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이명박에 반기를 들 때

[홍준철 기자] = 유럽특사를 다녀온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10개월만에 재차 단독 회동을 가졌다. 미래권력과 현재권력이 나눈 밀담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지난해 8월 회동 이후 맺은 신사협정이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MB 정권과 ‘동행’하는 모습은 차기 대권 행보에 도움이 되질 않을 것이란 시각이 대부분이다. 또한 최근 박 전 대표가 보여준 일련의 정치행보가 차기 대권 주자로서 ‘2%’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박 전 대표를 마크했던 담당기자들로부터 ‘박근혜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친박 진영을 바짝 긴장케 하고 있다. ‘박근혜 마크맨’들이 말하는 박 전 대표의 ‘2% 부족한 부분’을 들어봤다.
“과거에 발목 잡혀 미래 권력 빼앗길수도”
박근혜 전 대표 곁에는 유독 마크맨(소위 담당기자)이 많이 존재한다. 박 전 대표가 여성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박근혜 대세론’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중앙 언론사와 지방지, 그리고 인터넷 매체 등은 박근혜 전담 기자를 따로 둘 정도였다. 이런 현상은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때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로 나뉘어 치열한 경선을 치룬 결과였다. 이로 인해 국회출입기자들 사이에선 ‘친박 기자’, ‘친이 기자’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최근에는 지난 경선때부터 박 전 대표의 주요 마크맨으로 모 일간지 정치부 기자가 박 전 대표의 ‘대변인으로 간다’, ‘비례대표로 간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나면서 갑작스럽게 국회를 떠나는 헤프닝마저 발생했다.
또한 각 언론사에서 서강대 출신 기자들을 전면배치해 박 전 대표(서강대 전자공학과 출신)와 손학규 대표(서강대 교수)에 밀착마크 시키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박 전 대표를 담당했던 마크맨들이 말하는 박 전 대표의 ‘대망론’은 그렇게 밝지 않은 편이다. 특히 최근 박 전 대표가 보여준 정치적 행보 관련 ‘차기 대통령감으로 2% 부족하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그 하나가 ‘황우여 원내대표의 수첩사건’이었다. 친박근혜계와 친SD계가 힘을 합쳐 당선시킨 친박 중립의 황 원내대표 당선은 이변이었다. 비주류의 반란이자 주류의 패배였다. 그런 황 원내대표가 전당대회관련 룰 논쟁이 한창일 시점에 박 전 대표를 배석자 없이 비밀리에 만난 후 기자들에게 브리핑한 사건이 일어났다.
박근혜, 황 원내대표 직접 브리핑?
황 원내대표는 원내수장이지만 당 대표 부재로 인한 대표 권행대행까지 하는 집권 여당의 막강한 권력자다. 또한 170여 명의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대표하는 인사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배석자 없이 원내대표가 직접 수첩에 브리핑할 내용을 적게하는 수모를 줬다.
이에 대해 인터넷 매체소속의 한 기자는 “벌써 대통령이 다 된 듯한 행동”이라며 “원내부대표단까지 꾸리고 있는 엄연한 원내대표가 직접 적고 기자들에게 브리핑하게 한 것은 차기 대권주자로서 포용력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질타했다. 오히려 황 원내대표측의 인사가 의심스럽다면 믿을 만한 친박 측근들을 배석시켜 황 원내대표의 ‘면’을 살려줄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배석자 없는 회동으로 인한 수첩 브리핑’은 ‘신비주의 전략’과 맞물려 인의 장막에 쌓여 있다는 반증이라는 시각마저 나왔다.
인사청문회 '불참'
청문보고서 '찬성'
또 다른 기자는 최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인사 청문회 건을 보면서 박 전 대표의 원칙과 약속을 지키려는 평소 소신에 실망했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오랫동안 박 전 대표를 알고 지낸 일간지 정치부 기자는 “박 전 대표는 기획재정부 장관 인사청문회에 불참하고 청문 보고서에는 ‘찬성’을 던졌다”며 “왜 인사청문회에 불참했는 지를 묻는 질문에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해서 안했다’는 말을 들었다. 정치적으로 민감해 한다면 정책 질문을 하면 되지 상대방이 부담스러워 불참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평했다. 특히 박 전 대표는 복지, 감세에 국민적 관심이 높고 본인 역시 평소 관심을 보인 현안이라는 점에서 인사 청문회에 참석해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때부터 박 전 대표를 쫓아다닌 다른 일간지 기자는 박 전 대표의 서민주의적인 모습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3김은 둘째치고 시골 장터나 노량진 수산시장에 대통령 후보자가 가면 대통령감과 아닌 사람이 구별되는 경우가 있다”며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점퍼 차림으로 생선가게에 들러 생선을 두 손으로 감싸안듯 잡으면서 ‘그놈 싱싱하다’라는 멘트를 날렸다. 반면 이회창 후보의 경우 생선꼬리를 한 손에 그것도 두 손가락을 이용해 잡고서 ‘싱싱하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앞의 두 인사는 대통령에 올랐지만 이 대표는 2번이나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 역시 이 후보와 마찬가지로 정장차림에 생선꼬리를 잡는 모습을 보고 서민친화력이 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전 대표가 친서민적인 행보를 보이질 않는다면 이회창 후보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생선가게,
찜질방 대처법
실제로 박 전 대표의 친서민적 모습이 부족한 예는 이뿐만이 아니다. 기자 역시 한나라당 경선당시 직접 목도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박 캠프에서 친서민적 모습을 보이기 위한 기획안과 이벤트를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때였다. 급기야 박 캠프에선 박 전 대표가 전국을 순회하는 도중 ‘동네 아줌마들과의 찜질방 미팅’을 기획했다. 땀으로 범벅이 된 박 전 대표가 찜질방에 들어가 아줌마들과 아이들에 둘러싸여 시원한 식혜와 계란를 먹는 이벤트를 마련한 것.
일정담당과 조직책 그리고 동원된 아줌마들까지 만반의 준비가 이뤄졌다. 그리고 캠프내 전략기획 담당자가 전체회의에서 박 전 대표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반응은 간단했다. 박 전 대표는 “쇼처럼 보이질 않을까요?”라고 한 마디가 전부였다. 이 한 마디로 ‘찜질방 미팅건’은 자연스럽게 무산됐고 이후 캠프내 어느 인사도 재차 건의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다수 박 전 대표의 마크맨들이 주장하는 ‘박근혜 회의론’에 근거는 ‘과거와 미래’의 상충이었다. 박 전 대표의 대세론에 근간이 ‘박정희 향수’라면 21세기 정치인으로서 ‘미래권력’ 박 전 대표의 종착지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정희 딸’이라는 점에서 박 전 대표는 아버지의 공과 과를 다 껴안고 가야하는 운명이다. 이로인해 ‘독재자의 딸’이라는 꼬리표도 안고 살고 있다. 그렇다고 박 전 대표가 뚜렷하게 미래지향적인 비전 혹은 독자적 시대정신을 보여준 적은 더욱이 없다는 지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박 전 대표의 대권 가도에서 ‘과거 프레임’은 득보다는 실로 작용할 공산이 높다는 얘기다. 한 인터넷 매체 정치부 기자는 “박근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원칙과 약속, 그리고 신뢰의 정치인이다”며 “하지만 10년전 한 말을 여전히 고수해야 하는 박 전 대표로선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는 질문에 갈수록 답하기 힘들 전망이다”고 말했다. 한번 뱉은 말을 지키려는 박 전 대표지만 세월이 흘러 시대적 요구와 사회적 환경이 바뀌고 있는데도 과거에 얽매여 있어 과거의 말이나 약속이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나라당이 아닌 새로운 보수세력을 조직하고 있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역시 박 전 대표를 겨냥해 “과거에 비교적 큰 실수 없이 잘해온 정치인이지만 미래 지도자가 되려면 그것만으론 안된다”며 “국가적 문제를 해결할 구상과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박근혜 ‘과거’ 아닌
‘미래’ 돌파법은
급기야 ‘박근혜=과거’라는 이미지를 깨고 ‘박근혜=미래’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한 박 전 대표 진영의 노력은 눈물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박 전 대표가 ‘반값 대학등록금’관련 자신의 트위터에 학생들의 ‘미래’와 ‘환경’을 강조한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또한 싱크탱크격인 연구소의 이름 역시 ‘국가미래연구원’으로 정했다. 친박연대에서 분화한 서청원 대표가 있던 ‘미래희망연대’, 이규택 대표의 ‘미래연합’ 심지어 외곽조직인 ‘충청미래희망포럼’까지 온통 ‘미래’라는 단어가 박 전 대표 주변에 널려 있다.
마크맨들이 지적한 또 다른 박 전 대표의 지지율 터닝포인트로 이명박 대통령과 ‘관계설정’을 들었다. 여론조사에 나타나듯 MB 정권에 대한 국정 지지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최근 최측근 인사가 연루된 저축은행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임기말 4년차 증후군’(권력누수 현상)이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폭넓게 퍼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MB와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자칫 ‘동반추락이냐’, ‘대세론 지속이냐’의 갈림길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 일각에서 박 전 대표가 ‘MB 인사스타일’, ‘대북 관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재 권력과 투쟁을 통해 미래권력인 박 전 대표가 21세기형 지도자로서 자리매김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기사수정 : 2011.06.09 13:30분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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