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10년, 그리고 일주일
누군가에게 ‘현재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열에 아홉은 ‘프로야구’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윤치영, 이원용, 허성, 이석찬을 아는가?’라고 재차 묻는다면 열에 열 명은 누구냐고 반문하지 않을까?
이는 1923년 ‘대한야구협회’의 전신인 ‘조선야구협회’를 발기시킨, 당시 조선 운동계 중진의 이름들이다.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 격투기 역사 속에는 존재하지만 대중들의 기억 속에는 자리 잡지 못한 사내가 있었다. 바로 국내 격투계의 명문 일산 팀맥스의 수장이자 CMA 루츠 -93kg급 챔피언 육진수 감독(34, 일산 팀맥스)이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무렵 국내에서 종합격투기가 시작 될 당시부터 약 10년여의 시간동안 격투기 팀 ‘팀맥스’를 창단하는 동시에 국내 최초 프로격투기대회 ‘스피릿MC’와 격투기 레스토랑 ‘김미 파이브’를 등에서 많은 선수들에게 무대를 제공해왔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10월엔 일본 중소 격투 무대인 CMA에서 무제한급 챔피언에 오를 만큼 선수로서의 커리어도 단단히 쌓은 인물이다.
그러나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단 일주일 전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대단한 육진수를 갑작스럽게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킨 것이 다름 아닌 케이블 채널 M.net 에서 방송중인 ‘대국민 오디션 슈퍼스타 K4’라는 점이다.
격투기 선수라는 직업과 가수를 뽑는 오디션의 상관관계는 전혀 없어 보일 테지만, 육진수는 지난 17일, 슈퍼스타K 오디션에 참가해 ‘둘째 아이가 선천성 기도협착증을 앓고 있다’는 사연과 함께 박상민의 노래 해바라기를 불러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켰다. 특히 심사위원이었던 가수 이승철은 “음치한테 감동받긴 처음”이라며 “지우의 쾌유를 바란다”고 위로를 건네다 끝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비단 그의 열창에 눈물을 흘린 사람은 심사위원 이승철 뿐만이 아니었다. 방송과 영상을 접한 모든 이들이 마음 아파하며 그의 아들 지우의 쾌유를 바랐다.
이로써 격투기 선수 육진수의 인생은 뜻하지 않게 역사 속에서 역사의 표면으로 새어 나오게 된 것이다.
육진수의 10년, 불모지 격투가로서의 삶
앞서 말했듯 육진수는 약 10년 전 종합격투기가 국내에 소개될 때부터 활동해온 국내 격투계의 선구자다.
2주일 만에 망해버린 국내 최초의 ‘케이지 대회’ 개최와 동네 나이트클럽에서 세계적인 격투선수 반더레이 실바에게 사인회를 열어준 ‘2004년 반더레이 실바 나이트 굴욕 사건’은 격투기 팬들에게 이미 유명한 일화다. 이후엔 실바의 소속팀이었던 세계적인 격투단체 슈트복스 아카데미 한국지부장을 맡기도 했었다.
이밖에도 인천을 연고로 둔 팀맥스의 창단, 국내 최초 프로격투기대회 스피릿MC, 국내최초 그래플링 대회, 격투기 레스토랑 김미파이브 등은 그가 걸어온 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들이다.
그중 격투기 무대의 형태가 ‘링’ 밖에 없었던 국내에 가장 처음 케이지를 도입해 ‘X트리플’이라는 이름의 클럽파이트 대회를 운영했을 당시를 그는 이렇게 기억한다.
“당시에는 데니스 강조차 ‘한국에 케이지 게임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하면서 놀라더라고요. 아무튼 그때는 그래플링 대회도 최초로 개최하고, X-3를 열고. 보름도 안돼서 사장 도망가고, 잡으러 다니고 반더레이 실바도 불러오고, 별별 일을 다 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국내 MMA에서 큰돈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어영부영 7년을 보내고 나니까 본질을 찾게 됐어요. 그동안 여러 가지 상업적인 부분도 꿈꿔봤고, 좌충우돌 한국 역사랑 같이 가다보니까 본질로 가더라고요. 돈이라는 것, 상업적인 부분을 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본질을 찾아 나선 육진수는 ‘팀맥스를 국내 톱3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포부로 팀맥스를 경기도 일산으로 옮긴 후, 실제로 팀을 국내 상위에 올려놓았다. 현재 로드FC에서 활동하는 손혜석, 송민종 등이 모두 그의 손에서 태어난 선수들이다.
하지만 상업적인 부분을 버렸다는 그에게는 아직도 독특한 철학이 남아 있다.
“전 일단 ‘내가 잘 살고 나야 남에게 기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잘 살아야 내 새끼들도 나를 잘 따라온다는 겁니다. 저는 팀원들 벤에다가 태워서 경기 내보내고 싶어요. 아이돌 가수들도 그런 거 타고 다니는데 격투가들은 봉고차나 타고 다니고. 격투가라는 것은 너무나 고귀한 직업이잖아요?”
“결론인즉슨 내가 잘 살 거예요. 그리고 후배들한테 보여주고 싶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관장이 항상 배고프고, 구석에서 라면이나 쪽쪽 빨고 있고 선수들한테 연연하면 따라오지를 않아요. 떠나는 게 태반이죠. 종합격투기 얼마나 멋있어요? 추성훈은 이미 연예인 대접받고 있잖아요. 없어 보이는 격투기 이런 건 싫어요.”
그리고 그에게는 자신이 키워낸 선수들에 대한 꿈이 남아있었다.
“문제는 국내에 선수들의 실력을, 길고 짧은 것을 재지 못하고 있는 데 있어요. 국내 마니아들에게는 스피릿MC 데이터가 전부에요. 그러니까 아직도 예전 스피릿 강자들 얘기만 오가는 거예요. 만약에 국내 대회가 활발히 열리고 있었다면 저희 팀은 신흥 명문 됐을 거예요.”
“그래서 전 격투기 대회를 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준비하고 있는 일도 있고요. 나중에는 누구한테 손 벌리지 않고 대회 열어보고 싶어요. 선수들을 위한 대회. 크진 않아도 사나이들의 혼이 담긴 대회요.”
“참고로 전 링이 좋아요. 솔직히 지금은 프라이드 때의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느낌이 없어요. 지금은 다들 너무 완벽하잖아요. 프라이드 당시 노게이라, 콜먼, 커, 사쿠라바 이런 선수들보면 다들 특색이 있었잖아요. 점수 매기기 싸움이 아닌 뜨거운 대결을 펼쳐서 대중들을 휘어잡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가 가진 신념과 꿈은 앞으로 격투기 무대에서 육진수가 보낼 시간을 가늠케 했다. 아마도 그가 걸어온 10년은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었던 듯하다.
육진수는 또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현역 선수생활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사실 주변에서 만류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나이도 들어가고 감독도 하고 있는데 얻을 수 있는 게 뭐냐 있냐고”
"하지만 저는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운동에 임합니다. 개인의 가치관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지는 것도 의식하지 않아요"
"그리고 전 언제나 선수들과 함께 운동하는 하는 감독이에요"
지난해 10월 일본 CMA에서 무제한급 챔피언에 오른 육진수는 오는 9월 15일 원주에서 열리는 '로드FC 9'에도 출전이 예정돼있다. 프라이드와 드림에서 활동해 국내에서도 유명한 미노와 이쿠히사(일본)와 경기를 펼치는 그는 팬들에게 각오를 남겼다.
“솔직히 미노와는 제가 좋아하는 선수에요. 다들 아시다시피 판크라스, 프라이드, 히어로즈 등에서 수없이 싸워온 백전노장 베테랑의 강자죠. 함께 훈련도 했던 경험도 있고요”
"미노와 선수는 제가 원하는 색깔의 선수입니다. 좋아하는 선수와 승부에 집착하지 않고, 원없이 싸우겠습니다."
그리고 대중 역시 그가 보낸 10년의 세월을 보상해 주듯 이번 대결에 가장 많은 응원과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육진수의 일주일, 아픈 아들의 아버지로서의 삶
“저는 이 외모가 정말 좋거든요! 근데 자꾸 악성 댓글이 달려요. 방송에서도 저 자주 찾잖아요? 근데 그거 다 웃긴 캐릭터로 설정 잡고 찾은 거예요. 다른 팀 관장님들이 그래요. ‘대회장에 가면 육감독만 보인다’고. 그래도 전 이게 좋아요.”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스킨헤드에 커다란 근육, 진한 수염.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이런 모습들이 지난 일주일동안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던 육진수다.
사실 육진수는 ‘KBS '인간극장’, 채널A의 ‘불멸의 국가대표’ 등 여러 방송에서 소개됐다. 영화 ‘챔피언 마빡’ 와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서 울보 파이터로 출연했던 이력은 육진수 방송이력의 화룡정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활동하던 스피릿MC가 붕괴되고 국내 격투기 시장이 침체되면서 그와 일산 팀맥스가 표면에 설 기회가 없어졌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비주류로 빠졌다.
“그때는 정말 살아남은 사람만 근근히 시합을 이어 나갔어요. 일본 중소단체는 항상 살아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것도 진짜 가뭄에 콩 나는 듯 했어요”
"그래도 저는 종합격투기만 보고 살아왔기 때문에 아무것도 개의치 않았어요. 전 프로로 살고 싶은 사람이죠. 격투기의 정통성과 본질을 지키며 끝까지 격투기에 올인하자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런 그가 ‘슈퍼스타K’ 를 통해 아픈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의 인생을 말했다.
“둘째 아들이 기도협착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어 목소리를 낼 수 없어요. 수많은 수술 속에 발버둥 치며 힘들어 하면서도 아무 말 못하는 아들을 보면, 말하는 아이만 봐도 부러워져요.”
“그래도 눈빛으로 통한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아들 대신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참가하게 됐어요.”
“아들아, 네가 처음 아팠을 때 도망가고 싶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너로 인해 아빠가 더욱 강해져 있었어. 너무 고맙고 기특한 내 아들 사랑한다.”
아들에게 모든 것을 사주고 싶다는 육진수는 스스로를 어떤 아버지라고 생각할까?
“부족한 아빠죠. 그래도 세상 모든 아버지들이 그렇듯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전부다 해주려고 노력해요. 직업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게 아버지들의 마음이니까.”
“한마디로 항상 노력하는 아빠죠.”
육진수는 격투가로서도, 아버지로서도 착실하게 꿈을 꾸고 있었다.
“전 '남자의 자격'이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 말이 멋있어요.”
"항상 '남자의 자격'을 생각해요. 아빠도 남자의 자격 중에 하나고, 운동선수도 남자의 자격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방송에서도 몇 번 말했지만, 전 해보고 싶은 건 다하면서 살고 싶어요."
"제 인생의 포부는 '남자'라는 단어의 로망 같은 거예요. 남자로서 멋지게 사는 것. 그리고 생을 마감하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응원해준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방송을 보면서 한번 울고 여러분의 따뜻한 격려 덕분에 또 한 번 울었습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저희 가족에게 정말 큰 힘이 됐어요. 여러분들의 응원을 가슴 깊이 새겨 아들 지우가 항상 꿈을 꾸며 커 갈 수 있도록 예쁘게 키우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덕분에 힘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잊지 않고 진짜 강한 파이터, 더 따뜻한 아빠가 되겠습니다.”
아픈 아들의 아버지로서, 국내 격투기의 선구자로서 그의 과거와 현재는 함께 살고 있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