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전수영 기자] <안철수의 생각> 돌풍이 거세다. 야권의 최대 잠룡인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 드디어 자신의 생각을 밝혔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생각>에는 그동안 국민들이 궁금해 했던 안 원장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안 원장을 인터뷰한 제정임 교수다. 제 교수는 언론인을 거쳐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의 시각은 진보와 보수의 잣대로 보면 진보에 가깝다.
이런 제 교수에게 안 원장이 직접 연락해 책 출간을 얘기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제 교수를 신뢰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제 교수가 주간교수로 있는 ‘단비뉴스’의 취재를 엮은 <벼랑에 선 사람들>을 읽고 감명을 받아 먼저 연락을 했다는 점에서 <벼랑에 선 사람들>이 던진 문제에 대해 답하는 것이 가장 좋은 자기 서술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결국 초단기에 베스트셀러가 된 <안철수의 생각>에는 <벼랑에 선 사람들>이 던진 화두가 그대로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벼랑에 선 사람들>에는 음습한 노동 현장의 모습이 그래도 서술돼 있다. 시장통, 텔레마케터, 건물 청소부 등. 거기에 빈곤층의 주거문제도 드러나 있으며, 육아와 교육에 대한 눈물어린 호소도 들어 있다. 또한 아파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의료복지의 사각에 놓인 사람들과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절규 또한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사람이라면 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야만 한다. 이들은 실제로 우리 국민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제 교수는 안 원장에게 <벼랑에 선 사람들>이 담고 문제에 대해 답을 구한다. 질문은 결코 평이하지 않다. 이미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다.
하지만 안 원장은 약간은 한쪽으로 치우친 제 교수의 질문에 당황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고 천천히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묻는 질문이 당연하다는 듯.
안 원장의 대답은 원칙적이지만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미 안 원장이 합리적이지만 중도 성향의 인물은 아닌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안 원장은 책에서 “사업을 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결국 안 원장이 제 교수를 택한 이유도 자신의 중립적이면서 원칙적인 발언을 진보적인 질문을 통해 다른 시각으로 보여주기를 바랐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자신이 말한 전셋집을 전전했던 경험, 무의촌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일, 자신의 아내가 레지던트 생활 중 아이를 낳았지만 선배들 눈치 때문에 출산휴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일만으로는 사회의 잘못된 모습을 제대로 꼬집기는 어렵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벼랑에 선 사람들>과 <안철수의 생각>을 읽어보면 마치 안 원장은 <벼랑에 선 사람들>에 등장하는 20~40대의 젊은층이 던지는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보편적 복지가 기본
안 원장은 선별적 복지보다는 보편적 복지에 무게감을 두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복지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어떻게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지를 말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 시작하고 있다.
안 원장은 자신의 아내도 레지던트 시절 아이를 낳아 선배들의 눈치를 보며 출산유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안 원장은 자연스럽게 육아와 보육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정부가 육아를 책임지지 못하기 때문에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이라며 출산율 낮은 것을 탓하기 전에 정부가 어떻게 태어난 아이들을 키워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벼랑에 선 사람들>에도 법정 출산휴가일인 90일을 모두 사용하지 못하고 60일만 사용한 차모씨의 얘기가 나온다. 안 원장의 아내와 비슷한 경험이다. 하지만 설계회사에 다니던 이모씨는 아이를 낳고 회사에 복귀를 하려고 하자 회사에서 “자리가 없으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얘기했다가 이씨가 항의를 하자 우선은 복귀시켰다가 한 달 후에 회사를 그만두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지만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이렇게 억울하게 일자리를 잃었지만 노동자는 제대로 항의할 곳도 없다.
안 원장도 이런 문제에 공감하며 제도적으로 법을 잘 지키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그렇지 못한 기업에는 패널티를 부과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개천에서 용 나야 한다”
<벼랑에 선 사람들>에서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어 대학교육을 받고도 버젓한 일자리에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나온다.
안 원장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때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출발점이 다르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안 원장은 부의 대물림 현상으로 인해 부유층 자녀들은 명문대에 쉽게 입학해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중산층과 하층의 자녀들은 상대적으로 기회가 적다며 동등한 기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여건에 상관없이 교육만큼은 똑같이 받아야 하고 이를 통해 ‘개천에서 용 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현재 중학교까지인 의무교육을 고등학교까지로 확대하고 궁극적으로는 무상급식과 아울러 교과서와 교복 거기에 학습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도 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또한 버거운 등록금으로 인해 공부보다는 학비를 마련해야만 하는 대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등록금을 낮추고 학자금 대출의 문도 더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문제 반드시 잡아야
안 원장은 자신이 ‘안철수 연구소’를 운영했던 경험에 비춰 대기업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대기업 중심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재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기업이 경제의 기반이 되는 중소·중견기업을 독점함에 따라 전체 경제를 손아귀에 넣고 흔드는 것은 문제라며 중소·중견기업이 튼튼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창업을 쉽게 할 수 있고 혹시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안 원장은 규제는 풀어주되 감시는 더욱 강화해 대기업들이 부의 대물림을 불법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철저히 막아야 하며, 중소·중견기업의 기술을 자신들에게만 독점 공급하라는 식의 억압이 결국 세계적인 강소기업의 탄생을 막는 것이라며 대기업의 경영방식을 꼬집었다.
우수한 중소기업이 계속해서 나타나야만 일자리가 창출되고 우수한 인재들도 성장할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도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제 교수가 그동안 많은 언론에 칼럼을 통해 밝혀왔던 해법과 내용적으로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에 있어서는 궤를 같이 하고 있다.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