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이들 테이프가 일부라도 공개될 경우 사회 전체에 미칠 충격파는 엄청날 것이라고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이런 가운데 전직 정보기관 출신 고위인사인 A씨는 “사라진 도청테이프의 상당수가 오정소 전 안기부 대공정책실장을 통해 김현철(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씨와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보고되었기 때문에 실종된 테이프의 행방에 대해 이들은 알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또 이 인사는 “이들 도청테이프는 YS정권이 끝난 뒤 DJ를 압박하기 위한 히든카드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밝혔다.현재 미림팀 불법 도청테이프와 관련해 최대 관심은 ‘과연 사라진 도청테이프들은 어디로 갔을까’하는 부분과 ‘테이프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 있고, 이들 테이프는 어떻게 활용되었을까’라는 점이다.
먼저 사라진 테이프의 행방
안기부 출신 인사들과 검찰 관계자들의 추정을 종합해보면 미림팀이 출범한 지난 92년 이후(약 1년 동안 활동을 중단했다가 지난 94년 다시 부활됐다) 정·재·언론·법조계 지도층을 상대로 불법 도청한 내용을 담아둔 테이프의 수는 대략 200여개라는 것. 이들 중 상당수는 DJ정권들어 천용택 전 안기부장 등 안기부에 의해 수거됐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테이프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현재 검찰과 정치권은 사라진 테이프는 YS의 차남 현철씨가 개입돼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현철씨측은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적어도 현철씨와 측근들은 테이프의 소재지를 알고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는 여러 가지 정황에서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미림팀 부활 및 활동을 지시했던 인사는 오정소 전 안기부 대공정책실장과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었고, 이를 사실상 주도했던 배후인물이 YS의 차남 김현철씨였던 것으로 알려진 부분이 그 것.
현철씨 미림팀 배후 지목
오정소 전 실장과 이원종 전 수석은 경복고-고려대 출신으로, 현철씨와도 동문이다. 미림팀 재건과 광범위한 활동(불법도청)을 지시했던 배후 인물로 현철씨가 지목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림팀’의 존재를 폭로한 김기삼(전 안기부 직원)씨도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미림팀)보고 라인은 오정소 실장을 거쳐 정형근 기획판단국장과 황창평 차장으로 연결되었던 것으로 안다. 경미한 내용은 오 실장이 직접 파쇄기에 넣어 파기했지만 중요 내용은 이원종(정무수석)-김현철 라인으로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이같은 주장은 X파일 핵심 당사자인 공운영 전 미림팀장이 자술서에서 “YS 당선과 함께 활동이 중단됐던 미림팀이 94년도에 재구성됐다”고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김씨와 공씨, 전직 안기부 직원들의 주장을 종합해 볼 때 현철씨가 미림팀 재건 및 활동에 깊숙히 개입돼 있었고, 불법 도청자료 보고체계의 최정점에 있었을 것이란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이와 관련 김씨는 “당시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이 전격 경질된 배경에는 박 실장이 지인에게 현철씨 전횡을 얘기했던 것을 미림팀이 도청해 이 사실을 현철씨에게 보고한 것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불법도청을 감행한 안기부, 이를 지휘한 권력실세 김현철, 이를 방조한 김영삼으로 구성된 ‘빅브라더 트라이앵글’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며 현철씨와 YS를 겨냥했다.
DJ와 그 측근들 주 타깃
그러면 테이프에는 무슨 내용이 담겼으며, 어떤 목적으로 주로 활용됐을까. 미림팀의 불법도청 활동은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림팀장이었던 공씨는 “도청 대상은 대통령을 제외한 최상층부”라고 시인했다. 이러한 정황에 비춰볼 때 당시 미림팀은 정·관계를 비롯한 재계 언론계 등 각계 각층의 주요 핵심인사에 대한 불법도청을 자행했던 것으로 추론된다. 특히 현철씨가 배후세력이었고 YS가 묵인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미림팀의 활동은 YS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DJ와 그 측근들에게 집중됐을 것으로 보인다. 92년 대선 때 비록 YS가 DJ를 누르고 권좌에 먼저 올랐지만 DJ는 여전히 야권내 대권 1순위 자리를 확고히 구축하고 있었다. 차기 대선(97년)에서 DJ가 당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두 사람의 오랜 정치적 악연과 권력의 속성을 고려할 때 YS가 DJ의 청와대 입성 행보를 순순히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감이 실렸다.미림팀이 DJ와 그 측근들 행보를 감시하며 불법도청 주 타깃으로 삼았을 것으로 추론되는 정황들이다. 실제로 공씨는 98년 퇴직 당시 가지고 나온 200여개의 도청테이프 반환과 관련해 당시 천용택 국정원장과 은밀한 협상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DJ정부 핵심 실세로 통했던 박지원 전 비서실장도 불법도청 테이프 존재 여부를 인지했을 것이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국정원이 불법도청 테이프를 전량 폐기한 것도 DJ나 국민의 정부에 불리한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정을 낳는 부분이다.
음모론 등 또다른 의혹 증폭
X파일 조작 의혹도 DJ와 YS의 정치공작 플랜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먼저 정권을 잡은 YS가 정적인 DJ의 발목을 잡기 위해 전방위적인 불법도청을 시도했고, YS에 이어 권좌에 오른 DJ가 인계받은 도청 자료를 역으로 자신과 정권에 유리하게 조작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실제로 이러한 가능성은 이번 X파일 공개및 그 내용을 둘러싼 논란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한나라당은 X파일 원본에는 삼성의 기아차 인수과정에 DJ가 개입한 것으로 돼 있으나 공개된 내용에는 이회창 총재의 발언으로 둔갑돼 있다며 특검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관련, 이정현 부대변인은 지난달 27일 “X파일은 특정 정당을 표적으로 삼아 공개했고 다른 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라며 “이는 정치적 공작이라는데 많은 당직자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고 발끈했다. 일부 언론들도 녹취록 요약본의 이야기 전개상 삼성의 기아차 인수지원 발언을 한 당사자가 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가 아닌 DJ였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DJ의 재벌 관련 언급이 녹취록 요약본에 누락됐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안기부 X파일 중 DJ에게 불리한 대목이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누락됐을 가능성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는 것. 여기에 요약본에는 삼성이 이회창 후보 측에 전달했거나 전달하려 한 돈의 액수는 언급돼 있지만 DJ에게 전달됐을 것으로 보이는 돈의 액수는 전혀 알 수 없도록 돼 있고,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검찰 간부 3명이 실존 인물이 아닌 것으로 검찰 내에서 밝혀지면서 특정인을 보호하기 위해 가상의 인물까지 내세운 것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처럼 X파일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증폭되고 있지만 그 실체적 진실은 여전히 안개속에 묻혀 있다. 다만 YS정권이 미림팀을 비밀리에 운영한 것이 사실로 드러난 만큼 YS와 현철씨, 그리고 당시 핵심 관계자들은 X파일 후폭풍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여러 정황에 비춰볼 때 DJ와 그 핵심 측근들도 녹취록 조작설 등 음모론 논란 중심에 서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이와 관련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이번 X파일 파문 이면에는 DJ와 YS의 오랜 정치적 악연과 맞물린 정치공작이 자리잡고 있다”며 “DJ의 퇴진으로 ‘3김정치’는 실질적으로 청산됐지만 아류정치와 부산물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홍성철 anderi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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