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슈퍼스타 K(ing)’ 만들기 본격 가동
‘박근혜 슈퍼스타 K(ing)’ 만들기 본격 가동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1-05-17 13:08
  • 승인 2011.05.17 13:08
  • 호수 889
  • 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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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비운의 황태자 박철언 만든다”

약(藥), 92년 비주류 YS 주류 노태우 압박 권력 ‘쟁취’
독(毒), 97년 주류 이회창 대세론… 대항마 부재 ‘좌초’


[홍준철 기자] = 여권 권력 지형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집권 여당의 명실상부한 주류인 친이재오계가 범박 진영으로부터 포위당하고 있다. 주류 비주류 교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친이계의 한 축을 담당했던 친이상득계가 친박계와 연대해 친이 강경파인 이재오계를 압박하고 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중립 황우여 의원의 당선이 대표적이다. 이는 곧 한나라당이 ‘박근혜냐 아니냐’로, 박근혜 대 반박근혜 대결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승리였다. 여당이 빠르게 ‘박근혜당’으로 변해가면서 ‘박근혜 대세론’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다. 반면 이재오 특임장관은 정치적 폭이 급속히 좁아졌다. 여권 일각에선 이 장관을 두고 ‘MB 정권이 토사구팽 한 게 아니냐’부터 ‘역할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친박 진영에선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이재오 장관은 필요악이라며 오히려 방어해주고 있다. 92년 대선 ‘6공 황태자’로 군림하던 박철언씨처럼 강한 경쟁자가 존재해야 박 전 대표가 97년 이회창 후보처럼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친박근혜 진영에서 차기 대권을 거머쥐기 위한 작업을 본격 적으로 시작했다. 4·27 재보선 참패, 원내대표 선거를 거치면서 박근혜 쏠림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7월달에 치러질 조기전당대회는 공식적으로 ‘박근혜당’으로 탈바꿈하는 날이 될 것이라는 관측마저 대두되고 있다. 당권 예비주자들 역시 박 전 대표와 눈을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내 ‘박근혜 대세론’이 급속히 확산되는 반면 친이 주류의 수장이자 정권 2인자인 이재오 특임장관의 운신의 폭은 급격히 좁아졌다. 친이 주류가 세게 밀었던 안경률 의원이 원내대표 선거에서 낙선함으로써 이 장관은 장관직 거취를 고민할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친이계 내부에선 원내대표선거 전 이 장관의 세과시가 오히려 역풍을 맞은 게 아니냐는 관측마저 내놓았다. 2번의 세과시가 반이재오 진영의 결집을 가져왔다는 해석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권 일각에서 이 장관의 당 복귀가 빨라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장관은 ‘장관직에 충실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비주류의 반란’에 맞서 정면돌파용으로 당권 도전카드를 꺼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작년 8월 ‘이명박-박근혜 신사협정’을 맺어 지금까지 유효한 상황에서 이 장관의 당권 도전은 청와대의 반발을 살 수 있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상득, 92년 대선 김윤환 役 그럼 이재오는…

급기야 여권 일각에선 이 장관을 겨냥해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다’부터 ‘MB정권의 N분의 1일뿐’, ‘정권으로부터 토사구팽 당했다’는 냉소적인 반응까지 나왔다. 친이계 일각에선는 ‘김문수 조기 등판론’을 내세웠다. 이 장관이 옴짝달짝할 수 없다면 7월 전당대회에 김 지사가 나서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김 시자 역시 전대를 겨냥해 “박근혜, 오세훈이 나오면 나도 출마한다”고 일성을 날렸다. 하지만 실현가능성은 매우 낮은 얘기다.

이 장관이 수세에 몰리자 오히려 친박 진영에선 ‘이재오 역할론’을 들고나오면서 친이계와는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2007년 박근혜 경선캠프에서 근무했던 한 참모는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이 장관을 내쳐선 안된다”며 “97년 대선처럼 당내 상황이 펼쳐진다면 본선에서 승리하기가 어렵다”고 회고했다. 이 인사는 “오히려 92년 모델에서 답을 찾아야한다”며 “YS가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낙점을 받는 과정에 박철언, 박태준이라는 정권 2인자가 있어 가능했다”고 ‘이재오 활용론’을 주장했다.

특히 오는 2012년 대선은 1992년 대선처럼 20년만에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진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깊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92년 총선전까지 3당합당으로 의석수가 299석 중 221석으로 말 그대로 공룡정당이었다. 주류인 민정계로부터 적극 지지를 받은 노 대통령은 정권 최대 공신이자 6공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씨로 후계구도를 잡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비주류이자 민주계인 YS가 3당 합당으로 들어오면서 후계구도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주류는 민정계였지만 DJ에 맞서 마땅한 대항마가 내부에 없었다는 점에서 현재 한나라당 주류와 같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비주류인 민주계에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YS가 있었다.

YS는 이런 점을 십분활용해 대선 1년 전인 92년, 총선을 앞두고 ‘후보 조기 가시화’를 주장했다. YS 깃발아래에서 총선을 치러야 승리한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민주계 의원들은 ‘탈당 불사 결의문’을 통해 측면 지원했다. 물론 정권 2인자이자 대통령에 뜻을 두고 있었던 박태준, 박철언 두 인사는 강하게 반발했다. 노 전 대통령 역시 YS의 요구를 처음엔 거부했다.

YS 닮은 MB
후계구도 선택은…


하지만 92년 3월 치러진 총선에서 민자당이 참패했고 이로 인해 YS와 청와대는 ‘책임론’ 공방이 일었다. 급기야 YS는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만나 ‘여차하면 당을 쪼개고 나가 DJ와 손을 잡겠다’고 엄포까지 했다. 결국 노 대통령은 YS의 ‘벼랑끝 전술’에 굴복했고 YS는 그해 5월 전당대회에서 후계자로 낙점됐다.

이후 YS는 노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했고 급기야 노 대통령은 8월 25일 당 총재직을 내놓아야만 했다. ‘물태우’라는 별명이 생긴 이유다. 또한 대선을 두달 앞둔 10월 주류였던 박철언, 박태준 등 일부 민정계 인사는 당을 탈당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비군부 민정계인 김윤환, 강재섭 의원은 잔류하면서 ‘실패한 쿠데타’가 됐고 YS의 반란은 성공해 92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입장이 YS와 매우 유사하다. 내년 총선 역시 92년 총선처럼 정권 심판론으로 치러질 수밖에 없다. 선거 전면엔 박 전 대표가 나설 수밖에 없지만 현 172석을 지키기엔 역부족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박근혜 책임론’과 ‘정권 책임론’ 공방이 친박과 친이로 나뉘어 치열하게 벌어질 공산도 높다. 또한 YS곁에 민정계 한축을 담당했던 김윤환씨가 있었다면 박 전 대표에게는 대통령의 친형이자 친이계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이상득 의원이 있다. 특히 원내대표 선거로 그동안 설로만 떠돌았던 ‘박근혜-이상득 연대설’이 가시화됐다.

나아가 친박 진영에선 노 대통령 시절 정권 2인자로 살아온 박철언 역할을 이명박 정권 2인자인 이재오 장관이 담당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셈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대선이 1년6개월이나 남은 상황에서 이 장관의 조기 2선 후퇴는 박 전 대표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장관이 무대에서 사라질 경우 박 전 대표로선 이 대통령과 차별화 전략을 조기에 구사해야 된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MB 정권과 본격 차별화를 하기전까진 MB의 아바타격인 이 장관이 역할론을 주장하는 이유다. 또한 친박계에서 92년 대선 모델을 선호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친박,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이재오 역할 반드시 필요”

그러나 친박 진영의 이런 기대가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친이재오계에선 97년 대선 롤모델로 흐를 수 있다고 반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회창 대세론이 당내에 확산되면서 내부 정적을 조기에 제거한 게 이 후보의 대선 패배의 단초가 됐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당시 경선에 참여했던 9룡중 대선전에 이인제, 박찬종 두 인사가 탈당을 했고 이후에는 3명이 더 탈당하면서 이 후보의 포용력까지 문제가 됐다. 특히 신한국당을 탈당한 이인제 후보의 경우 500만표를 가져가면서 40만표 차이로 DJ에게 진 이 후보로선 패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또한 당내 대세론이 오래가면서 이 후보는 YS와 조기 차별화를 시도했다. ‘YS 인형 화형식’까지 거행한 이 후보로 인해 YS와 관계는 사실상 끝이 났다. 이에 격분한 YS는 당시 ‘대통령이 누구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대통령이 안되게 막을 수 있다’는 말을 해 현재까지 전해내려오고 있다. 오늘날 친이재오계에서 박 전 대표를 겨냥해 은연중에 흘리는 말이기도 하다. 박 전 대표 입장에선 92년 대선은 약이 될 수 있다. 반면 97년 대선으로 흐를 경우 독으로 작용할 공산이 높다. 어떻게 흐를지는 아직 예단하기 힘들다. 청와대 입장 역시 불분명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로선 선택의 순간이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는 점에서 행보가 주목된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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