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ㅣ강길홍 기자] 중동 진출 1호 건설사로 이름을 높인 삼환기업(회장 최용권)이 비자금 조성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건설경기 악화로 인해 중견 건설사들이 부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삼환기업도 법정관리에 들어갔는데, 최용권 회장의 개인 비자금 조성 사실이 드러나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삼환기업 노동조합은 비자금 조성 등으로 수천억대의 재산을 보유한 최 회장이 회사를 살리기 위한 수십억 원의 사재출연을 거부한 채 자기 잇속만 챙기고, 직원들은 구조조정의 위협 속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최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횡령 혐의로 구속된 전 직원 진술 번복 “회장 개인 비자금이었다”
70억 원 부족해 회사는 법정관리 돌입 “오너 재산은 조 단위”
국내에서 손꼽히는 중견건설사 삼환기업이 유동성 위기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가운데 최용권 회장의 불법 비자금 실체가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삼환기업 노조는 지난 14일 회사 돈 126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 받은 손모 경영지원팀 차장의 2심 판결문을 공개했다. 손 차장은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석방됐는데, 노조 측은 손 차장이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고 석방된 결정적인 이유가 최 회장의 비자금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다.
노조 측이 공개한 판결문에 따르면 손 차장은 최 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하면서 손실을 보자 이를 메우려고 회사가 보유한 유가증권을 팔아 투자하는 과정에서 횡령을 저지르게 됐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손 차장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정형식)는 “여러 증권회사에 개설된 임원 등 명의의 계좌를 손 차장이 관리한 사실 등에 비추어 볼 때 비자금을 관리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고 판시했다.
검찰에서도 손 차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당시 최 회장의 비자금 의혹을 추궁했지만 손 차장이 입을 다물면서 수사에 난항을 겪은 바 있다. 이 때문에 1심 재판부는 손 차장의 개인비리로 판단하고 중형을 선고했지만, 손 차장이 2심에서 진술을 번복하면서 최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손 차장은 2심 재판과정에서 “공식적으로는 회사 유가증권 및 자산 관리 업무를 했지만 비공식적으로 회장 및 회장 일가의 투자자금 및 비자금 관리 업무를 수행했다”며 “비공식적 업무에 더 큰 비중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손 차장이 관리한 차명계좌에는 삼환기업의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된 허종 사장의 명의도 들어있어 비자금 조성에 경영진도 관여했음을 짐작케 한다.
검찰 비자금 조성 의혹 내사 나서
노조 측은 손 차장에 대한 법원 판결에 따라 최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 사실과 경영진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만큼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환기업 노조는 지난 14일 성명을 통해 “회장 일가는 비자금 조성 등 불법행위와 도덕적 해이에 대한 책임으로 1000억 원 이상의 개인 재산을 출자하고,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또한 노조는 최 회장의 비자금 조성이 오랜 기간 이어져 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미 13년 전인 1999년에 노조에서 경영진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했지만 사건이 유야무야 마무리 됐다는 것이다. 당시 사측은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노조의 요구사항인 해고자 복직 등을 적극 수용했고, 사정당국도 수사를 외면하면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삼환기업 주변 관계자들은 최 회장의 비자금 규모가 수천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환기업은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4부로부터 기업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다. 삼환기업은 신용위험평가 결과 C등급을 받고 워크아웃 개시를 신청했지만 만기 도래하는 어음 결제를 위한 자체자금 70억 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후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과 워크아웃 개시를 위한 자금지원 협의를 진행했으나, 채권단 측의 지원 무산으로 삼환기업은 결국 법정관리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당시 채권단은 최 회장에게 70억 원 정도의 사재를 출연하면 법정관리 없이 회사를 조속히 정상화 시킬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최 회장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최 회장이 자기 잇속을 챙기려고 회사 직원 및 협력업체 직원들을 구조조정의 위기에 몰아넣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삼환기업 관계자는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손 차장이 일반적인 주식거래를 비자금으로 오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노조 측이 제기한 의혹은 이미 검찰에서 조사를 진행했고, 문제가 없다고 밝혀진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김승연 한화 회장, 횡령 혐의로 법정구속
한편 최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확산되면서 검찰이 재수사를 벌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검찰은 최 회장 일가의 비자금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됨에 따라 내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자금 조성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최 회장에 대한 중형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근 재벌 총수들에 대한 실형 선고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은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16일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에 벌금 50억 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서경환)는 “▲김승연 회장은 한화그룹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배 주주로서 계열사를 이용해 차명 계열사를 지원한 점 ▲이러한 배임 범죄로 인한 계열사 피해가 2880억 원에 이르는 점 ▲누나 등 가족의 이익을 위해 계열사에 손해를 끼친 점 ▲상당한 규모의 차명 계좌를 운영하면서도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점 ▲이 사건의 최대 수혜자이면서도 모든 책임을 실무자에게 떠넘기며 반성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유죄 선고 이유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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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홍 기자 sliz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