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선 후보가 여야 지도자급 인사들과 연쇄 접촉면을 갖는 데는 ‘국민대통합’이라는 명분이 한몫하고 있다. 남북대치 상황뿐만 아니라 지역·이념·계층 간 갈등 해소는 대선 후보군에게 최대한 풀어야 할 난제로 잡고 있다. 무엇보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이후 ‘정중동’ 행보를 보인 박 후보로선 ‘국민 대통합’을 위한 카드는 다른 잠룡들에 비해 많이 갖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개헌’에 준하는 권력 분점 준비 중?
이미 박근혜 캠프 주변에선 ‘국민대통합’을 위한 ‘87년 6·29선언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선언이 있을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마저 보이고 있다. 6·29 선언이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7년 민주항쟁 결과로 대통령 선거를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는 개헌과 민주헌법 제정 등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는 시국 수습 방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선언으로 군부정권 종식과 함께 민주화를 앞당기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될 정도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박 후보가 이처럼 6·29 선언에 버금가는 카드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 3년차인 2005년도에 제안한 ‘대연정’ 카드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지역구도 혁파를 위해 ‘여소야대 구조’의 폐해를 지적하며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선 대연정을 해야 한다고 당시 박근혜 당 대표에게 제안을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연정하자는 말은 앞으로 꺼내지도 말라”고 일축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제시한 대연정 방식으로 ‘열린우리당과 소수 야당의 전부나 일부가 참여해 정권을 구성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노 전 대통령은 ▲ 야당이 모두 손을 잡아 원내 과반수를 확보해 프랑스식 동거 정부 구성 방안 ▲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을 포함한 야당과 손잡아 대연정을 만드는 방안 등 두 가지 방식을 내놓았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을 선호했으며 권력도 대통령 권력하의 내각이 아니라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대통령이 권력을 열린우리당에 이양하고 동시에 열린우리당은 다시 이 권력을 한나라당에 이양하자는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이런 파격적인 권력 분배는 정권 중반을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박 후보로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제안이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은 그의 지지자들로부터도 ‘대연정 할려고 권력을 잡았느냐’며 강한 반발에 부딪혀야만 했다. 그러나 현재 박 후보는 후보자 입장으로 노 전 대통령과 정치적 환경이 다르고 노 전 대통령의 사상과 가치를 계승하겠다는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 대권 후보로 유력한 상황에서 ‘대연정’을 제시할 경우 정치적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영호남을 넘어 PK·TK까지 통합 방안
일단 평소 박 대표가 원칙과 소신 그리고 약속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야권 후보와 대연정’ 제안은 과거와는 달리 정치적 신뢰성이 높을 것이라는 평이다. 또한 이번 대선이 49대51싸움으로 박빙의 대결 구도속에 중도파를 끌어안을 수 있는 파격적인 카드임에는 분명하다. 설령 야권 후보가 카드를 받지 않을 경우에도 장외 안철수와 민주당 후보간 야권 분열을 꾀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시도해볼만한 카드라는 분석이다.
물론 대연정 카드를 야권 후보가 받을 경우 지지도가 높은 박 후보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야권 후보가 총리 역할을 통해 조각 권한을 갖을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사실상 ‘분권형 대통령제’(또는 이원집정부제)로 개헌에 준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아울러 ‘국민대통합’이 단순히 구호가 아닌 실천의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야권 지지층으로부터도 호감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문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경우 당이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문 후보가 부산 출신이라는 점에서 ‘영호남 화합’과 더불어 TK·PK 분열 구도마저 봉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카드로 부상하고 있다.
아울러 박 후보가 그동안 동교동계로부터 ‘영호남 역사적 화해’ 차원에서 ‘러브콜’을 받은 바 있고 DJ와 화해를 통한 관계 복원에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참배라는 파격 행보 역시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게 아니냐는 관측마저 대두되고 있다.
한편 역대 대선에선 유력한 대권 주자가 권력을 잡기 위해 군소 후보와 연대할 경우 ‘의원내각제’ 카드를 통한 개헌을 약속한 바 있다. 92년 3당 합당시절 YS가 ‘내각제 카드’를 고리로 대권을 잡을 수 있었고 97년 대선 당시에도 DJP 연대를 통해 권력을 잡은 바 있다. 하지만 YS나 DJ 모두 약속을 파기했고 그나마 DJ는 총리직을 JP에게 넘겨줬지만 조각 권한을 한정함으로써 유야무야된 바 있다.
하지만 박 후보는 평소 개헌 관련 ‘4년 중임제’를 고수해왔다는 점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로 개헌 표명은 자칫 ‘정치야합’내지 ‘국면전환용’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스럽다. 특히 ‘국민대통합’ 취지에 어긋날 수 있어 ‘개헌 카드’는 꺼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밖에 박 후보가 ‘국민대통합’ 차원에서 ‘6·29선언’에 버금가는 선언은 아닐지라도 국민대통합을 위한 대북 카드 역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남북 관계 개선 역할론 측면에서 박 전 대표는 여타 후보에 비해 유리한 입장이다. 이미 박 후보는 2002년 8월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한 시간 독대를 한 바 있고 귀국때에도 중국이 아닌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오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받은 바 있다. 박 후보는 북한이 김 위원장 아들인 김정은 체제가 들어섰지만 남북 최고 지도자들의 자식이라는 공통점은 남북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 8월 20일 새누리당 18대 대선 후보자 지명 전당대회에서도 박 캠프는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크게 걸어놓는 등 남북관계 개선의 적임자로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야권 일각에선 박 후보가 ‘국가보안법 폐지’ 등 파격적인 대북 유화책을 제시할 경우 속수무책이라는 우려감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대북카드에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검토
또한 박 후보 아킬레스건중 하나인 정수장학회 관련 ‘사회환원’ 방안 역시 은밀히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수장학회는 야권에서 박근혜 후보를 겨냥 집중 공격대상이다. 야권은 정수장학회를 ‘박정희 군사정권이 1962년 고 김지태씨의 개인 재산과 부일장학회를 강탈한 장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박 후보측과 정수장학회는 ‘부정축재혐의를 받던 김지태씨가 구명을 위해 자진 헌납한 재산’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박 후보는 여러차례 ‘문제가 있었으면 지난 정권에서 가만히 내버려뒀겠느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박 후보가 과거 10년 동안 이사장을 지냈고 후임에도 박정희 정권 비서관을 지낸 최필립 이사장이라는 점에서 대국민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박 전 대표는 평소 ‘제가 어떻게 하는 것보다 장학회가 입장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회 환원을 유도, 본격 대선 정국전에 ‘털고’ 갈 것이라는 소문도 박근혜 캠프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한편 본선 캠프 역시 ‘국민대통합’이라는 구호에 걸맞게 지역과 이념, 계층과 세대를 넘어선 ‘매머드급 캠프’를 꾸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 후보는 캠프 인선관련 최근 “당 차원의 선대위를 꾸릴 때는 당의 아주 좋은 능력있는 분들, 그리고 외연도 중요하기 때문에 당의 모든 당협위원장, 그 외 밖에 계신 좋은 분들도 영입해서 많은 분들이 동참해서 같이 함께 하실 수 있도록 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영작 전 한양대 석좌교수의 합류 가능성이 제기됐다. 친박 핵심인 이정현 최고 역시 8월 23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정권을 넘어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도 좋은 인재가 있으며 정권이 다르다고 그런 인재가 사장돼서는 안 된다”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분들이 참여해야지 정권에 얽매여 인재가 사장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권’을 향한 전력질주
이 최고위원은 정몽준·이재오 의원과의 관계회복에 대해서도 “이때까지 새누리당을 지켜왔던 동지들이고 큰 병풍이며 주역”이라며 “반드시 함께 모시고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7년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박 후보. 5년만에 다시 찾아온 대통령 선거를 맞이해 박 후보는 비박세력뿐만 아니라 반박 세력까지 아우르기위한 ‘전력 질주’를 하고 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