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최은서 기자] 2박3일 여행 일정으로 혼자 제주를 방문했다 연락이 끊긴 40대 여성 A(40)씨가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여성이 실종된 지 12일, 경찰이 살인 등 혐의로 피의자 강모(46)씨를 검거한 지 12시간여 만이다. 제주도 올레길을 홀로 걷던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사체까지 훼손한 범인은 올레길 인근 마을에 사는 40대 강도 전과자 강씨였다. 강씨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조용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아와 이번 사건으로 동네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일명 ‘엽기 올레길 살해’로 제주를 공포로 밀어 넣은 강씨의 행각 속으로 들어가 봤다.

‘착한 사람’ 주위의 평판과 다른 잔혹살인
시신 훼손하고 현장 3번이나 다시 찾는 대담함
컴퓨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프리랜서 A씨는 미혼으로 지난 11일 오전 10시 40분 2박3일 여행 일정으로 항공편으로 혼자 제주를 방문했다. 여행 첫날부터 비가 많이 내리자 A씨는 모든 일정을 다음 날로 미루고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A씨는 여행 첫날 성산읍 주변의 올레길 1코스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다음날인 12일 미뤄둔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오전 7시께 숙소를 나선 A씨는 연락이 두절, 행방이 묘연해졌다. 당시 올레길 주변에는 짙은 안개가 자욱했다. 서울의 가족들은 A씨가 귀가 예정이었던 13일에도 노원구 자택으로 돌아오지 않고 14일까지도 연락이 닿지 않자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다.
‘꼼수’가 ‘자충수’돼 덜미
실종기간이 장기화되자 경찰은 범죄 피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난 17일부터 공개수사로 전환, 광범위한 수색작업을 전개했다. 경찰은 A씨의 사진이 개제된 전단 3000부를 제작해 배포하고 실종현장 주변에 거주하는 독거세대 및 전과자 등의 당일 행적 등을 정밀 수사하기 시작했다. A씨의 실종으로 애가 탄 가족들은 사례금으로 1억 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A씨가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던 A씨 가족들의 바람과는 달리 지난 20일 만장굴 입구 버스정류장 벤치에서 A씨의 보라색 운동화 1켤레와 절단된 오른쪽 손목이 발견됐다. 버스정류장 벤치 위에 나란히 올려 져 있는 운동화 속에는 절단된 오른쪽 손목이 놓여있었다. 강씨가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산읍에서 약 18km 떨어져 있는데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A씨의 신체 일부가 발견된 것.
이는 올레 1코스에서 경찰 수색이 강화되자 심리적 압박을 느낀 강씨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저지른 짓이었다. 하지만 이는 범행 정황으로 드러나 ‘자충수’가 됐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구성 당일 차량 이동모습이 담긴 CCTV 분석에 나섰고, A씨 실종 당일 올레 1코스에서 강씨를 목격했다는 탐방객 진술과 당일 행적에 대한 강씨의 거짓 진술, CCTV 분석 결과 등을 토대로 강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임의 동행으로 이뤄진 1차 조사 이후 강씨가 도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경찰은 지난 23일 그를 체포, 강씨가 지인에게 빌린 차량의 보조석에서 발견된 핏자국 등을 앞세워 집중 추궁한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전시 살인 가능성
강씨는 경찰에서 “소변을 보는데 여성이 성추행범으로 오해해 신고하려는 것을 막으려다 목을 졸랐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죽어 있었다”며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범행 당일 지병인 당뇨병 치유를 위한 운동을 하기 위해 올레 1코스를 갔다”며 “신체 일부분이라도 유족들에게 돌려주려고 오른 손목을 커터칼로 절단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이유로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했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유족도 “올레길 입구에는 안내소와 입구에 각각 화장실이 있고 매일 그 곳을 올라가는 범인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며 강씨의 진술을 정면 반박했다. 경찰 역시 강씨의 범행 동기는 신빙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강씨가 A씨를 수십 분간 뒤 따라가 성폭행한 뒤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강씨의 주장대로 우발적인 범죄로 보기에는 범행 이후의 행적이 지나치게 대담하고 뻔뻔했다. 강씨는 범행 당일을 제외하고도 시신 유기 현장에 3번을 다녀갔고 보란듯이 A씨의 시신 일부를 공공장소에 유기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강씨가 시신을 유기했다는 성산읍 시흥리 대나무밭을 수색해 옷 일부가 벗겨진 채 A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올레 1코스에서 걸어서 10여분 정도 떨어진 지점이다. A씨의 시신은 상의와 브래지어가 벗겨져 있었으며 신원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다. 시신 주변에는 A씨의 배낭도 있었다. 강씨는 경찰조사에서 “시신을 올레길 옆에 숨겨뒀다 오후에 시신을 차에 실어 500m 떨어진 대나무 밭으로 옮겼다”며 “13일에 다시 찾아가 흙으로 덮어 가매장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강씨가 A씨의 신체일부를 잘라 버스정류장에 갖다 놓은 것을 두고 일종의 ‘전시살인’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전시살인은 사이코패스가 살인을 저지른 뒤 시신이나 시신의 일부를 공개해 알리는 방식의 범죄로 스릴러 영화 등에 자주 등장한다. 이는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고 자신의 범행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국내에서는 매우 드문 사례다.
충격으로 술렁이는 동네
이처럼 엽기적인 범행으로 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강씨는 자신의 어머니에겐 더 없는 효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강씨는 15년간 선원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어머니의 암 수술 비용도 직접 대줬다. 경찰 역시 강씨에 대해 “강력범죄를 저지른 강씨가 의외로 부모에게는 효자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강씨는 경찰조사과정에서 “이번 사건을 어머니가 아시면 자살한다”고 걱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동네 주민들도 평소 조용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았던 강씨의 끔찍한 행각에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동네 주민들은 강씨를 말수가 적어 조용하고 순한 사람으로 기억해 강씨의 범행에 동네는 충격으로 크게 술렁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평판에도 불구하고 강씨는 범행은 엽기적이고 잔혹했다. ‘두 얼굴의 살인마’였던 셈이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그의 강도 전과도 드러났다. 그는 2008년 4월 특수강도미수 혐의로 검거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아 2010년 출소했다. 또 2003년에는 특수강도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성범죄 전과는 없었다.
한편 경찰은 부검이 이루어졌지만 성폭행 여부는 밝혀내지 못했다. 시신의 부패정도가 심해 외상확인과 성폭행 여부를 확인하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체내 내용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분석실에 정밀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경찰 조사결과 강씨는 일주일에 몇차례씩 성산읍의 PC방에서 음란동영상을 즐겨 봤던 것으로 확인됐다. 강씨는 경찰 조사에서 미혼이어서 최근 몇 달간 성관계를 가져 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또 강씨 집을 압수수색했지만 컴퓨터나 음란물 등은 찾지 못했다. 경찰은 강씨의 범행과정과 함께 성폭행 여부 등에 무게를 두고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