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고동석 기자] 가을 이사철을 맞았지만 수도권 일대 조성된 신도시들의 풍경은 한산 하다못해 을씨년스럽다. 명품 신도시라는 판교, 일산, 인천 송도, 청라지구는 부동산 경기가 불황을 맞으면서 매매 거래가 끊긴지 오래다.
허허벌판에 대규모 주택단지만 덩그러니 들어선 김포 한강신도시, 파주 운정신도시, 수원 광교신도시, 양주 신도시 등은 적막하다 못해 때 묻은 ‘분양 임대’ 깃발들만 나부끼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해가 지면 그야말로 가로등만 켜져 있어 유령도시를 방불케 한다. 개발 초기부터 수도권의 대표적인 명품 신도시로 주목받았던 인천 송도, 청라지구와 성남 판교신도시, 수원 광교 신도시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1. 중복투자로 제살 깎는 인천 신도시들
인천 송도국제도시 내 초고층 빌딩들의 입주율은 제로점을 찍고 바닥 아래까지 떨어졌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실제로 송도 업무지구 현장을 찾아가 보니 준공을 완료하고 2년이 넘은 건물 대부분이 텅텅 비어 있었다.
인천 송도 지식산업단지 내에 조성된 테크노파크에서 만난 분양 대행업체 대표 L씨(48·남)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지경”이라며 하소연했다. 그는 “사무용 빌딩이 아닌 신개념 아파트 공장과 연구시설로 조성된 테크노파크는 1년 전만 해도 그나마 입주를 희망하는 내방객이라고 드문드문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찾아오는 발길도 뚝 끊긴 상태”라며 “미분양 사태가 장기화되자 빌딩이 통째로 매물 시장에 나올 정도다. 특별 할인 분양이 효과가 없어 임대까지 할인하는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송도 업무지구에서 입주율이 50%를 넘은 빌딩은 포스코 건물 사옥 단 한 곳뿐이고 나머지는 70~80%의 공실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기반 시설비만 6조 4231억 원이 투입된 청라지구 상황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업무타운도 송도 업무지구와 중복돼 업무용 오피스텔 입주율은 20~30% 수준을 맴돌고 있다. 송도와 청라지구의 빌딩들마다 ‘상가 임대’ 딱지들이 나붙어 있었다.
청라지구가 조성될 때 들어온 부동중개업자 K(49·남)씨는 “송도와 청라는 거리상으로 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인천시라는 울타리에서 양쪽 모두 대규모 업무지구와 주택단지를 갖춰 제살 깎는 중복투자로 실패한 것”이라며 “송도는 물론이고, 청라지구 때문에 인천시는 2030년까지 재정적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쓴 소리를 쏟아냈다.
#2.유령마을 방치된 판교신도시
성남시 분당구 판교신도시에 임대아파트 3700여 가구가 들어선 백현마을 3,4단지는 4년째 사람이 살지 않은 유령마을로 방치돼 있다. 밤에는 가로등 불빛이 적막한 아파트 단지 입구를 비추고 있다. 자칫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갔다간 위치 파악을 못해 헤맬 정도다.
단지 준공 당시 평당 3000만 원을 호가하던 단지 앞 주변 상가 주인들도 입주하는 아파트 주민이 없어 쪽박 찰 신세가 됐다. 아파트단지 내에 있는 화랑초등학교(24학급)는 2010년에 개교했지만 3년째 입학생이 없어 교실 책상마다 먼지만 수북하게 덮여 있었다.
단지 주변 부동산 업체 P(56·남)씨는 판교 로또라는 말에 몰려든 인근 상가 건물주와 임차상인들이 성남시와 LH공사를 상대로 아파트 주민을 빨리 채워 넣으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하려고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판교 신도시 전체가 도미노처럼 주저앉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제과점 주인 H(42.여) “월200만 원의 임대료는 물론, 각종 세금도 못 낼 처지”라며 “아무런 대책이 없는 언제 끝날지 모를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힌 느낌”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판교 로또’라는 말에 일찌감치 판교신도시 내 판교 역세권 주변 건물 상가에 투자했던 자영업자들 중 상당수는 판교신도시 유입 인구가 적은 탓에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상가 대출 이자도 감당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판교 삼평동 L부동산 업체 관계자는 “판교 역세권 상가는 애초에 고분양가로 거래돼 임대료 자체가 높아 공실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은 임대료를 낮춰도 임차인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답답한 심정을 털어냈다. 그래서 조만간 급매물이 속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판교 신도시 초기 투자자들은 상가 하나에 20억 원을 호가하는 고분양가에도 매입했다. 하지만 공실상태가 수년 동안 장기화되면서 대출 연체를 못 견디고 지금은 하나둘씩 급매물로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3.고립무원의 광교신도시
수원 광교신도시 아파트 단지들은 지난해 7월부터 입주시작한지 1년이 됐지만 아직도 주변 공사가 끝나지 않아 흙먼지를 날린다.
당초 서울 강남역까지 30 분안에 갈 수 있는 전철과 도로 등을 갖춘 미래형 친환경 첨단 명품도시 표방했지만 ‘첨단도시’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광교신도시 웰빙타운 입주자들은 열악한 기반 편의시설에다 다른 신도시에 비해 교통 불편까지 호소하고 있다. 한 주민은 “명품도시라고 해놓고 들어와 보니 정작집 주변에 병·의원은 고사하고 흔한 약국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 따지듯 반문했다.
주변 부동산 업체 관계자는 “입주율이 절반도 안 되고 여타 신도시보다 열악한 주변 편의시설에다 상가 건물이 비어 있다보니 구 도심권으로 나가는 주민들이 다시 아파트를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전체 1480세대 중 25%가 입주한 광교호반마을의 경우는 반경 1㎞내 초등학교는 단 한곳도 없다. 아파트 단지만 조성돼 있는 고립무원의 생활 환경에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한 주부는 “요즘 같이 불안한 시기에 밤에 덩그러니 아파트만 있고 주변은 컴컴하다고 못해 암흑천지여서 초저녁만 되도 집 나가기가 겁이 날 정도”라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도청 광교신도시 이전 계획이 잠정 보류되면서 활기를 띠던 분양권 매수도 다시 얼어붙어 신도시 전체 아파트 단지 입주율은 25% 선에서 정체되고 있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실장은 판교신도시는 다른 수도권 신도시에 비해 인프라 구축이 최악으로 예정돼 있는 행정타운이나 생활 편익 자족기능 능력을 선제적으로 조성하지 않고 아파트만 우선적으로 지어 놓은 것은 과거 잘못된 신도시 개발 모델을 답습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광교신도시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경기도청 이전이 보류돼 결국 논밭 사이로 허허벌판에 신도시를 계획한 김포 한강신도시와 별다를 게 없는 상황이 됐다"며 "수도권 주변 신도시들이 겉은 명품으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언제 터질지 모를 글로벌 경제위기 속 최악의 부동산 경기 침체라는 시한폭탄 위에 앉아 있는 신세나 다름없다. 때문에 상당기간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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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석 기자 kd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