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경선에 ‘이변’은 벌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경선 초반 제주/울산에서 문재인 대세론을 잠재울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던 손학규 김두관 양측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강원/충북 경선까지 문 후보의 대세론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대선은 장외의 안철수 원장과 박근혜 양강 구도가 더 고착화되는 분위기다. 문 후보는 경선전부터 ‘안철수와 공동정부론’을 제안하면서 ‘대통령-총리(조각권)’로 각각 역할 분담을 예고한 바 있기 때문이다.
‘옥동자’ 낳지 못하는 민주당의 비애
최근에는 ‘안철수’라는 단어 대신 ‘시민’으로 바꿔 ‘시민과 공동정부론’을 역설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경선이 한창 진행중임에도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결정적인 배경이 ‘박근혜 대항마’ 부재가 근본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안철수 대 박근혜 양강구도로 만드는데는 민주당 내부 요인뿐만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당장 각종 언론 매체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박근혜 양자 대결이 박빙의 모습을 보이면서 민주당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KBS가 8월 27∼28일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선 양자 대결시 박 후보는 47.7%, 안 원장은 44.8%로 오차범위내 경쟁을 보였다. 반면 박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양자대결에서는 박 후보가 52.7%를 기록, 문 후보(39.3%)를 여유 있게 앞섰다.
이런 여론조사의 흐름은 사회지도층에 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직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안 원장이지만 지난 8월 중순에는 교수 52명이 ‘안철수 교수 지지 선언’을 발표했다. 이를 주도한 ‘한국비전 2050 포럼’에선 2차 3차 지지선언이 앞으로 더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또한 안 원장을 지지하는 외곽 조직인 ‘철수 산악회’, ‘CS 코리아’, ‘철수처럼’ ‘안철수를 사랑하는 모임’ 등 전국에 지부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춰 정치권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운찬 전 총리가 최근 ‘제 3지대’에서 정치 세력화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실상 정 전 총리보다는 ‘제 3세력’의 정점에 안 원장이 자리잡고 있어 참여할 경우 정치적 파괴력은 상당히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 전 총리의 ‘제 3지대 신당창당’에는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운찬-안철수 연대설’이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안철수측 금태섭 변호사 역시 양강 구도를 의식해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한데 묶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고 다소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 변호사는 8월29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안 원장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같이할 사람을 모으고 있고, 많은 이들이 뜻을 함께하려 한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 결정이 늦어지면 캠프 등 준비가 부족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도 “만약에 한다면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구체적인 출마 시기와 관련해서는 그는 “국민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고 신상이나 정책 문제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늦지 않게 결심해서 말씀드릴 것으로 안다”고 우회적으로 답변했다.
‘산토끼을 잡아라’ 박근혜 특명
안 원장이 행보를 예의주시하는 또 다른 후보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다. 지난 8월20일 압도적인 표차이로 대통령 후보가 된 박 캠프 역시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후보보다는 안 원장에 대해 더 신경을 쓸수밖에 없다. 부산 출신의 50대 초반으로 최초로 성대결을 벌이는 데다 정치 영역에 발을 담가보지 못한 민간인 출신 후보의 출현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박 후보는 새누리당 후보가 된 이후 보수표 결집보다는 중도좌파 진영의 표를 움직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어차피 집토끼(보수표)는 잡았고 산토끼(진보표)만 잡으면 대권을 거머쥘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이런 박 후보의 모습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시작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지역과 이념을 아우르는 광폭 행보를 보였다.
지난 8월 28일에는 전태일 재단을 전격 방문했다.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는 박 후보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어두운 이면이다. 이 때문에 박 후보의 전태일 재단 방문은 박정희 시대의 과오를 안고 가겠다는 후보의 의지란 평가가 쏟아졌다. 하지만 쌍용자동차 노조원의 ‘육탄저지’로 박 후보의 전태일 재단 방문은 무산됐다.
그러나 박 후보의 아버지 공과 과를 동시에 껴안는 전략은 계속될 전망이다. 박 후보가 YS, 이희호 여사 등 전직 대통령 영부인을 방문할 당시 군부출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예방할지가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병상’으로 유보했다고 해도 여전히 건강한 전 전 대통령을 결국 방문하지 않은 배경 역시 ‘5·16 쿠데타’를 일으킨 아버지의 어두운 면을 상기시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통합을 위한 인재 등용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박 후보는 안대희 전 대법관을 캠프내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기용했다. 안 위원장은 서울지검 특수부장 시절 서울시 버스회사 비리사건, 대형 입시학원비리, 설계감리 비리, 수천억대에 이르는 변인호씨 거액 사기사건 등을 처리해 명성을 날렸다.
무엇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시험 17회 동기인 그는 참여정부 들어 대검 중수부장이 됐으며 당시 한나라당의 ‘차떼기’ 수사 등 여야 대선자금 전반의 수사를 진두지휘해 ‘국민 검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박 후보가 안 위원장을 영입하기위해 삼고초려했다는 후문이다.
2012년 철수와 영희는 다정할까
박 후보의 ‘산토끼’를 잡기위한 노력은 결국 ‘출마 선언’을 한 민주당 후보보다는 안철수 원장을 겨냥한 행보로 볼 수 있다. 집토끼만으로도 민주당 어느 후보와 일대일 가상대결에서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진보표에다 보수표까지 확장성에 있어 안 원장 역시 박 후보 못지 않은 게 정치 현실이다. 2012년 대선까지 120일. 교과서에 나온 ‘철수와 영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철수’와 ‘영희’는 서로 웃으며 칼을 갈고 대회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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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