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봉 1억 넘는 ‘신의 직장’에서 일어난 ‘끝없는 탐욕’
- 거래소, 공공기관 해제의 꿈은 저 멀리에?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일명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한국거래소(이사장 김봉수)가 기업 공시정보 사전유출 사태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해당 직원은 사상 초유의 비리를 저지른 후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종적을 감췄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제는 이러한 비리가 개인이 저지른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조직적으로 반복해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현황을 짚어봤다.

지난 18일 거래소의 한 직원이 종적을 감춘 지 3일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됐다. 숨진 코스닥시장본부의 이 모 차장은 공시될 자료를 미리 열람한 후 실제 공시 전 정보를 빼돌려 주식을 사고팔아 1억 원 가량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거래소가 기업의 공시 내용을 접수한 뒤 실제 공시가 나가기 전까지 약 10분간의 공백이 발생하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이러한 사전유출은 지난 4월부터 최근인 이달 초까지 계속된 것으로 추후 조사에서 알려졌다. 거래소는 사전유출 여부조차도 모르고 있다가 한 개인 투자자의 제보로 뒤늦게 조사에 착수했다.
거래소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제보자는 공시 전 특정 증권사 계좌를 통한 매수와 공시 후 매도가 몇 차례 반복되는 것을 발견하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 모 차장이 종적을 감추기 전까지 거래소는 용의자조차 추려내지 못한 상태였다.
거래소, 시장 질서 교란해…자격 논란 이어져
용의자는 숨진 채 발견됐지만 수사는 종결되지 못했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피고발인이 사망하면 보통 수사를 종결하지만, 이번의 경우 개인만의 문제인지 거래소나 증권사까지 수사할 사안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거래소는 2010년에도 일부 직원들이 차명계좌를 통해 주식을 불법으로 매입한 것이 드러나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 또한 지난해에는 전직 상장폐지실질심사위원이 상장폐지 면제를 미끼로 금품을 수수해 검찰에 기소된 바 있다.
내부감독 시스템 부재에 이어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문제도 제기됐다. 이미 거래소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주식 투자자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를 듯 드높아진 상태다. 시장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지닌 거래소가 윤리성 상실에서 비롯된 자격 논란으로 도리어 시장을 어지럽힌 셈이다.
거래소 측은 “공시정보 접근권한을 가진 인원을 축소하고 모든 공시의 85%가량을 사전검토 없이 즉각 공시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며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비난은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거세지는 형국이다.
고액연봉과 정년보장도 막을 수 없는 범죄로의 유혹
사실 거래소는 ‘신의 직장’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공공기관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거래소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1억926만 원이다. 시중은행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자랑하는 외환은행의 평균 연봉인 6400만 원의 2배에 가깝다. 연봉이 높기로 이름난 금융권에서도 최고 수준인 것이다.
거래소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 역시 지난해 기준으로 16.7년이다. 상위 100대 기업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인 11.5년에 비해 5년이나 길다. 같은 공공기관 중에서도 예탁결제원과 신용보증기금이 각각 16.5년, 주택금융공사가 15년인 것을 감안하면 최장 수준이다.
이런 연유로 거래소는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연봉도 높고 정년을 채울 수 있다”는 선망과 함께 ‘신도 다니고 싶어하는 직장’이라는 별명을 지녔다. 하지만 ‘신의 직장’의 직원은 1억 원이 넘는 고액연봉과 정년보장과 같은 혜택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공시정보를 사전유출해 투자자들의 공분을 샀다.
본래 민간자본인 데다가 증권거래 독립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도 비교적 제재를 받지 않았던 거래소는 2009년 정부에 의해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 이에 거래소는 공공기관에서 해제되기 위해 주기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등 끊임없이 자유를 위해 노력해 왔다.
지난 1월 기획재정부(장관 박재완)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공공기관 지정해제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공공기관 지정안을 심의·의결했을 때 거센 불만을 터뜨린 것도 거래소다. 산은ㆍ기은의 경우 정부가 보유지분을 매각하기도 전에 이들을 공공기관에서 해제한 반면 거래소는 정부가 보유한 지분이 없는데도 계속해서 공공기관으로 남아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래소는 이번 비리로 인해 당분간 공공기관 해제라는 꿈을 접어야 할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그동안 거래소는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탓에 1년에 6개월을 감사받는 데 소비한다’며 불평했지만, 이러한 감사에도 불구하고 공시정보 사전유출이라는 대사건이 터졌다”면서 “공공기관 해제를 외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선진국을 따라하는 임기응변식 대책이 아닌 제대로 된 재발방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