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우 전 의원이 본 정치 30년 YS와 무너지는 사람들 ③편

유신 이후 첫 지방선거 ‘국민 심판의 장’
“불면 날아갈 것 같은…선거 치룰 수 있나”
[장경우 전 국회의원] = 제1차 지방자치제 선거가 다가오고 있었다.
유신 이후 최초로 실시되는 지방자치선거는 3당 합당 이후 최초의 국민심판이었다. 당시 3당 합당은 ‘3당야합’으로 불리우면서 선거분위기는 이미 야당에 유리한쪽으로 선거판이 굴러가는 듯 했다.
당시 야당은 3당 합당에 동참하지 않았던 이기택, 박찬종, 김광일, 이철, 홍사덕, 장기욱, 김정길, 노무현 의원 등이 구 민주당의 이름(꼬마 민주당)을 간직하고 있다가 이당이 신민당과 통합하면서 ‘민주당’으로 새롭게 정비되어 있었다. 물론 의석수는 80석 미만이었지만 여당이 워낙 커서 그렇지 야당으로 보면 결코 적은 숫자를 가진 당이 아니었으며 엄연한 제1야당이었다.
이때부터 매일같이 뉴스의 멘트는 ‘오늘 민자 민주 양당은’으로 정치뉴스가 시작되곤 했다. 이로부터 몇 년 동안 지속되는 양당 구도가 국회에 자리 잡힌 것이었다. 정치는 자연스럽게 양당구도로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바로 이 양당구도에서 맞이하는 첫 선거가 바로 제1차 지방자치선거였다.
선거가 시작되자 나는 또 일복이 터졌다. 사무부총장으로 지자체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런데 3당 합당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고 바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여당인 민자당은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민자당으로선 꽤나 힘든 선거의 시작이었다.
서울의 경우 젊은 층은 아예 민자당을 하지 않으려고 할 정도였다. 그 와중에 마포지구당(박명환전의원)이 서울시 시의원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고 기타지구당도 고민이 많아 중앙당의 전폭적인 지원과 관심을 요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아예 후보를 못 내고 있는 지구당이 생겼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마포구였다. 선거 일자는 다가오는데 아직 후보를 못 내고 있으니 참으로 참담하기가 그지없었다.
당시 서울의 분위기는 여당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거대 여당에 대한 견제심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었다.
본부장인 나로서는 여간 답답하고 난처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 마포지구당은 시의원후보로 내정되었던 사람이 사전선거운동으로 구속되는 등말썽이 많았는데 이렇게 되자 나는 위원장인 박명환 의원만 다그칠 뿐이었다.
“후보를 못내면 어떡합니까. 아니 이거 정말 후보를 안낼 겁니까, 못내는 겁니까….”
“하겠다는 사람이 없은데 저인들 어떡합니까.”
“아무튼 후보자가 정 없으면 위원장을 사퇴하시던 아니면 무슨 방법을 강구하셔야지, 마땅한 후보가 없다고만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정말 이러다가 큰일 내겠습니다.”
“별 수 없이 지구당 사무국장이라도 내보내야할 판인데 그 사람은 워낙 돈이 없어서….”
참 큰일은 큰일이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이건상 총무국장과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당사 앞 설렁탕집에서 간단하게 소주한잔을 곁들인 자리였다. 화제는 당연히 내 근심거리였다. “마포구 서울시 의원후보가 없다니 큰 걱정인데…“그런데 갑자기 이건상 국장이 입을 열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로
“이선희는 어때요?”
하는 것이었다.
“이선희가 누구야.”
“왜, 그 가수 있지 않습니까? ‘J에게’를 부른 가수말예요!”
“이 사람아, 남은 가뜩이나 골머리 아파 죽겠는데 농담하지마! 가수 이선희가 무슨 시의원에 나가나? 그리고 아직 어리잖아?”
“요즘 연예인 중에 제일 뜨고 있고 또 스캔들도 전혀 없고 아무튼 그 가수가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인기 좋습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 사람이 마포와 무슨 상관이야?”
“왜요? 강변가요제출신이잖아요, 마포가 바로 강변지역 아닙니까?”
“참내. 둘러대기는… 거 골치아파죽겠는데 농담 그만 하라구!”
나는 그냥 흘려듣고 다시 당사로 들어왔다. 그런데 농담하지 말라며 흘려듣긴 했는데 자꾸만 총무국장말이 떠올랐다. 이선희라!
일단 고등학교 동창 중에 연예담당PD로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선희라는 가수 알아?”
“그럼, 요즘 아주 잘나가는 가수다. 그런데 왜?”
“아니, 그냥 좀…그런데 그 사람 똑똑해? 어디 살아?”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아무튼 호평 받고 있는 가수야. 꽤 똑똑한 편이지. 어디살고 있는 것 까지는 모르고 필요하다면 알아봐서 연락할게.”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가수에 대한 선입견과는 달리 의외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바로 이선희씨가 공연중인 한 장소를 찾아 공연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공연이 끝나자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 이선희씨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아이쿠!”소리가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무대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어쩌면 그렇게 작고 여려 보이는지 흡사 ‘불면 날아갈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저렇게 앳되 보이는 사람이 과연 살벌하기까지 한 선거전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어쩌랴. 주사위는 이미 던져 진거나 다름없었다.
“오늘 이선희양을 만나자고 한 것은 다가오는 지방자치선거에 우리당 공천을 받아 서울시 시의원에 나가실 의양이 없으신지 의논을 하려고 보자고 한 것 입니다.”
일단 나는 말을 던져놓고 “이번 지방자치선거, 특히 서울시 시의원선거의 중요성과 올바른 지방자치의 시작이기에 더욱 중요 합니다"라고 말을 이었다. 여성의 섬세함과 여성의 특성이 많이 필요한 점, 특히 서울시 시정의 엄청난 예산과 시정업무의 감독 등 중요성을 차례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하는데 듣는 표정이 여간 진지한 것이 아니었다. 관심과 의지가 있어 보였으므로 일단은 안심이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장경우 전 국회의원] kwa815@naver.com
장경우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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