해 여야가 합의했지만 여론의 반발로 인해 이미 한차례 무산된 바 있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재추진한다는 뜻이다.
김 원내대표는 “정치자금법의 미비점을 보완해 당초 취지대로 소액다수 후원금제도와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실히 확보하는 제도로 바꾸고, 부당하게 야당(과 노조 등에 대한) 탄압의 수단으로 쓰이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검찰은 ‘기소 이전에 언론에 수사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내부 수칙에 따라 수사진행 상황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정치인들의 입은 바짝 마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의 이번 노조 쪼개기 후원금 수사가 대검 중수부 폐지를 둘러싼 국회와의 ‘힘 겨루기용이 아니냐’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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