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통 크게 질렀지만…“돈은 어디서?”

[전성무 기자]= 정치권의 ‘반값 등록금’ 추진을 놓고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대학 등록금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입법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선을 잡은 것은 한나라당이다. 수도권 출신 황우여 원내대표 체제 출범 이후 친서민 기조를 내세우며 당의 존폐를 걸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선수를 빼앗긴 형국이다. 야권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 정책이 ‘선거용’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보내고 있다. ‘부자정당’, ‘가진자의 정당’이라는 오명을 벗고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중산층을 끌어안기 위한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집권 여당의 사활을 걸고 추진중인 반값 등록금 정책의 ‘허와 실’을 따져봤다.
반값 등록금 추진을 위한 당정의 공식 논의는 지난 5월 25일 시작됐다. 황 원내대표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이날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났다. 대학등록금 인하 정책을 현실화하기 위한 논의가 주목적이었다.
이날 회동에서는 우선 여론을 수렴하고 당정협의 절차를 밟기로 가닥이 잡혔다. 황 원내대표는 “앞으로 공청회 등을 통해 의원, 학생, 학부모, 대학 등으로부터 의견을 수렴, 여러 방안을 마련해 (정부 측과) 심도 있는 협의에 들어가기로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이 장관도 등록금 인하 추진에 동의한 셈이다.
황 원내대표는 특히 “기획재정부에 관련 예산이 들어가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되려면 (당정) 협의가 6월까지는 마무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으로서는 국민 만족도를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정 협의 시한과 함께 당의 강력한 입장 개진을 예고한 것이다.
여권 내부 공론화 활발
이에 따라 여권 내부에서는 등록금 인하 관련 각종 쟁점에 대한 찬반 세력이 갈라지면서 본격적인 공론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등록금 인하 폭에 비례해 대학에 지원할 재원의 규모와 조달 방식, 적용 대상 등을 놓고 시각이 다를 수 있어 치열한 논의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이날 황 원내대표와 정몽준 전 대표가 이 문제를 놓고 대립각을 세웠다. 교육재정 투자 문제 때문이었다. 황 원내대표는 라디오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교육재정 투자 확대(기존 12%에서 20%로)를 주문했다.
그러나 정 전 대표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고등학교 의무교육이 우선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대학 투자는 후순위라는 얘기다. 그는 “(반값 등록금을) 할 경우 다른 좋은 사업을 못하게 되는데 그게 바람직한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등록금 인하 혜택 대상에 대해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책위를 중심으로 내년부터 국가장학금 규모를 대폭 늘려 소득 구간 하위 50%에 대해 등록금 부담을 덜어준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저소득층에 대한 학비 전액 지원 등 수혜 대상과 액수에 대한 시각이 다양하다. 재원 규모 예측도 시각이 엇갈린다. 신주류는 2조 원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정부는 5조 원을 예상하고 있다. 구주류는 7조 원까지 보고 있다. 반값 등록금 정책 추진에 있어서 가장 필수 요건인 재원 마련에 대한 분석 과정조차 선행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당정이 기업과 개인의 대학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우선 법인이 대학에 기부하는 시설비나 장학금에 대한 소득공제를 현행 50%에서 100%로 늘리고, 소득공제율 100%가 적용되는 개인의 대학기부금에 대해서는 세액공제를 해주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이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같은 대학기부 세액공제안에 대해 “창의적 대안의 하나로 검토하겠다”며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황 원내대표도 대표연설에서 “기업이나 개인이 보다 손쉽게 대학에 기부하고 그런 개인과 기업은 더 많은 혜택을 받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손질 하겠다”고 말했다.
기여입학제 도입 하나?
대학등록금 문제가 정치권의 핫 이슈로 떠오르면서 대학 기여입학제 도입 문제도 논의에 포함될지도 주목된다. 그동안 대학 기여입학제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국가재정 지원만으로 등록금 부담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에 결국 기여입학제로 부족한 재원을 채우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 “워낙 민감한 문제라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을 뿐이지 기여입학제 문제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나 국회, 대학 관계자들과 교육 전문가들은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해선 기여입학제만한 현실적 방안이 없다는 암묵적인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소수가 낸 기부금을 통해 장학금 수혜자를 늘리는 방법으로 기여입학제가 최선이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황 원내대표가 원내교섭단체대표 라디오 연설에서 “기업이나 개인이 보다 손쉽게 대학에 기부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겠다. 대학에 기부하는 개인과 기업은 더 많은 혜택을 받고, 대학은 장학금을 마련할 수 있는 윈윈 제도를 만들겠다”고 말한 것도 여당에서 기여입학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진보신당은 즉각 “기여입학제를 시도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논평을 냈다.
지난 참여정부는 기여입학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기여입학제 도입에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기여입학제가 현재로서는 시기상조지만, 기여입학 기금을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으로 준다면 고려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2007년 3월 모교인 서강대 특강에서 “3불 정책으로 손발을 꽁꽁 묶어놓고 어떻게 세계와 경쟁을 하라는 것이냐”며 “기여입학제도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도 기여입학제 도입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른 적이 있다. 하지만 여론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됐다. 정치권에서는 기여입학제 도입을 위해선 보완책을 마련해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부금을 전액 장학금으로 사용하고 기여입학 학생 선발은 정원 외에서 별도로 선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보완책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일단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자금 후원처럼 대학에 10만원의 소액기부금을 내면 전액 세액 공제를 해주는 방안이 현실적이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일부 수도권 명문대 위주로 기부금이 몰리는 ‘쏠림’ 현상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한편 민주당은 지난 5월 26일 반값 등록금과 관련, 여야정 협의체를 조속히 구성하고 50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과 5가지 관련 법안을 뜻하는 자당의 ‘5.5 대책’을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자고 한나라당에 요구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고위정책회의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이 고비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되돌아가는 행태를 반복하면 앞으로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박영선 ‘5.5 대책’ 관련 법안 제시
박영선 정책위의장은 ‘5.5 대책’ 관련 법안으로 ▲등록금상한제도입법 ▲취업후상환제특별법 ▲장학금 확대법 ▲지방교육재정확대법 ▲교육재정확대법을 제시했다.
박 의장은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짝퉁 반값 등록금’을 얘기하면서 그 뒤에 숨어있는 속셈을 경계하고 있다”며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기여입학금 관련 이야기를 슬그머니 꺼내고, 사학비리를 정당화해주려는 의도가 보이는 사학법개정안 통과도 슬금슬금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한나라당이 짝퉁 반값 등록금을 빙자해 이런 법을 통과시키려 한다면 이는 반값 등록금 문제와 분리돼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반값 등록금에 대한 논의가 가속화 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추진배경에 의문의 목소리도 나온다. 반값등록금 정책의 선봉장인 황 원내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반값 등록금 정책을 내놓은 시점 때문이다. 황 원내대표는 반값 등록금 정책을 내년 1학기부터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구체적인 준비과정에 대한 검증 작업은 없고 시기만 강조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있다는 점에서 돌아선 민심을 돌리기 위한 ‘선거용’ 정책이 아니냐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 때에도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대선 이후 반값 등록금 정책은 없던 일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 공약의 최대 수혜자다. 유권자들은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강조했던 반값 등록금 정책을 믿고 표를 던졌다. 이 대통령은 요즘 대학 등록금 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과거 약속했던 공약 이행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내 공약이 아니라 당의 공약이었다”는 입장을 보이며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선거용이든 레임덕 방지를 위한 국면 전환용이든 반값 등록금 카드는 주체와 상관없이 민심을 얻는 데는 매우 유효한 카드다. 하지만 두 번은 통하지 않는다. 한나라당도 내부적으로 이 같은 위기감을 인식하고 정책 추진에 진지한 분위기다. 한나라당의 이번 반값 등록금 정책이 ‘선거용 이벤트’로 전락할지 아니면 등록금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한 성과로 거듭날지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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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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