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의 안건은 전자투표 방식으로 의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투표가 끝난 뒤에는 본회의장의 전광판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 이름 앞에는 녹색, 반대 의사를 표시한 의원 이름 앞에는 붉은 색의 동그라미가 표시된다.
전자 투표를 하지 않고, 비밀 투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회법 제112조와 제130조는 본회의에서의 표결방식 중 하나로 무기명 비밀투표를 하는 실시하는 경우가 명시돼 있다.
무기명 투표는 ▲대통령으로부터 환부(還付)된 법률안의 재의 ▲인사(人事)에 관한 안건 ▲국회의장단 및 상임위원장 등 각종 선거(국무위원 임명동의안 포함)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에 관한 해임건의안 ▲탄핵소추안 등을 의결할 때 실시한다.
무기명 투표를 할 때 임명동의(승인)안이나 선출안의 경우는 투표용지에 가·부를 기재하고, 선거에 관한 안건의 경우는 후보자의 성명을 기재토록 하고 있다.
특히 가·부를 적을 때는 반드시 한글이나 한자로 '가' '可' 또는 '부' ‘否'라는 문자만 써야 한다.
까다로운 규정 때문에 무효표도 자주 나온다. 투표 용지에 가, 부가 아닌 O, X로 표시한 경우, 밑줄을 긋거나 점을 찍는 경우 모두 무효로 처리된다.
그럼에도 무기명 투표를 실시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본래 국회는 국회의원의 찬성·반대 여부를 속기록에 기록해 역사에 남기는 것이 원칙이다. 무기명 투표를 실시하는 이유는 찬반을 표시하지 않음으로써 국회의원이 외압에 시달리지 않고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세종시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지난해 1월, 한나라당 이계진 전 의원은 세종시 수정안을 본회의 무기명 투표로 처리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세종시 문제가 정파·계파·지역적 이해관계에 맞물려 있어, 대한민국 국회의원 개개인의 소신에 따라 투표할 수 있도록 무기명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회법상 무기명 투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세종시 수정안 의결은 결국 기명 전자투표로 진행됐다.
2010년 6월29일, 세종시 수정안은 찬성 105명, 반대 164명, 기권 6명으로 부결됐고 속기록에는 찬성, 반대, 기권을 표시한 의원들이 이름이 기록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안 부결 직후 "오늘 국회의 결정에 대한 평가를 역사에 맡기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달 윤리특별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는 무소속 강용석 의원에 대한 의원직 제명안은 그 반대의 경우다.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이 강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무기명 투표가 아닌 기명 투표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역사상 국회 본회의에 국회의원의 상정된 경우는 4건이지만, 가결된 적은 단 1번 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1997년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대통령은 유신체제 군사정권의 정치 탄압의 일환으로 국회의원직을 잃었다.
국회의원 제명안이 가결되기 어려운 것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원들의 '제 식구 감싸기' 경향도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제명안을 기명 투표로 의결, 투표 결과를 낱낱이 공개해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뒤따른다.
박세준 기자 yaiyaiy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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