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현대그룹측의 발표대로 김 부회장의 개인적인 비리가 퇴출의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익명의 투서가 최용묵 현대그룹 경영팀 사장에게 배달되면서 발단이 됐다는 것. 투서는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다수가 접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투서는 최용묵 사장에게 전달된 후 현정은 회장에게 직보되면서 올초부터 자체 조사에 들어가 일부 사실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그룹내 소식통에 의하면 당초 현 회장은 투서 사실을 올 중반 북한 방문시 현지에서 확인했으나 김 부회장이 워낙 대북사업의 모든 것을 쥐고 있어 쉽게 그에 대한 처리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북한 방문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현 회장에게 대북사업의 무게를 실어주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으면서 김 부회장의 개인적인 문제를 처리하는데 탄력을 받은 것으로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투서 내용에는 김 부회장이 금강산 옥류관 분점, 온정각 시설 분양에 대해 지인에게 특혜를 주고 개인자격으로 참여했다는 등의 의혹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북한 사업소에서 불법으로 달러를 반출하다 북한 당국에 적발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고 현대측 소식통은 전했다.
결국 돈이 현-김 팀웍을 갈라놓은 원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김윤규 부회장 측근은 다른 주장을 내세운다. 한 측근은 “김 부회장은 이미 준 재벌 수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어 따로 재산관리인까지 내세운 상태”라면서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의 비리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김 회장의 개인 비리를 소상히 밝힌 투서 내용으로 볼 때 투서를 작성한 사람은 대북사업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그를 잘 아는 관계자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중요한 것은 옥류관과 연루된 비리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데 양측에서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김 부회장의 퇴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옥류관은 과연 어떤 곳일까. 옥류관은 북한이 대놓고 자랑하는 북한 최대 최고의 음식점이다.
옥류관의 별미는 역시 ‘평양랭면’과 특유의 백김치다. 이 ‘평양랭면’은 하루에 2만 그릇이나 팔릴 정도다. 옥류관 김치 역시 고 정주영 회장이 ‘랭면’이 채 나오기도 전에 한 접시를 금세 비울 정도로 맛깔스럽기로 유명하다. 때문에 옥류관 금강산 분점은 물론 한국 내 분점의 사업권을 놓고 물밑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는 것이 대북사업을 펼치고 있는 이모 대표의 설명이다. 표면적으로 대북사업으로 자신의 입지를 높였던 김 부회장은 이제 아이러니컬하게도 대북사업(비리)에 발목이 잡혀 도중하차하는 꼴이 됐다. 이달 말이면 옥류관 분점이 금상산에 문을 열어 금강산 관광객들에게 본격적으로 ‘평양랭면’이 팔릴 예정이다. 김 부회장이 닦아놓은 옥류관 비즈니스는 그의 퇴진과 상관없이 번창할 것으로 보인다.
# ‘딸 뒤엔 엄마가 있었다’ - 현정은 회장의 김문희 현대엘리베이터 고문은 누구?
김윤규 회장의 퇴출은 현정은 회장측의 주도면밀한 계산 끝에 이뤄졌다는 것이 재계의 공통된 평가다. 표면적으로 일등공신은 그룹의 ‘싱크탱크’라 할 수 있는 경영전략팀의 수장 최용묵 사장이다. 하지만 현 회장에겐 경영전반에 대해 코치를 받는 공개되지 않은 숨은 책사(策士)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바로 친모인 김문희 현대엘리베이터 고문이자 용문학원 이사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을 맡고 있는 최 사장이 이번 김 부회장의 퇴출 시나리오를 기획했다면 김문희 회장이 감독을 맡지 않았겠냐는 해석이 힘을 받고 있다.
특히 과거 정상영 금강고려화학 명예회장과 벌인 경영권다툼에서도 김 고문은 직접 지분출자를 통해 딸인 현 회장의 경영권 수호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왔던 전적이 있다. 현재 김 고문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 주주이며 추정평가액만 600억원을 호가한다. 김문희 고문은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주의 외동딸로, 김창성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김 고문은 훗날 현대상선에 흡수된 당시 신한해운의 현영원회장과 결혼하여 딸만 넷을 낳았다. 그 가운데 둘째인 현 회장이 이화여대(사회학과)를 나올 정도 공부도 잘하고 똑똑해서 가장 총애를 했다고 지인들은 전한다. 따라서 김 고문이 ‘구(舊)’현대의 마지막 가신인 김윤규 부회장을 퇴출시키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주장이 그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이규성 bob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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