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다 대선전에 민주당이 망하겠다”
민주당 한 고위 인사의 신음섞인 한탄이다. 그 배경은 정치권의 ‘태풍의 눈’으로 자리잡은 안철수 원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때 민주당 고위 당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안철수 영입론’에 공을 들였다. 차기 대권에서 ‘상수’인 안 원장을 껴안아야 민주당도 살고 정권 교체도 이뤄낼 수 있다는 당위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안 원장을 비롯해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의 ‘입당 불가론’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영입론’은 ‘공허한 메아리’로 전락한 상황이다.
이 인사는 “민주당이 안(철수)바라기 하는 게 처량하고 애처롭다”며 “당원들이 꼬박꼬박 당비를 낼 이유가 없어졌다”고 자조섞인 말을 뱉어냈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시작으로 제1 야당이 대선에서 후보자를 내지 못한다면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게 민주당에 그나마 애정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터져나오는 불만이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독자 출마를 하건 신당을 만들건 종국에는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해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며 “단일화 논의 전 반드시 민주당 입당을 전제로 치러야 한다”고 격앙된 반응마저 보이고 있다. 여차하면 민주당 후보가 독자출마를 감행할 수도 있다는 분풀이성 발언마저 서슴치 않고 있다.
‘옥동자’ 못낳는 ‘제1야당’ 위상 추락
그러나 이런 민주당 내부 분위기와는 달리 여의도밖 여론은 ‘박근혜 대항마는 안철수뿐이 없다’는 점에서 민주당 원망은 한풀 꺾일 수밖에 없다. 즉 ‘국민들이 안철수를 원하는 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에 뾰족한 해답이 없는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민주당 후보가 결정된다고 해도 안철수 원장의 지지율이 꿈쩍하지 않을 경우 민주당은 자중지란에 빠질 공산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2002년 대선 당시 국민 경선으로 선출된 노무현 후보 역시 장외 정몽준 후보의 등장으로 눈물을 머금고 ‘후보 단일화’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때와 다른 점은 정 후보는 ‘나홀로 신당’ 창당을 했고 당대당 통합을 전제로 후보 단일화에 참석했다. 하지만 안 원장은 아직까지 ‘신당 창당’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한 정 후보가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이벤트성’ 지지율 이었다면 안 원장은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낳은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 또한 다르다. 무엇보다 정 후보가 기업인 출신이지만 정치권에 꽤 오랜 세월을 몸 담고 있었던 것에 비해 안 원장은 여의도에 얼씬거리지도 않았다는 점 역시 2002년 대선과 차별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안 원장의 부상이 곧 민주당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내 고민이 깊다. 본격적인 위기는 안 원장이 ‘간보기 정치’를 끝내고 대선 출마 선언을 결심해 정치세력화를 꾀할 경우다. 당장 본지 보도처럼(본보 954호 안철수 여의도사단 명단공개, ‘신당창당 가능하다’) 민주당내부뿐만 아니라 여권 인사들까지 안 원장이 출마를 결심을 할 경우 최대 움직일 수 있는 정치권 인사들이 70여 명이 웃돌고 있는 게 현실이다.
명단이 공개된 이후에도 해당 인사들중 [일요서울]에 ‘항의성 전화’나 ‘정정보도’를 요청한 정치권 인사가 단 한명도 없다는 점은 이를 잘 반증하고 있다. 무엇보다 민주당이 문제다. 민주당 129명 현역 의원중 안철수 잠재적 지지자로 58명의 명단을 내보냈다.
‘철수 지지자’ 명단 공개…항의 없어
이중 최소 3분1만 탈당해 안철수 지지를 선언할 경우 민주당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또한 안 원장으로 간 정치세력이 ‘새로운 정치 변화’의 주역이 되는 반면 민주당에 잔류한 정치 세력은 구태의연한 인사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이로 인해 탈당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으로 쪼개지면서 겪은 운명과 유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안 원장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거나 불출마 선언’을 해도 민주당으로선 안심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오히려 더 혹독할 수 있다. 안 원장이 직접 나서는 것과 민주당 후보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안 후보가 불출마할 경우 ‘표의 확장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민주당 후보로선 대선 승리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대선 패배=민주당 해체’는 불보듯 훤한 상황이고 재도약의 발판마저 없게 된다. 동시에 정치권에선 안철수발 ‘제3 정치세력’이 태동할 공산이 높다. 대선전이냐 후이냐 시간상의 문제로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서로 뿔뿔히 흩어지는 것은 매한가지다.
이렇듯 ‘안철수발’ 민주당 위기론은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민주당내에선 ‘안철수 등장의 책임은 민주당이 가장 크고 피해 역시 민주당이 가장 크다’는데 토를 달지 않고 있다. 당의 존폐가 걸려 있다는 점에서 이를 사전에 막기위해 민주당내에선 다양한 해법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첫 번째가 ‘안철수 입당 후 경선 참여’ 방식이었다. 이후 한 발 물러선 제안이 경선과 무관하게 ‘민주당 영입론’이었다. 이미 두 가지 안은 흘러간 물이 됐다. 민주당이 3안으로 기대하는 것이 ‘철수 신당 창당->단일화 경선->당대당 통합’ 방식이다. 과거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방식이다. 문제는 이 또한 안 원장 측근들은 부정적이라는 데 있다. 신당 창당 자체가 기존의 정치 행태를 답습하는 데다 기존 정치인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국민들에게 식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 입장에선 최대치의 양보안이다. 이 안마저 안 원장이 수용을 안할 경우 민주당은 후보를 선출하고도 대선을 포기해야 하는 굴욕적인 정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3자 구도로 밀고갈 수도 있지만 이는 곧 ‘박근혜 필승론’으로 ‘87년 YS-DJ 단일화 무산’처럼 진보 진영내에서 역사의 죄인으로 두고두고 비판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안 원장측이 바라는 대권 행보는 무엇일까. 안 원장은 ‘나도 모르겠다’는 입장이지만 측근들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지고 있는 모습이다. 8월 22일 MBC 라디오 방송 ‘손석희 시선집중’에 출연한 박원순 서울 시장은 “안 원장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 모르겠다”고 전제하면서 “안 원장이 민주당으로 들어가서 단일화 경선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처음으로 단일화 관련 입을 열었다.
이어 박 시장은 “안 원장이 출마 생각이 있다면 결국 민주당에 입당해 경선을 하거나 무소속으로 민주당 후보들과 경선을 하는 방법이 있다”며 “이는 유권자의 인식과 관계가 있다”고 전제했다.
민주당 운명 쥔 안철수…선택은
같은 날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법륜 스님 역시 “민주당 뿐만 아니라 어느 당도 마찬가지”라며 선을 그었지만 “49대 51로 겨우 이겨 정권 잡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40대 60으로 이겨서 정부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원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두 인사가 같은 날 언급한 내용의 핵심은 ‘혼자는 안되고 협력해 한다’는 점을 직접 혹은 우회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안 원장측의 경우 창당 보다는 시민사회 제세력을 묶어 제3지대에서 정치 세력화 혹은 원탁회의 기구 구성을 통한 협의체에 무게를 싣고 있다. 또한 무소속 후보로 활동을 하고 이후 야권 후보와 단일화를 통해 공동 정부내지 시민연합정부를 구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야권 후보와 단일화 부분은 여론조사 추이가 변수다. 지금처럼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안 원장과 커다란 격차를 유지할 경우 단일화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점에서 경선보다는 ‘통큰 정치적 합의’가 이뤄질 공산이 높다.
이 경우에도 민주당이 자당의 후보가 안될 경우 단일 후보와 관계설정 부분이 고민이다. 안 원장이 민주당 입당을 하지 않으면 민주당은 152억 원이라는 선거비용을 받을 수 없고 직접적으로 선거 지원을 할 수 없다. 이 점에서 민주당 ‘입당’을 전제로 단일화에 임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질 않고 있는 배경이다. 이래저래 민주당 운명의 칼자루는 안 원장이 쥐고 있는 셈이다.
mariocap@ilyoseoul.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