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우 전 의원이 본 정치 30년 YS와 무너지는 사람들 ①편
장경우 전 의원이 본 정치 30년 YS와 무너지는 사람들 ①편
  • 장경우 전 국회의원 
  • 입력 2011-05-30 17:40
  • 승인 2011.05.30 17:40
  • 호수 891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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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민자·공화 3당 합당 신호탄 쏘다”

1998년 TV에서는 ‘3김 시대’라는 드라마가 한창 방영 중 이었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우리 현대정치사를 다룬 일종의 다큐드라마였는데, 나는 이 프로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정치의 상황이 ‘3김’을 만들어낸 것일까? 아니면 ‘3김’이 우리 정치의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것일까? 분명한 것은 현대 정치사를 말함에 있어 ‘3김’의 존재는 결코 빼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3김’의 삶 자체가 너무 드라마틱해서 아마 이런 현실이 없었던 상태에서 누군가가 이런 드라마를 써냈다고 한다면 “야 그건 너무 비현실적인데?”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든 오늘 이 순간에도 아직도 우리 정치는 ‘3김’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길고도 긴 이 드라마를 후세사람들은 과연 뭐라고 평을 할지….

그러나 정치인의 한 사람이었던 나는 그 드라마의 관객일 수만은 없었다. 좋든 싫든 그분들과 만나야만 했고, 그 속에서 부대껴야만 했다. 3당 합당과 함께 시작된 정계개편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먼저 인연이 시작된 것은 김영삼씨였다.


‘태풍의 눈’ 정계개편

백담사 청문회를 끝으로 일단 ‘청문회 정국’은 일단락 지어졌다. 그리고 새해 벽두 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정계개편의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사실 정계개편 논의는 총선직후(14대국회) 그러니까 여소야대 국회가 막 출범했을 당시 여기저기에서 한창 거론 되었던 문제였다.

그러나 바로 청문회가 도입 되면서 모든 것은 일순간 정지되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청문회가 일단락되기 무섭게 김영삼씨와 김종필씨가 한 우산속을 거니는 사진이 보도되고, 김대중씨는 노태우씨와 정책연합을 할 것이라는 예측들이 무성했다.

바야흐로 정계 개편의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만약 정계개편을 한다면 민정당과 공화당의 합당, 아니면 민정당과 평민당의 정책연합 형식일 것이다는 예측들이 지배적이었다. 그 결과로 중간평가문제를 양보해줬다는 설, 청문회 때 어떤 내약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설이 흘러나왔다.

말 그대로 ‘설(說)’이 무성한 가운데 각 당의 의원들 스스로도 “결국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다 알다시피 그런 모든 예측들은 빗나가고 말았지만 말이다.


단 몇 초만에 바뀐 여야의원

나는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예결위 간사들의 정기적인 해외순방길에 함께 떠났다. 남미 3국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의 공식방문을 마치고 경유지인 마이애미에 도착했다. 사실 여소야대 정국이 시작되면서 거의 2년 동안 일요일 한번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좀 느긋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휴식을 취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때 함께했던 분들은 지금은 고인이 된 당시 민주당 정책위 의장이자 국세청장 출신이었던 김동규 의원과 평민당 정책위 의장이었던 김봉호 의원, 그리고 신민주공화당의 조부영 의원이었고 민정당에서는 나와 조남욱 의원이 함께 했었다.

물론 우리 역시도 만약 정계개편이 된다면 민정당과 평민당의 정책연합정도일 것이다는 예측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해외순방 기간 내내 우리는 이와 관련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특히 평민당 간사였던 김봉호 의원은 각 지역의 대사들에게 애교섞인 농담을 던지곤 했다.

“이거 이제 우리도 여당될꺼니까 우리 우습게 보지 말라구!”

“시집살이 시키는 건 아니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세월 좋은 농담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설마 그렇게 빨리 정계개편이 되리라는 건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고 그 모양새가 그렇게 되리라는 것 또한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마이애미에 도착해 총영사관저에서 조찬을 시작할 무렵, 총영사가 자꾸 나를 보자고 했다. 내가 여당측 대표 간사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는 굳이 나를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갔다.

“이것 좀 보십시오.”

‘청와대에서 민정, 민주, 공화 3총재가 회동 후 3당 합당 전격합의 발표’ 딱 한 장의 한 줄짜리 팩스였다.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 전송되어 왔다는 것이다. 턱하고 말문이 막혔다. 나는 일단 밖으로 들고 나와 다른 의원님들을 불러 팩스를 건네줬다. 순간 우리들 사이에는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침묵이 흘렀다.

단 몇 초 사이에 한 사람만 제외하고는 전부 여당 의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럴 때의 기분은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당혹스러움? 허탈감? 이상한 미안함?

글쎄 분명한 것은 한 분은 분명 좋은 쪽의 기분은 아니었을 테고 나머지 의원들도 그저 덤덤한 모습이었다. 잠시 후 김봉호 의원이 일어났다. 그리곤 그 자리에서 직접 김대중씨에게 전화를 거는 거이었다. 어떤 말이 오고 갔는지 김봉호씨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귀국길에 올랐다. 나는 김동규씨에게 다가갔다.

“김 의원도 YS에게 전화해봐야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마나 아뇨? 이미 결정 났다는데 뭐하러 전화해요? 안 할랍니다.”

김봉호 의원이 급거 귀국하자 우리는 그간 2년 동안 쌓인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리는 듯 했다. 그렇다고 꼭 뭐 좋은 기분이라기보다는 아무튼 갑자기 몸이 노곤해지는 기분이었다.

서울에 빨리 들어갈 필요도 없어져버린 것이다. 갑자기 느긋해져버린 우리들은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 며칠 후 LA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지금 당장 귀국하라는 것이었다. 아직도 백담사 청문회의 그 소란스러움이 귓전을 울리고 있는, 구정을 며칠 앞둔 시점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장경우 전 국회의원] kwa815@naver.com


프로필
●1942년 4월 12일생
●경기중·고/고려대 경영 졸
●대한축구협회부회장
●대한수영연맹 명예회장
●제 11·13·14대 국회의원
●한국캠핑캐라바닝연맹 총재(현)
●세계캠핑캐라바닝연맹 아·태 지역위원회 의장(현)

장경우 전 국회의원  kwa@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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