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 비박 진영의 두 축인 이재오 전 장관과 정몽준 전 대표의 행보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두 의원은 대선 경선에 출마했다가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전제로 한 경선 룰 개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중도 사퇴하면서 박근혜 후보와 감정적인 거리감이 남아 있는 상태다.
하지만 박 후보 캠프에서는 두 의원과의 접촉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어 박 후보가 이들을 만나 당내 화합을 이뤄낼지 주목된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24일 함께 경선을 치렀던 비박 4인(김문수, 김태호, 안상수, 임태희)과 오찬 회동을 하는 등 본격적인 통합 작업에 나서고 있다.
앞서 박 후보는 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직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행복을 위한 거니 그에 대해 저희도 고민하고 그 분들(이재오 정몽준 등 비박계)도 고민하기 때문에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면, 그래서 국민 위해 할 일이 있다면 당연히 함께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 후보는 이날 회동에서도 “사실 이렇게 다 정치를 하겠다고 들어온 목적도, 우리가 경선에서 (대선) 후보를 뽑은 과정도 어떤 개인보다 국민들이 편안하고 그 삶이 좋아지도록 하는 국민행복을 위한 것”이라며 “네 사람이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도록 힘이 돼주시고 도움이 돼주길 부탁하겠다. 궁극적인 목표가 국민행복이고, 정권을 재창출해야 우리가 약속한 것을 다 실천하고 국민이 바라는 바를 이뤄줄 수 있다. 도와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김문수 지사는 “모든 면에서 도와주겠다”면서 “경기지사직을 하면서, 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도와드릴 것은 도와드리겠다”고 화답했다.
김 지사는 경선 뒤 승복 연설에서 당원들에게 “저를 지지해 주셨던 것보다 더 뜨겁게 박근혜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말했지만 실제 지원 내용에 대해서는 “경기지사 신분으로는 공식적인 선거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은바 있다.
박 후보 역시 회동 후 앞으로 꾸려질 선대위에서 비박 후보들의 구체적인 역할을 묻는 질문에는 “의논을 드려 도와주실 부분은 말해 주기로 했다”고만 했다.
김문수, 일단 지사직 복귀…그러나
당초 김 지사는 10% 이상의 유(有)의미한 득표율을 기록하며 2위를 차지할 경우, 차기 당권과 대권을 노려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김 지사의 득표율(8.7%)이 예상치를 밑돌아 향후 정치 행보에 탄력을 받기는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나마 경선 여론조사에서 16.2%의 두 자릿수의 지지율을 기록한 것이 위안거리다. 이번 경선을 통해 당내 비박진영의 대표 인사로 자리매김하는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새누리당 안팎에서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김 지사를 차출해 선거대책위원장 등 중책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당 일각은 물론이고 박 후보 측에서도 차기 정부의 총리 또는 당 대표 자리를 보장해주고서라도 김 지사를 선대위원장직으로 영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지사가 이재오-정몽준 의원 등과 소원해진 상황에서 박 후보의 부족한 2%를 메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보완재’이기 때문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 당내에 김 지사 말고 (선대위원장감이) 누가 있느냐”면서 “선대위 얼굴이 되면 박 후보의 취약점으로 꼽히는 불통문제, 사당화 문제 등을 일거에 해소하고, 특히 수도권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카드는 김 지사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지사는 일단 도지사직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지난 21일 경기도청 기자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선거법상 도지사는 선거개입이 안 돼 새누리당을 직접 도울 방법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문수 캠프 선대본부장이었던 신지호 전 의원도 “김 지사는 차차기 (대권) 구상을 포함해 큰 그림을 그리며 새 출발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선 결과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2014년 지사직을 마친 뒤 당에 복귀해 당권에 도전하거나 곧바로 19대 대선을 준비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친박, ‘비박 표용론’ 제기
박 후보의 이런 행보에 더해 비박계 좌장격인 이재오 전 장관과 정몽준 전 대표까지 끌어안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현재까지 미지수다.
캠프 내부에서 “우리 힘만으로 갈 수 있다”며 비박계 포용에 미온적으로 나서는 원심력이 더 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향후 대선 캠프에서도 지난 총선과 대선 경선과정을 쥐락펴락했던 최경환 의원을 중용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박계와 간극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 후보 역시 지난 23일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이재오-정몽준 의원과) 국민행복이란 대의를 공유하게 되면 얼마든지 같이 일할 수 있다. 단 (내게) 각을 세웠으니 무조건 (선대위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경환 의원과 이정현 최고위원 등 친박계 핵심들이 이재오 의원 등에 대한 포용론을 얘기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 경선 캠프에서 총괄본부장을 했던 최 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이재오든 정몽준이든 본인들이 죽어도 협력을 못하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대선 승리를 위해 모두 함께 가야 한다”며 이른바 ‘비박 중진 포용론’을 제기한 바 있다.
이정현 최고위원도 “모두가 찾아가서 고개를 숙이고 무릎 꿇고 ‘도와 달라, 지원해 달라’ 해야 할 대상”이라며 “(이재오-정몽준-김문수 등 비박 인사들은) 각자의 역할로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크게 기여하실 분들로 반드시 함께 갈 것”이라고 구애를 보냈다.
이재오, 朴 떠나나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우크라이나 방문을 마치고 22일 귀국한 이재오 전 장관의 일성은 ‘당내 민주화’였다. ‘비박 포용론’이 일고 있는데 대해 이 전 장관이 ‘박근혜 사당화’ 논란을 빗대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장관은 이전에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이후 당이 (박근혜) 1인 사당으로 전락했다”며 박근혜 후보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었다.
이 전 장관은 “통합진보당은 노선 투쟁이라도 하지만 새누리당은 ‘1인 사당화’가 돼 웃어른부터 젊은 사람까지 한 줄로 세워 민주성도 역동성도 없다”고 쓴소리를 던지는 등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바 있다.
이 전 장관은 이날 역시 기자들과 만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중책을 맡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중요한 것은 정권을 재창출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더 중요한 것은 당내 민주화”라고 답한 것이다.
이 전 장관은 그러면서 “당내 민주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어떤 것이 있는지 좀 지켜보겠다”면서 “어떤 길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길인지 등을 여러 가지로 잘 생각해서 기회가 오면 제 입장을 종합적으로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박 후보가 진정성 있게 캠프 동참을 제의하면 응할 생각이 있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제의를 해야지 뭐…”라면서도 “상황을 파악하고 난 다음에 말씀드리겠다. (입장 표명 시점은) 별로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이와 관련, 이 전 장관 한 측근은 “지금까지 박 후보 쪽에서 전혀 이야기가 온 게 없다”며 “정권 재창출 노력을 하기 위해선 서로 소통하고 진정성 확인이 필요하단 뜻”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에서 입장을 정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박 후보측이 뺄셈정치를 덧셈정치로 전환할 때만 가능할 것인데 내부적으로는 큰 기대 안 한다는 분위기”라고 잘라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전 장관이 박 후보와 결별 수순을 밟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박 후보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너서클이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이 전 장관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안철수 원장이나 대안세력과 함께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더 커진 것 아니겠느냐”고 전망했다.
정몽준, 차기 당권 잡고 차차기 노리나
미국 랜드연구소 초청으로 로스앤젤레스를 방문 중인 정몽준 의원도 박 후보의 ‘포용론’에 대해 “선거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한데, 보수정당의 뿌리를 튼튼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 핵심 측근이 전했다. 이 측근은 “박 후보가 최근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화두로 내걸고 있지만, 당이 보수정당으로 정체성을 잊고 인기에 영합해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거나 야당 따라가기에 급급한 게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에선 보수정당으로서의 가치를 중시하는 정 전 대표가 박 후보의 중도ㆍ개혁적인 정책을 표방하고 나선 데 대해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를 보수가 앞장서서 공평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박 후보와의 간극 좁히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 전 대표측 관계자는 “전당대회 결과에 따로 언급을 하지 않았고 박 후보 지지 여부에 대해서도 일절 언급이 없었다”면서 “아직 진정성 있고 구체적인 제안이 오지 않았는데 입장을 밝힐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박근혜 대선 선대위 참여 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경선에 참여했던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지난 22일 “조직적인 측면에서는 이미 박근혜 후보 측이 다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에 그런 부분의 역할은 없을 것 같다”고 밝힌 것도 이와 맥을 함께 한다.
그럼에도 정 전 대표가 2017년 대선을 위해선 이번 대선 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한 뒤 당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5년을 절치부심했던 박근혜 후보처럼 당에서 친정(친정몽준)계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전 대표는 7선으로 당내 최다선이지만 현역 의원으로 자신을 따르는 의원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