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재벌가 2·3세들이 선택한 그것
[기획] 재벌가 2·3세들이 선택한 그것
  • 김나영 기자
  • 입력 2012-08-21 10:18
  • 승인 2012.08.21 10:18
  • 호수 955
  • 3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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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는 물부터 드는 가방까지


- 축적된 안목과 여유로운 재력을 총동원한다… 결과는?
- 자신의 지위를 십분 활용… 취향을 비즈니스로 바꾸다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몸에 걸친 것만 중형차 한 대 값인 날도 있어” 세간의 인기를 얻은 한 TV드라마에서 나온 대사다. 이 대사가 가리키는 대상은 대기업을 소유한 재벌가가 아닌 준재벌급 지방 유지의 자녀다. 이쯤 되면 일반 서민들은 사뭇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진짜 재벌들은 집 한 채 값이라도 걸치고 다니는 것일까?”라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일요서울]이 재벌가 2ㆍ3세들이 선택한 아이템들을 짚어봤다.

최근 재벌가 2ㆍ3세들은 이전 세대의 부모들과 달리 일반인들도 범접할 수 있는 수준의 아이템들을 선택해 눈길을 끌고 있다. 물론 태생이 ‘로열패밀리’인 만큼 여전히 고가품만을 선호하는 항목도 있다. 전통적으로 부를 상징하는 자동차가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물품들은 특유의 안목으로 가격 대비 품질 좋은 상품을 골라내 대중을 놀라게 한다. 또한 각별히 아끼는 품목은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사들여 ‘돈 있는 애호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일부 전자제품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기 전에 해외에서 먼저 들여와 사용 후기를 올리며 ‘얼리어댑터’를 자처하기도 한다.


취향을 사업으로…통 큰 재벌가 2ㆍ3세들

재미있는 점은 눈여겨본 중소기업 상품에 자사 서비스를 입혀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거나, 유학 시절 경험한 해외 브랜드를 직접 들여와 국내에 론칭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집무실에서 마시는 물은 프리미엄 생수 ‘잇 워터’다. 정 사장은 자사의 슈퍼콘서트에서 사용할 생수를 찾던 도중 중소기업 ‘로진’을 발견했다. ‘로진’은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생수 공급업체로 발탁될 정도로 높은 품질의 물을 생산해냈지만 독자 브랜드를 갖추지 못해 판매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정 사장은 ‘로진’의 생수에 브랜드를 만들고 디자인을 입힌 ‘잇 워터’를 슈퍼콘서트에 성공적으로 선보였을 뿐 아니라 독자 브랜드로 론칭할 수 있도록 돕기까지 했다.

또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정 사장의 추천을 받아 이마트에 ‘잇 워터’를 들여놓으며 훈훈한 우정을 과시했다. ‘잇 워터’ 1병(350㎖)의 가격은 900원으로 일반 생수보다는 다소 높지만 충분히 구매 가능한 범위에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정 사장이 물과 인연이 있다면 정 부회장은 커피와 인연이 있다. 정 부회장은 익히 알려진 커피 애호가로 청담동에 위치한 카페 ‘커피지인’에 자주 들른다. 부인 한지희씨와 재혼하기 전에도 이곳에서 종종 데이트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드립커피 가격은 8000~1만2000원선, 브런치는 1만5000~2만5000원선으로 청담동치고는 적당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의 커피사랑은 카페를 찾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회사를 설립하기까지 해 스케일이 다른 면모를 보였다. 정 부회장은 미국 브라운대 유학 시절 경험한 스타벅스의 커피맛에 매료돼 결국 국내에 스타벅스를 들여왔다. 신세계는 1997년 미국 스타벅스와 공동출자해 스타벅스코리아를 설립함으로써 2001년 국내에 프리미엄 커피전문점 시대를 열었고, 10년 만인 지난해에는 매출을 초기 200억 원에서 2980억 원으로 15배 이상 끌어올렸다.

정 부회장의 와인사랑도 유명하다. 정 부회장이 마시는 와인은 대부분 한 병에 수백만 원대인 프랑스산 고가 와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미국 등 신대륙 와인과 수만 원대 중저가 와인도 즐기는 편이다. 정 부회장은 결국 2008년 와인 수입사 ‘신세계L&B’를 세워 직수입으로 기존 와인 가격의 20~40%를 낮출 것을 선언하며 또 한번 취향을 비즈니스에 연계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도 와인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럽다. 이 회장은 삼성 임원들에게 “명품을 알아야 명품을 만들 수 있다. 특히 명품 중 명품인 와인을 알아야 하니 모르면 배워라. 해외 출장을 가면 기간을 며칠 늘려서라도 하나라도 더 보고 돌아오라”고 주문했을 정도다.

덕분에 삼성은 계열사 사장단 및 임원들이 와인을 깊게 공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삼성 의전 관계자는 “식이 열릴 때 유명 와인은 물론 다소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와인들이 종종 등장해 관계자들을 긴장시킨다”고 전했다.


언론 노출 계산한 마케팅 기법 논란도

한편 언론 노출을 계산해 전략적으로 자사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자사의 이익과 연계한 마케팅이라는 지적과 함께 합리적인 상품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방법 중 하나라는 시각이 맞서고 있다.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은 지난 6월 제22회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면서 더블버튼의 화이트 재킷으로 언론의 플래시를 한 몸에 받았다. 이 부사장이 입었던 재킷은 자사의 신규 론칭 브랜드인 ‘에피타프’의 제품으로 가격은 40만 원대 후반이다. 당시 해당 제품은 이 부사장이 입었다는 이유로 초판이 매진되고 바로 재판을 찍어내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게다가 신규 브랜드임에도 이 부사장의 이미지가 각인돼 백화점 여성복 브랜드 중 상위매출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이 부사장은 2010년 호암 100주년 기념식에서도 뱀피 소재 핸드백을 들고 나타나 화제를 모았다. 이 핸드백은 일명 ‘상아백’으로 가수 겸 배우 출신인 임상아씨가 뉴욕에서 론칭한 ‘상아’ 브랜드 제품이다. ‘상아백’은 근래 헐리우드 스타들이 이용하는 ‘잇백’으로 유명하며 가격은 1000달러부터 1만 달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 부사장이 해당 핸드백을 든 까닭은 따로 있었다. 제일모직이 2007년 임씨를 삼성패션디자인펀드 지원자로 선정하고, 임씨는 그 해 삼성그룹이 수여하는 삼성패션디자인펀드상(SFDF)을 수상했으며, 제일모직이 오픈한 멀티숍 ‘10 코르소코모’ 매장에 제품을 들여놓았던 것이다. 이 부사장이 든 ‘상아백’이 주목받아 날개돋친 듯 팔리면 ‘상아백’의 직영 매장은 물론 제일모직의 멀티숍 매출도 함께 올라가는 구조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부사장은 뉴욕 파슨스스쿨 동문인 임씨를 물심양면으로 도우면서도 자사의 매출을 끌어올리는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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