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광고에서 여성의 벗은 몸은 에로티시즘(Eroticism) 소재로서 소비자의 눈길을 손쉽게 붙잡을 수 있는 수단으로는 제격이기에 자주 활용되기 마련이다. 여성 4인조 그룹 LPG의 리더 가연도 이런 흐름에 휩쓸리기라도 하듯 최근 외식 프랜차이즈 ‘벌집삼겹살'이 내놓은 새로운 메뉴의 광고 모델로 나섰다.
‘누드벌집’이라는 메뉴는 기름기를 쏙 빼 더욱 담백해진 삼겹살을 신선한 채소와 특제 소스로 버무려 먹는 것이 특이하다. 전국 수백여 체인점에 배포돼 부착되는 광고는 나체의 모델이 중요 신체 부위를‘속이 궁금하시죠? 직접 드셔보세요’라는 메시지가 쓰여져 있는 얇은 판넬(Panel)로 가리며 쭉 뻗은 길 다란 다리와 육감적인 몸매가 도드라져 있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설득 커뮤니케이션에서 자아 방어(Ego Defensive)개념의 ‘억압(Repression)’이론은 사람의 무의식 세계 속에 잠재하는 성 본능인 리비도(Libido)를 자극하여 대상 만족을 취하도록 하고 이 제품을 구매하게 됨으로써 그 만족도를 더욱 높이려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 광고도 이러한 이론을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기름기를 뺐다하여 ‘누드 벌집’이라고 이름 붙여진 삼겹살 메뉴와 모델의 누드 모습을 연결시킨 콘셉트가 지나치게 생뚱맞아 어색하기만 하다. 광고의 설득효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모델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로 모델의 신체적 매력을 꼽고 있다.
특히 섹시하고 날씬한 여성 모델이 광고에 등장할 때 소비자들은 일반적으로 그 광고 속의 브랜드에 대해 호의적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성격 등의 인품 또한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편견(偏見) 같은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쁘고 날씬한 광고모델이 반드시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모델의 신체적 매력과 그 모델이 보증하는 제품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광고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유광고의 경우 우유가 몸에 좋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건강한 여성의 나신(裸身)을 이용한다거나, 마릴린 먼로가 무엇을 입고 자느냐는 질문에 ‘샤넬 넘버 5'라고 대답한 광고 이후 누드와 향수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는 사례들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변비나 무좀약 등을 광고하면서 매력적인 모델을 등장시키는 것은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삼겹살도 마찬가지다. 또 하나 이 광고는 ‘속이 궁금하시죠?’라는 메시지에서 이 메뉴를 먹게 되면 가려져 있는 여성 모델의 소중한 곳을 음미(吟味)할 수 있다는 점을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표현하여 광고라기보다는 차라리 포로노그래피(Pornography)적인 시선에 더 가까운 듯하다. 여체의 아름다운 곡선을 나타내려고 한다면 누드는 예술이 되지만 여체를 성적으로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이것은 외설이 된다.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의 ‘옵세션
(Obsession)' 향수 광고는 에로티시즘이 예술적으로 팔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 성공 사례다. 이 광고는 누드의 아름다움을 광고에 접목시켜 그림 속 누드가 따라하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감상하고 싶은 오브제(Objet)로 비춰지기도 한다.
1989년 당시 미국인 2만4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장 좋게 기억되는 인쇄광고'에 선정되었으며 4년 연속 '기억률 1위 광고'에 오르기도 했다. 광고에서의 과도한 성적소구는 너무 가벼워 보일뿐 아니라 자칫하면 제품 이미지가 천박함으로 굳혀질 수 있는 위험마저 있다.
적당한 성적 호기심을 유발하거나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제품으로의 관심으로 연결되지만 지나치면 성적인 자극과 욕구만 부추길 뿐 제품에 대한 관심은 떨어지게 된다. 이 광고 역시 이러한 우려가 크게 남는다. ‘벌집삼겹살'이 이런 광고를 하는 의도는 따로 있는 듯하다.
누드사진을 찍은 연예인의 이름은 곧바로 포털사이트 검색어 인기목록 최상위에 오른다. 예술적이건 퇴폐적이건 일순간의 폭발적 확산과 정보 도달 범위를 나타내는 ‘매스 커버러지(Mass Coverage)’효과가 높은 인터넷의 특성을 이용한 노이즈(Noise)마케팅의 의도가 아닌가 싶다. 온몸으로 “나를 가지고 싶지?”라고 하는 걸 그룹일수록 인터넷의 사랑도 그만큼 커지는 이유다.
하지만 걸 그룹 멤버들이 스스로 성 상품화 되는 것을 당연시 하며 그들 스스로 ‘섹시하다’는 평가를 최고의 찬사로 여기는 사회 풍조에 대한 개탄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 광고의 지나친 누드 메시지는 이런 걱정마저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녀노소 모두 ‘국민 메뉴’로 먹는 삼겹살 식당에 이런 그림의 광고가 버젓이 걸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하다.
11세기 영국 중부지방 코벤트리(Coventry) 영주의 부인 고디바(Godiva)는 남편인 레오프릭(Leofric)에게 농노(農奴)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세금을 낮춰 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부인의 닦달에 못이겨 “당신이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응수했다. 그런데 고디바 부인이 선뜻 알몸시위에 나선 것이다.
당시 농노들은 그녀의 마음에 감동해 그녀가 거리로 나섰을 때 집집마다 문과 창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내려 부인의 희생에 경의를 표했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문틈으로 은밀하게 그녀의 벗은 몸을 훔쳐봤다. 피핑톰으로 알려진 이 남자는 후에 눈이 멀게 됐다고 한다.
누드를 노골적으로 이용하는 광고는 북미 <New Life Clinics>의 설립자 스티븐 아터번(Stephen Arterburn)의 표현처럼 ‘모든 여자의 들키고 싶지 않은 욕망’을 마케팅 현장으로 최대한 끌어내 ‘모든 남자의 참을 수 없는 유혹(Every Man Battle)’을 철저히 이용한다. 소비자들을 피핑톰의 남성적 발동을 유발했던 리비도의 굴레로만 묶으려는 이런 광고들이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난무해도 되는 것일까.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 /IMI 대표> ilyo@ilyoseoul.co.kr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