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대통합 운명, “유시민이 캐스팅보트”

민노-진보 진통 끝에 통합 합의 결과는 ‘미지수’
유시민 참여에 진보신당 내부는 강한 불만의 소리
[전성무 기자] =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논의가 합의점을 도출하면서 야권연대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생존전략’과도 같다. 하지만 통합진보정당이 성공적으로 출범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각 정당의 전당대회에서 합의문 추인 절차를 남겨 두고 있지만 내부에서 통합에 대한 반발기류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통합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면서 벌써부터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 1일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새로운 통합 정당 출범에 최종 합의했다. 통합 논의는 지난 1월부터 물밑에서부터 꾸준히 진행돼 왔다. 민노당의 이정희, 진보신당의 조승수 대표 등 12곳의 당ㆍ시민사회단체 대표는 전날부터 이날 새벽까지 연석회의를 진행한 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새 통합정당 정책에 대한 최종합의문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대북정책, 북한의 3대 세습 등과 관련된 입장 정리 문제를 놓고 진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합의문에서 북한의 3대 세습문제와 관련해서는 “6ㆍ15 정신에 따라 북의 체제를 인정하고 ‘북의 권력 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또 2012년 대선은 “완주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되 ‘신자유주의 극복과 관련된 주요 정책들에 대한 가치를 기준’으로 선거 연대도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당 운영과 관련해서는 1인1표제로 공직ㆍ당직후보 선출, 일정기간 공동 대표제 운영 등의 방식에 합의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각각 6월 17∼18일과 26일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합의문이 추인되면 9월 최종 통합한다는 방침이다.
각 당, 심상치 않은
내부 여론
하지만 통합에 대한 각 당 내부의 여론이 심상치 않다. ‘유시민’이라는 변수가 등장했다. 유 대표는 새로 출범할 통합진보정당에 합류하겠다는 통합 의사를 내비쳤다.
유 대표는 지난 7일 국참당 홈페이지에 ‘국민참여당은 대중적 진보정당을 지향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발제문에서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통합을 계기로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변화하여 스스로 국가권력 운영을 맡으려는 '집권전략'으로 나아갈 의사가 확인된다면 참여당이 함께 하는 문제를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 대표는 또 “독자노선이란 것이 최대한 후보를 내서 완주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참여당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면서 “야권연대를 하지 않는다면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당선시키는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4ㆍ27 재보선 패배 이후 국참당의 진로를 고민해 왔다. 하지만 유 대표가 통합 의사를 전함에 따라 사실상 당의 독자노선을 접고 야권 ‘통합’을 통해 생존의 길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주목되는 것은 유 대표가 통합 의사를 내비치게 된 배경이다. 유 대표가 내년 대선 출마를 염두 해 두고 있다면 진보정당과의 연대는 필요충분조건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함께 유력한 야권 주자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선에서 야권이 정권교체를 하기 위해선 박 전 대표와 야권 단일후보의 1대1 구도를 형성해야 하는데, 손 대표를 제치고 야권단일후보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통합진보정당의 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일단 유 대표의 통합의사에 대해 민노당의 이 대표는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7일 YTN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진보정당이 내년에 큰 변화를 만들어보겠다고 하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라면서 “참여당은 당원 민주주의를 구현하려는 정당이고 지역주의에 얽매이지 않는 정당이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진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화답했다.
같은 날 이 대표는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도 “6·15 공동선언마저 부정하는 반북 반통일 세력과 맞설 준비가 되어 있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양극화를 부추기는 신자유주의를 털어낸다면, 누구든 진보정치 실현의 길을 함께 열어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또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고 우리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위한 열망과 가치를 공유한다면 과감하게 손잡을 것”이라며 “서로에 대한 선입견과 묵은 감정을 버리고 명실상부한 진보세력의 대통합을 실현하자”고 말했다. 사실상 유 대표를 통합진보정당에 포함시키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유 대표의 통합 참여를 놓고 각 진보정당은 내홍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통을 거듭하는 마라톤 회의 끝에 통합에 합의했지만 내부 의결에서 부결될 것이라는 회의론이 확산되는 상황.
민노당 내에서 나오고 있는 국참당과의 통합 논의가 오히려 기존 통합논의에 찬물을 끼얹는 분위기다. 통합 파트너인 진보신당이 “국참당은 애초에 통합대상이 아니지 않았느냐”며 내부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조승수 대표는 유 대표와 이 대표의 통합관련 보도가 나온 지 하루 만에 견제구를 날렸다.
조 대표는 지난 8일 오전 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참여당이 진보정당에 참여하겠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라며 “이번 합의문의 의미는 진보정치가 자유주의 개혁 세력과 달리 독자적으로 성장 발전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민참여당이 비정규직 문제, 사회 양극화 문제에 대해 스스로 분명한 태도를 밝히는 것이 새로운 진보정당에 합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고 말하며 통합에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진보신당 내부에서는 애초 민노당 당권파들은 통합에 미온적 입장이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이 대표와 유 대표가 최근 ‘밀월’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진보신당과의 통합을 무산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진보신당 내부에서는 통합 합의문이 11일 전국위원회와 26일 전대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통합 합의문 부결 이후 진보신당 분열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기존의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아젠다에 유 대표가 공식적으로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야권연대에 지각변동이 예고되는 것이다.
민주당 내부 통합
찬반론 엇갈려
민주당 역시 야권연대 전략의 전면적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민주당은 현재 야권통합정당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동영 천정배 이인영 최고위원 등을 주축으로 통합 찬성파, 김효석 강봉균 의원의 반대파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정동영 천정배 최고위원은 “야권통합은 5·18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 강조하고, 이 최고위원은 “진보정당 간 통합이 완료되고 국민참여당도 통합 논의가 이뤄진다면 대통합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형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파는 통합 이후 당의 정책기조 형성에 대한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31일 열린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 김효석 의원은 “통합하면 우리가 종북주의 등과 같은 민주노동당의 이념, 정책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라며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호남권 의원들의 반대론이 거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통합을 놓고 민주당 내에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호남과 비호남지역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어서다.
호남은 민주당의 전통적인 텃밭으로, 선거 승리가 사실상 보장되는 지역이다. 민주당이 지난 4월 재보선에서 순천에 공천을 하지 않은 것도 호남의 양보를 통해 야권연대의 기틀을 다지자는 취지였다. 이 때문에 당시 비호남 출신 의원들은 순천 무공천에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반면 호남 출신 의원들의 반발이 거셌다. 일부 후보자들이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호남 출신들 사이에서는 이런 기류가 내년 총선까지 지속된다면 민주당의 공천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확산됐다.
유시민 참여
호남 의원들에 ‘악재’
호남 출신들이 민주당의 통합에 반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호남권과 달리 호남권 의원들에게 야권연대는 당을 위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여기에 호남권 의원들에게 악재가 더해진다. 야권통합 논의에 유 대표가 참여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통합 구상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위한 야권단일후보를 내기 위한 임시적이고 한시적인 가설 정당(페이퍼 정당)을 만들자는 것과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통합한 뒤 국참당까지 통합이 완료되면 민주당이 참여하게 되는 야권대통합정당론이 그것이다.
유 대표는 그동안 호남 기득권에 강한 반감을 보여 왔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통합논의가 야권대통합정당론으로 방향을 설정하면 통합정당에서의 ‘유시민 발 물갈이 공천’이 호남을 강타할 수 있다. 변수는 유 대표의 선택이다. 유 대표가 통합을 위한 방향을 어디로 최종 설정하느냐에 따라 야권연대의 틀이 바뀌고 차기 대선 구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재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유 대표는 손 대표와 야권 1, 2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 만약 유 대표가 통합 참여를 최종 거부하고 독자 노선을 택하는 ‘무리수’를 둔다면 야권은 표 분산으로 인해 ‘자멸’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이 4월 재보선 이후 잠잠했던 유 대표의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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