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목표는 오직 하나, 글로벌입니다. 우리나라도 글로벌 신약개발을 이루어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기업이 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이제 신약개발에 올인해야 합니다.”
이는 여재천 사무국장이 우리나라 연구개발 중심의 혁신형 제약기업을 대표해 온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1986년 창립)에 올해로 24년째 몸담아 오면서 ‘혁신형 제약산업계의 육성과 지원’에 열정을 스스로 가슴에 새긴 미션(mission)이다. 미국과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20여년에 걸쳐 국내에서의 특허, 전임상, 기술수출, 임상, 국내신약을 거쳐 해외신약에 접근하는 등 전주기를 한번 겪으면서 ‘글로벌 신약개발’을 우리나라 제약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기로 하는 올인’이 아니라 ‘성공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는 올인’이라고 여 국장은 강조했다.
[일요서울]이 지난 16일 서울 당산동에 위치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사무실에서 여 국장을 만나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국가전략 기간산업으로의 육성을 통한 글로벌 시장진출 전략’에 대해 인터뷰 했다. 여 국장은 1989년부터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사무국장 겸 운영임원(상무이사)로 재직하며 대통령 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 국무총리실 보건의료발전특별위원회 약업발전 전문위원, 보건복지부 제약산업발전협의회 위원, 신약개발자금 심의위원,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위원, 지식경제부 전문평가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제약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신약개발을 기반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도모해야 하고, 그러자면 정부정책도 보다 분명하게 제약산업을 국가전략의 기간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여 국장은 특히 제약산업육성법의 제정과 시행에 따른 실질적인 혜택이 제약산업에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신약개발’을 분명한 국가의 전략방향으로 정립한 다음 △법과 제도 개선 △연구비 지원확대 △연구지원 시스템 개선 등 크게 3가지 측면에서 변화와 혁신을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세지원, 타산업과 대등하게 이뤄져야”
여 국장에 따르면 제약산업은 그동안 18~19조원에 달하는 국내 내수산업으로서 책임있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내야한다.
그러자면 정부의 세금감면 내지는 조세지원이 IT 반도체의 전자산업과 철강산업, 자동차와 조선산업과 같은 대등한 수준과 차원으로 격상돼야 한다. 그래야 ‘신약개발’이 국가기간 산업으로서의 당당한 위상을 정립할 수 있는 지금은 보다 전향적인 정부의 정책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여 국장의 요구이다. 즉, 특정한 분야에 한시적으로 혜택을 주던 일몰제식 세제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신약개발을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제약, 글로벌 신약개발이란 정책차원으로 격상해 제약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국장은 “국내 제약산업은 정부지원을 받는 타 산업과 견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고, 자격도 충분히 갖추었다”며 “정부는 제약산업이 국민의 생명과 보건에 관련된 의약품을 생산함과 동시에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역할을 신장시킬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신약개발, 우리도 할 수 있다”
여 국장에 따르면 연구비 경우 종전에는 정부가 종자돈(Seed Money) 형식으로 민간에 지원함으로써 민간투자를 유도했는데 앞으로는 ‘신약개발의 국가 기간 산업화’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위해 정부 지원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여 국장은 “정부지원의 확대 요구를 민간이 직접적인 투자를 하지 말자는 것으로 오해해선 결코 안된다”고 강조했다.
예들 들면 신약개발하는데 성공할 확률이 1/5000, 1/10,000이라는 말이 있다. 기간도 10~15년으로 길다고 한다. 하지만 여 국장은 “이 말은 예전에 우리나라가 신약개발을 하지 않을 때의 말이다”면서 “신약개발은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신약이라는 성공의 열매를 맺는 과학적인 확률게임이다”고 강조했다.
여 국장에 따르면 과학적인 연구와 실험을 통해서 그 확률을 좁혀갈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어려운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또, 연구비만 해도 그렇다. 3000억 원이다. 5000억 원이다고 보통 말한다. 어디는 1조 원이 든다고 한다. 연구비가 이처럼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 여 국장은 “1조원이다 하는 것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질환군을 넓혀서 다수의 환자에 적용하는 기회비용까지 다 포함시킨 결과로 부풀려진 것”이라며 “예컨대, 외부에서 라이센싱 아웃을 받아서 연구를 하게되면 비용은 상당히 줄어들고 효율성이 높아져 때로는 2000억 원으로도 신약개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 국장에 따르면 지금은 국내신약을 1000억 원에 한 기업도 있고, 어떤 한 기업은 해외임상시험에 년간 1000억 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또 다른 어떤 기업은 순이익의 70%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혁신형 제약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나라 제약기업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많은 자금이 들어가는 것이고, 약가문제 등으로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 만큼 지금은 정부의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는 것이 여 국장의 입장이다.
“민간 주도의 시스템으로 혁신하자”
또한 여 국장은 “신약개발은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필요하다면 ‘기업 대 기업’이 연구팀을 구성할 수도 있어야 한다. 기업이 연구를 잘 한다면 지금과 같이 정부가 주도하여 후보 내지는 선도물질까지는 교과부가 하고, 그다음 임상전까지는 지경부가 하고, 또 임상은 복지부가 맡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중복된 연구가 아닌 중첩된 연구도 필요하고, 기초성 연구도 이쪽 저쪽 모두 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그 정점에 기업이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여 국장은 “미래 전략적인 투자방향은 매우 불투명하게 설정돼 왔던 점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문제점이 바로 부처별로 비 연계성 사업이 추진되면서 △국가적인 의료수요가 고려되지 않은 신약연구개발 전략수립 △중복연구의 심화 △기초연구를 통한 파이프라인 구축 미약 △산학연간 연구비 출혈경쟁 △전주기 신약개발 과정의 중첩 미 허용으로 인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출구전략 부재 등을 지적했다.
여 국장은 “좀 더 진화된 시스템”을 주장했다. 기업이 판단을 해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그것이다. 즉, 지금까지 정부가 신약개발의 아이디어를 학이나 연구소를 중심으로 많이 반영했다면 이제부터는 기업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신약개발연구조합 같이 혁신형 그룹들이 포진돼 있는 단체의 의견과 선진국 벤치마킹, 나아가 선진국의 컨설턴트도 필요하다. 국내의 학이나 연구소의 이야기를 주로 청취하다보면 편협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와해성 기술로 정부 우선순위 바로 세우자”
여 국장은 “무엇보다도 정부의 우선순위가 바로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 국장에 따르면 질병에 대한 우선순위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나 생산성 제고를 위해 더 필요한 것인지에 기준을 세워야 한다. A 질병이 당장의 생명과 관련이 돼 있는 심각한 질병이니까 A질병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B질병이 마치 관절염과 같이 만성적인 경우 조기에 치료를 할 수 있다면 생산성을 제고할 수도 있기 때문에 A가 아닌 B를 선택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와해성 기술(Distruptive Technologies: Riding the Wave)은 와해성 혁신이라고도 하는 말로써 업계를 완전히 재편성하고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게 될 신제품이나 서비스를 말한다. 초기에 핵심 시장이 요구하는 성능 조건을 만족시킬 정도로 우수하지 않지만, 파괴적 혁신 기업들은 더욱 매력적인 수익 마진을 추구하면서 자체적인 존속적 개선 경로를 따라 공격적으로 고급 시장에 진출 한다. 이 같은 와해성 기술을 신약개발에 적용하면 현재의 질병·질환군, 환자의 수, R&D 능력, 보험재정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서 우리나라 신약개발의 최우선 분야가 어떤 분야이고, 어디에 집중지원을 할 것인지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 그래서 와해성 기술을 신약개발 분야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약가정책이야말로 R&D에 대한 인센티브다”며 여 국장은 “민간이 신약개발을 주도하는데서 조세지원이나 다른 어떤 인센티브들도 중요하지만 보험약가에 대한 인센티브가 우선순위”라며 이같이 말했다. 약가가 떨어지면 R&D투자가 안되고, 그렇게 되면 혁신적인 신약개발도 요원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R&D 예산, 신약개발 항목신설 해야”
여 국장에 따르면 제약산업의 연구개발비의 경우 2010년도 정부지원액(1,499억원)은 2010년도 한 해 동안 정부가 BT분야에 지원한 금액(2조 3천억원)의 6.4%에 불과한 규모로서, BT기술이 접목되는 시장의 80%가량이 의약품임을 감안한다면 신약개발에 대한 현행 지원규모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여 국장은 “정부 R&D 예산에 신약개발 항목을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담=서원호 취재국장> os@ilyoseoul.co.kr
서원호 기자 os054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