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풀이식 흉기 난동 속출… 제 2의 대구지하철사건 ‘공포’
분풀이식 흉기 난동 속출… 제 2의 대구지하철사건 ‘공포’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2-08-28 10:18
  • 승인 2012.08.28 10:18
  • 호수 956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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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차별의 부메랑 ‘묻지마 범죄’

▲ 사진 = YTN 화면 캡쳐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때와 장소를 안 가리는 ‘묻지마 범죄’ 때문에 사회 전체가 불안에 떨고 있다. 2003년 192명이 숨진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묻지마 범죄’ 불안감이 또다시 엄습했다. 의정부역 무차별 칼부림 사건 이후 여의도 묻지마 칼부림까지 묻지마 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 것이 계기가 됐다. 연일 터지는 묻지마 범죄로 곳곳에서는 트라우마까지 감지되고 있다. 일상 공간이 끔직한 범죄 현장으로 뒤바뀌면서 시민들은 ‘언제 어디서든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 대중교통 등을 기피하는 등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이다. 대상도 없고 이유도 없는 묻지마 범죄는 한마디로 당하는 사람으로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셈이다. 전문가들도 ‘제 2의 대구지하철 참사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다’고 경고하며 국가차원에서의 예방시스템 구축 등을 강력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묻지마 범죄에 속수무책이라는 점에서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분노나 화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 늘면서 사회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최근 들어 자포자기형 분노 범죄 ‘묻지마 범죄’가 과거보다 흉포화, 잔인화로 치닫고 있다. 이유 없이 길을 가다 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칼부림을 당하는 일들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때와 장소,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작위로 흉기를 휘두르는 것이다. 과거 묻지마 범죄가 단순 폭행이었던 것에 비해 이제는 한 대 치고 말 일에도 흉기를 휘둘러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흉폭해졌다.

무차별 흉기난동 ‘마른하늘에 날벼락’

지난 18일 오후 6시 35분께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은 아수라장이 됐다. 비명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공포에 질린 수십 명의 사람들이 3층 게이트로 빠져나왔다. 유모(39)씨가 의정부역에서 전동차 안과 승강장을 오가며 승객들에게 닥치는 대로 공업용 커터칼을 휘두른 것. 8명이 피해를 입은 건 순식간이었다. 승강장과 전동차 안에는 시민들의 핏자국으로 얼룩졌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시민들은 ‘한마디로 피바다’라며 공포를 호소했다.

의정부역을 순식간에 공포에 빠트린 ‘무차별 흉기 난동’은 어처구니없게도 지하철 내에서 침을 뱉다 시비가 붙어서 발생했다. 일정한 직업 없이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노동일을 하던 유씨는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신설동행 지하철 전동차에 올라탔다. 유씨가 전동차 바닥에 침을 뱉다가 바로 옆에 있던 박모(18)군의 손 등에 침이 튀었다. 유씨가 별다른 사과를 하지 않자 박군이 유씨를 따라가 항의했다. 유씨는 지하철에서 내렸지만 박군이 계속 따라오며 사과를 요구하자 몸에 지니고 있던 공업용 커터칼을 갑자기 꺼내들었다. 유씨는 공업용 커터칼로 왼쪽 어깨를 찌르고 박군의 일행이었던 박모양의 어깨와 손목을 찌르고 달아났다.

이는 유씨의 칼부림의 서막에 불과했다. 공업용 커터칼을 손에 쥔 유씨는 승강장으로 돌아와 뛰어다니며 시민 6명에게 무차별적으로 커터칼을 휘둘렀다. 시민 6명은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화를 당한 것. 유씨의 칼부림 난동에 승강장과 전동차에 있던 수십 명이 역사 밖으로 대피했고 부상자 8명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유씨는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뒤 혼란을 틈타 유유히 의정부역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결국 공익요원과 몇몇 시민들로 인해 도주로가 차단, 대치 끝에 경찰에 검거됐다. 당시 의정부역 안에는 철도경찰도 있었지만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해 사건 발생 10여분 동안 현장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씨는 “박군이 사과를 요구하자 화가 나 순간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승객들이 나를 막으려는 것 같아 이성을 잃고 칼을 휘둘렀다”고 진술했다.

지난 20일 방학을 마치고 개학한 부산의 인근의 한 초등학교 인근 주택가에서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평소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40대 여성이 길 가던 초등학생 2명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둔기를 휘둘러 학생들과 부모들이 큰 불안감에 휩싸였다. 최모(46·여)씨는 부산 강서구 명지동 한 편의점 인근 노상에서 양모(10)군과 이모(12)양에게 미리 준비한 30㎝ 길이의 공구로 머리를 가격했다. 폭행을 당한 이양 등은 혼비백산해 달아났고 최씨는 초등학교와 불과 500m도 떨어지지 않은 인근 공터에서 붙잡혔다. 수개월동안 빈집을 전전하며 노숙생활을 해온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요즘 되는 일도 없고 울분이 치솟아 순간적으로 아이들을 둔기로 내리쳤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3일 울산에서도 묻지마 칼부림이 벌어졌다. 검은색 후드 점퍼를 입은 20대 남성이 슈퍼마켓으로 들어서더니 느닷없이 앉아있던 가게 여주인의 배를 흉기로 찌른 것. 경찰 조사 결과 은둔형 외톨이었던 이모(27)씨는 사회에 대한 울분과 불안을 홀로 곱씹어 왔다. 중졸 학력인 이씨는 3년 전부터 직업 없이 혼자 방에 틀어박혀 지내왔다. 수년간 쌓아 온 사회 불만은 결국 아무런 잘못 없는 단골 슈퍼마켓 여주인 김모(53)씨에게 폭발하고 만 것. 이씨는 경찰에서 “발길이 닿는 대로 간 곳이 슈퍼였다. 내가 다른 사람을 찌르면 그 사람도 나를 찔러 죽이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에서는 술을 마신 강모(39)씨가 한 유흥주점에 들어가 여주인을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길거리로 나와 흉기를 휘둘러 행인 1명이 숨지고 4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묻지마 범죄는 계속 이어졌다. 지난 19일 새벽에는 인천 부평시장 인근을 걷던 여성 3명이 신원을 알 수 없는 괴한 2명에게 수십 차례 발길질과 주먹세례를 당했다. 10분 넘게 계속된 폭행에 피해 여성 중 1명은 코뼈가 부러지고 앞니가 빠져 이식수술까지 받았다. 김모(24)씨 등 2명이 부평시장 인근 골목에서 길을 걸어가던 중 윤모(23·여)씨 등이 어깨를 부딪쳤다는 이유로 불러 세운 뒤 얼굴에 침을 뱉고 무차별 폭행한 것. 김씨는 범행 하루 전 날 실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 여성들은 마침 지나가던 경찰 순찰차를 세우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곧 다른 순찰차가 도착할 것”이라고 현장을 떠나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여의도 한복판에서도 칼부림 사건이 벌어졌다. 22일 오후 7시 16분께 영등포구 여의도동 남중빌딩 1층 파리크라상 앞에 김모(30)씨가 과도를 손에 쥔 채 나타났다. 전 직장 앞에 서 있던 김씨는 김모(32)씨와 조모(31·여)씨를 기다려 과도로 온 몸을 거침없이 찔렀다. 김씨는 조씨의 얼굴과 목, 왼쪽 가슴, 왼팔 등 네 군데를 찌르고 김씨에게도 과도를 휘둘렀다. 범행현장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캠프가 있는 대하빌딩에서 50m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피해자가 피를 쏟으며 쓰러진 도로 위에는 선명하게 핏자국이 남았다.
당시 저녁식사를 하러 나온 수많은 직장인이 이 장면을 목격했고 거리는 혼돈 그 자체였다. 김씨는 범행을 저지르고 나서도 분이 안 풀린듯 칼을 계속 휘두르면서 욕설을 퍼부었고 자신과 눈이 마주친 안모(30·여)씨와 김모(31)씨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김씨의 등을 찌르고 안씨의 팔을 두 차례 찌른 것. 경찰이 출동하자 김씨는 과도를 자신의 목에 들이대며 자해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혼자 죽으려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전 직장에서 이용만 당하고 피해 입은 것에 대한 보복을 꼭 하고 싶었다”며 “퇴직 후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했고 3000만 원 가량의 빚으로 힘들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전 직장에서 실적이 미달되자 동료들이 자신의 험담·비방을 하는 등 자신을 왕따시켜 퇴사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퇴직 후 집에서만 지내던 김씨가 자살을 결심하고 복수심에 여의도 한복판에서 칼부림을 벌인 것이다.

잠재적 시한폭탄 ‘사회적 외톨이’

최근 잇달아 일어나는 묻지마 범죄에서 보듯 ‘언젠가 터뜨리겠다’는 식의 잠재적 시한폭탄 분노를 키우고 살아가는 사회적 외톨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묻지마 범죄의 범인들이 실직자이거나 일용직 노동자들로 사회 양극화와 경쟁, 불황, 실직 등 소외로 인한 불만이 묻지마 범죄를 낳고 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우발적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80%가 마이너리티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스트레스로 인한 ‘우발적 살인’ 혐의자는 2000년 306명에서 2005년 319명, 2010년 465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우발적 방화’도 2000년 347명, 2005년 427명, 2010년 583명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특히 폭행·상해·살인·방화 등 표출적 범죄가 발생하는 동기는 ‘우발적 동기’와 ‘현실 불만’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점점 흉포화돼가고 있는 묻지마 범죄를 예방할 특단의 대책이 시급한 가운데 이런 범죄를 줄이기 위해 사회 낙오자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가족 해체 현상이 가속화 되면서 나홀로 사는 은든형 외톨이가 급증하고 경제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점이 묻지마 사건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소외된 계층의 불만이 최근 경기 침체와 맞물려 돌발적인 형태로 터져 나오고 있다는 것.

이윤호 동국대학교 범죄심리학 교수는 “앞으로도 이런 범죄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을 느낄 때 이를 행동으로 표출시킬 수 있는 이벤트나 계기, 사건이 발생하면 범죄행위로 이어지게 된다”며 “무시, 시비 등 작은 계기들이 겹치게 되면 소위 방아쇠 효과로 사회적 불만과 원한 등이 묻지마 범죄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경제상황이 어려워질수록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가 더욱 벌어지게 돼 소외 계층이 더 크게 좌절하고 불만감이 증폭될 수 없다”며 “소위 인생 밑바닥에 있었을 때 무시당하는 사건 하나가 발생하게 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계속되는 묻지마 범죄에 대해 ‘감정조절장애’로 인한 범죄라는 분석도 나온다. 감정조절장애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순간적인 충동과 함께 고조된 긴장감이 극단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허찬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감정조절장애는 성장 과정에서 방임, 학대 등으로 분노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경우 발생하게 된다”며 “분노를 건강하게 해소하지 못하고 축적시켜 상대방의 작은 자극에도 지나치게 화를 내는 등 공격성을 노출한다. 이런 것들이 극대화 된 것이 묻지마 범죄다”라고 말했다. 허 전문의는 “이대로 방치하면 제 2의 대구지하철 참사가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며 잠재성을 경고한 뒤 “사회병리학적 현상으로 보고 가정에서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종합적 대책을 반드시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외톨이·낙오자를 위한 사회 안정망을 강화하는데 돈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이 교수는 “어떤 사람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범죄를 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묻지마 범죄는 형사정책적으로는 예방이 불가능하다”며 “묻지마 범죄가 소외계층과 많이 관련돼 있는 만큼 사회 연결고리를 마련해주는 등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허 전문의는 “가정과 학교, 사회가 한 개인이 분노를 올바른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감을 줄일 수 있도록 선진국 수준으로 복지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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