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최은서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후 6번째 대국민사과를 했다. 이 대통령이 지난 24일 친인척과 측근들의 잇따른 비리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한 것은 현 정권의 ‘무너진 도덕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일로 평가된다. 이는 불과 10개월 전 이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화자찬했던 말을 스스로 뒤집는 격이 됐다.
MB 정권 초부터 정권 말까지 친인척·측근 비리가 잇따라 터졌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이날 대국민사과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같은 잇단 측근비리로 ‘유권무죄’ 등의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번지고 경제 불황과 맞물리면서 국민들이 무기력증에 빠지고 있다. 경제대통령을 자처했던 이 대통령 집권 이후 기대와는 달리 높은 실업률·물가, 하락을 거듭하는 집값과 주식으로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식이 낳은 측근비리 공화국 오명
‘유권무죄’…서민들은 어디로, ‘패배의식’ 팽배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최측근인 김희중 전 청와대 부속실장 등 친인척·측근 비리에 대해 ‘포괄적 사과’를 했다. 이 대통령은 “개탄과 자책만 하고 있기에는 나라 안팎 상황이 너무 긴박하고 현안 과제가 너무 엄중하고 막중하다”면서 제갈량의 출사표에 나오는 사이후이(死而後已·죽은 후에야 멈춘다)를 인용해 “오직 겸허한 가짐과 사이후이(死而後已)'의 각오로 더 성심을 다해 일하겠다”며 마지막까지 국정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측근 누구의 어떤 잘못에 대해서 사과하는지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자신에 대해서도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고 확고한 결심을 갖고 출발해 나름대로 노력해왔다”고 자평했다. 내곡동 사저 의혹이나 민간인 불법사찰에 관한 언급도 없었다. 대통령 친인척·측근 비리에 대한 강력한 수사의지 역시 내비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이날 약 4분간 준비된 원고를 낭독하고 질문을 받지 않은 채 대국민 사과를 마쳤다. 이번 사과가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상식이 무너지는 나라
이번 정권 역시 친인척·측근 비리를 비켜나지 못했다. 부패와 비리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는커녕 친인척과 측근들은 권력을 손에 쥐고 국정을 흔들었고 권력을 견제·감시해야할 사정기관은 정권 눈치를 보느라 기능이 마비되다시피 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을 자평했던 MB정권은 ‘도덕적으로 완벽히 무너진 정권’이라는 비난을 듣게 됐다. 친인척·측근 비리에 안일하게 대처한 청와대에 야당과 시민단체들, 국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처럼 MB의 대국민사과를 둘러싼 뒷말이 무성한 가운데 권력층의 실정과 이중잣대로 인해 대한민국이 ‘상식과 법, 정의가 무너지는 나라’라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빠르게 번지고 있다. 정치권의 ‘탈((脫)모럴’과 ‘유권무죄’ 상황 등 잇단 잡음이 불거지면서 대다수 국민들이 혼란을 느끼며 무기력증에 빠지고 있는 것. 계속되는 불황으로 ‘고개 숙인 가장’ ‘방황하는 청년층’ 등이 늘어나면서 ‘노력하고 발버둥쳐도 안된다’는 식의 상황극복을 포기한 패배의식이 팽배해져가고 있다. 또 대통령의 ‘언행불일치’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면서 정치권 목소리를 불신하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이 대통령의 대선 전략은 ‘노무현 반대로’였다. 노무현 정권의 경제실정으로 인해 국민들의 관심은 경제성장에 쏠려있었다. 이 대통령은 ‘준비된 경제 대통령’을 전면에 내걸며 ‘7·4·7(7% 성장, 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대국)’을 호언장담했다.
이 대통령은 성장 패러다임에 매몰된 나머지 주가 3000을 장담하기도 했다. 그는 후보시절 서울 여의도 대우증권 본사 영업부를 방문해 “실물경제를 한 사람으로 허황되고 정치적인 이야기는 안한다”고 전제한 뒤 “지도자를 신뢰하고 국민이 화합한다면 내년(2008년)에는 코스피지수 3000을 돌파할 것이고, 제대로만 경제가 된다면 임기 내에 5000까지 가는 게 정상이다.
정권이 바뀌면 주식하는 사람이 행복해질 것이다”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도 1년 뒤 코스피 지수는 발언당시 1895.05보다 770포인트 하락해 1000선을 겨우 유지했다. 임기 말인 지금 현재도 5000은커녕 3000 돌파도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증권사의 실적악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되면서 증권사는 ‘울상’이다. 야당은 “747비행기는 이륙도 하기 전에 고장났다”며 MB의 경제정책 실패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경제 위기는 이 대통령이 이 달 들어 경제 관련 회의를 5번이나 직접 주재했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2분기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반 토막이 나면서 경제폐색이 짙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미 추진되고 있는 대책들을 재차 독려한 수준의 대책만 제시 되는 등 난국을 타개할 묘수가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성장률 3%를 마지노선으로 지킨다는 생각이지만 전문가들은 파격적 규제완화 없이는 3%대 성장은 어려운 이야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성장률은 2%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시각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주재하며 “글로벌 수요 둔화, 내수심리 위축으로 경기회복세가 지연되고 있다”며 “하방(下方)위험이 예상보다 커진 만큼 3%대 성장을 위해 총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재정부는 9월 말 내년 예산안을 발표할 때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을 다시 수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경제 침체 골은 깊어져 간다
반면 물가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성장률을 물가상승률이 웃돌고 있는 형국이다. 성장률은 3.2%로 꺾였고 물가는 3.6%로 뛰었다. 이는 1980년 이후 역대 정부 중에서 물가와 성장률 역전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 물가정책에 가장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두환 정부는 물가상승률과 성장률이 각각 6.1%, 10%였고 노태우정부는 7.4%, 8.7%, 김영삼 정부는 5.0%, 7.4%였다. 또 김대중 정부는 각각 3.5%, 5.0%였고 노무현 정부는 2.9%, 4.3%였다. 이는 역대 정권에 비해 MB정권에서 서민들의 지갑은 얄팍해진데 비해 생활비 부담은 더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MB정권 들어 부동산 시장의 침체의 골이 갈수록 깊어져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는 것. 부동산 호황기 때 재건축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까지 불렸지만 ‘반값 아파트’ ‘깡통 아파트’도 속출하고 있다. MB정권은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지만 약효는 없었다. 현재 총부채상환비율(DTI)를 제외한 대부분의 규제를 풀었으나 수요가 심리적으로 위축돼 부동산 시장에 전혀 효과를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경제불황은 일본의 불황사태를 재연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선임연구위원의 ‘MB정부의 사회정책 평과와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 일자리 지표가 집권 직전인 2007년보다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이 대통령은 대선 당시 연간 7%의 고성장을 통해 5년간 60만개씩 총 300만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된서리를 맞으며 경제가 뒷걸음치며 ‘사실상 실업자’가 큰 폭으로 늘어 2009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400만 명을 넘어섰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실업률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7%까지 치솟았지만 2007년에는 3.2%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이후 3.7%(2010년)까지 올랐고 2011년(3.4%)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2007년보다 높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도 2007년보다 0.4%포인트, 여성 실업률(2010년)은 0.7%포인트나 증가했다.
가구 수에 대한 주택 수 비율을 나타내는 주택 보급률은 2005년 105.9%에서 지난해 114.2%로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자신이 소유한 집에 살고 있는 비율을 뜻하는 자가점유비율은 2005년 55.6%에서 2010년 54.2%로 오히려 줄었다. 김승권 연구위원은 “일자리 해결은 소득 보장과 직결되므로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에 복지의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업률과 맞물려 한국의 노동력도 무력해지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니트족(일할 의지가 없는 젊은 층) 프리터족(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젊은층) 등 소속감을 상실한 노동인구도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대책의 또 다른 문제점은 정부가 만드는 일자리가 거의 대부분 처우 수준이 열악한 임시직이라는 점도 이같은 문제를 양산시키고 있다. 취업자수 증가가 대부분 50대 이상에서 이뤄지고, 취업이 절실한 20~30대의 취업난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50대 고용률은 70%를 웃도는 반면, 청년층(15~29살) 고용률은 40% 초반에 머물러 있다.
높은 자살율 기록하는 나라
이는 한국의 자살률과도 상관관계를 갖는다. 우리나라 자살율은 OECD 국가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살률은 2001년 인구 10만 명 당 14.4명에서 2010년에는 31.2명으로 배 이상 늘어났다. 2010년 기준으로 매년 1만5566명, 하루에 4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의 경우 사망원인이 44.9%가 자살이었고 30대 33.9%, 10대 24.3%로 자살이 전체 사망원인의 3분의 1로 나타났다. 20대 청년층의 자살률 급증은 취업난·실업률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뉴욕타임즈는 온라인판 신문을 통해 “한국은 높은 이혼률과 직업적 스트레스, 공부 압박에 시달리는 학생, 남성 위주 문화에서 일자리 후 잦은 과음 등으로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는 나라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 MB정부의 경제고통지수가 2000년대 들어 세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카드대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역대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국민의 경제고통지수(물가상승률+실업률)가 2008년 7.9를 기록한데 이어 2011년에 다시 7.4까지 상승하는 등 국민들의 생활이 피폐해졌다는 것을 반증했다.
이 대통령은 성공한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경제 대통령을 자임했던 만큼 국민들의 기대가 남달랐지만 CEO식의 결과와 효율 중시의 국정 운영은 국민의 화를 불렀다. 임기 말에 접어든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18%를 기록해 취임 이후 처음으로 10%대로 떨어졌고 국민과는 소통이 되지 않는 ‘불통(不通) 대통령’으로 인식되는 오명을 안았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