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집권 4년차 증후군 빠지다
MB집권 4년차 증후군 빠지다
  • 전성무 기자
  • 입력 2011-05-24 10:29
  • 승인 2011.05.24 10:29
  • 호수 890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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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YS·DJ·노무현 4년차 대해부
[전성무 기자]= 역대 어느 정권이든 집권 하반기에 레임덕을 피해갈 수 없었다. 특히 집권 3~4년차에 터지는 대형 사건은 일종의 증후군으로 자리 잡았고 레임덕의 촉매제 작용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12월 노동법 날치기 통과라는 무리수를 둔 이후 집권 5년차인 1997년 초 차남 김현철씨가 연루된 한보 게이트가 터지면서 권력 이탈을 경험해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권력의 축은 이회창 전 총리쪽으로 급속하게 이동했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이 집권 3년차에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진행한 공직자 사정도 무색해졌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 말기 1년 동안 ‘식물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다. 여기에 1997년 외환위기도 문민정부의 부실 국가경영으로 인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현재까지도 불명예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레임덕은 집권 4년차부터 본격화 됐다. 금 모으기 운동 등을 통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새천년민주당 창당,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정국 주도권 장악을 시도했다. 하지만 2000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패배하면서 제1당에 오르는 것에 실패, 권력의 축이 이동됐다. 이후 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로 알려진 이른바 ‘3대 게이트’가 잇달아 터지면서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야권에 주도권을 내줘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 서서히 레임덕의 길로 접어들었다. 부동산 폭등에 따른 민심이반이 진행됐고 인사 문제로 인해 열린우리당과 대립각을 세웠다. 대연정과 원포인트 개헌 등 정치이슈를 꺼냈지만 되려 역풍을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듬해 탈당했다. 임기 후반기에 터진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개발, 행담도 개발과 관련된 사건도 잇달아 발생한 것도 레임덕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초 ‘전방위 부패 청산’을 들고 나오면서 공직사회의 이탈을 막으려 했지만 각종 대형 스캔들로 인해 힘이 빠졌다.

이처럼 역대 정권이 모두 임기 후반기 ‘증후군’에 시달리면서 이명박 정권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당청 안팎에서는 이미 레임덕에 빠진 상태라는 분석이 나온다.

레임덕은 지난해부터 본격화 됐다는 시각이 많다. 최대 국가 현안이었던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지난해 부결된데 이어 6·2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하자 이때부터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것. 또 비슷한 시기에 터진 이른바 ‘영포 게이트’는 이명박 정부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영포 게이트는 2008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 김종익씨에 대해 벌인 불법사찰 배후가 영일·포항지역 출신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포 게이트는 여권 내 권력 투쟁을 야기시키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됐다.

특히 지난해 말 KBS 보도로 세간에 알려진 ‘함바 게이트’는 이명박 정부를 궁지로 몰아 넣었다.

4·27 재보선은 이명박 정권의 레임덕을 기정사실화 했다. 한나라당의 선거 참패로 인해 친이계가 주축이었던 당 지도부가 전원 사퇴했다. 이후 비주류 출신들로 권력 지형이 대이동하면서 친이계 의원들의 이탈도 본격화 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여권에 편중됐던 주요 정보 흐름이 이미 야권으로 넘어 갔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가 이미 집권 4년차 증후군에 빠진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면서 “사람에 이어 정보까지 ‘이탈’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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