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검찰은 그동안 일었던 의혹의 실체를 제대로 밝히지 못해 헛다리만 짚었다는 비판을 받아왔고 심지어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들어야만 했다. 야당과 시민사회가 검찰개혁을 부르짖었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중앙수사부장, 대검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이른바 ‘빅4’는 그대로 유임하면서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국민들은 지금보다 더 강력한 정권 보호막을 펼칠 것이라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검찰의 설명을 일축했다. 야당은 이번 기회에 검찰개혁을 반드시 이뤄 더 이상의 ‘정치검찰’을 두고 보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검찰은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솔로몬저축은행과 보해저축은행 측으로부터 1억 원이 넘는 금품을 수수했다며 박 원내대표를 소환했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확실한 물증 없이 증언만으로 확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을 향해 ‘우선 불러놓고 보자’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이뿐만 아니라 검찰은 19일 오후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과 관련 관봉 5000만 원의 출처 의혹을 제기했던 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의 보좌관 오모씨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이유는 외환거래법 위반이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보좌관을 핑계 댄 저에 대한 압수수색이었다”며 “여러 의혹을 제기했더니 이 정권 하에 각종 탄압을 받고 있다”고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최시중의 대선자금 실토 법정 발언이 나온 직후에 허겁지겁 박지원 소환을 결정한 검찰의 의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국민들은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어제 대정부질의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봉 제공 사실을 폭로한 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의 보좌관 압수수색영장의 행간에 숨겨진 의미와 복선을 읽어내는 눈이 있다”며 “검찰이 하는 모든 일은 다 의미가 있고, 정치적 복선이 깔려있다”고 검찰을 비판했다.
민주통합당, 검찰개혁 끝까지 간다
민주통합당은 박 원내대표에 대한 수사와 이 의원 보좌관 오씨의 집을 압수수색한 것은 ‘보복성 수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만주통합당내 ‘정치검찰공작수사 대책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16일 대검찰청을 항의 방문했을 때 채동욱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현재로서는 박지원 원내대표에 대한 소환 수사계획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음에도 다음날 박 원내대표를 19일 소환하겠다고 한 것은 검찰이 비판을 잠시간 피해가려는 속셈으로 보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검찰의 박 원내대표 수사는 철저한 ‘기획수사’로 한명숙 전 총리 수사 때와 같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이석현 의원 보좌관의 집을 압수수색한 것은 ‘표적수사’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검찰이 이 의원을 압박하는 것은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밝힐 수 있는 실마리를 풀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 18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서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무마용으로 건네진 관봉 5000만 원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비자금”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의원의 발언 후 하루 만에 이 의원의 보좌관 오씨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이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민간인 불법사찰의 핵심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며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됐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동안 의혹에만 싸여있던 불법사찰 몸통의 실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민주통합당은 검찰 수뇌부의 의지든 아니면 외부의 지시이든 이 의원에 대한 압박은 ‘정치검찰’의 전형이라고 비판하며 결국 검찰개혁을 통해 권력과 밀착된 검찰의 구태를 개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해찬 대표는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이 2007년에 돈을 받아서 대선자금 용도로 사용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며 “필요한 데가 대선자금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수사를 안 하고 있다. 대선자금을 반드시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를 촉구했다.
결국 민주통합당은 현재 검찰의 움직임은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된 의혹의 실체에 접근하는 야당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고 ‘끝까지 간다’는 결심을 하고 있다.
중수부 폐지·공수처 신설 가능성 커져
정치권에서 검찰개혁의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시민사회 또한 마찬가지다. 시민사회는 검찰이 언제나 권력의 편에 섰기 때문에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의 해체와 함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수부는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권력형 비리와 대형 경제범죄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맡아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예상과는 달리 신통치 못했다.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웠다.
일각에서는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검찰이 고위공직자가 관계된 의혹을 쉽게 파헤치기 힘들며 또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철저한 검찰 내부 분위기로 인해 수뇌부의 뜻을 거스르기 또한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지금까지 터졌던 수많은 의혹들 중 국민의 체증을 뚫어줄 만한 수사결과를 내놓지 못한 것은 검찰 내부의 구조적 문제”라며 “사법권 독립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이와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는 검찰의 자가당착을 빨리 해소해야만 사법권 독립도 국민의 신뢰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들은 고위공직자의 비리에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였던 검찰의 모습에 ‘힘없는 자에게만 무서운 검찰’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이 아닌 공수처를 만들어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감시하고 찾아내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도 “하루라도 빨리 공수처 설립 논의를 본격화할 것을 촉구한다”며 “검찰 수사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 시비를 근본적으로 없애고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과 검찰,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 등 고위공직자를 수사 대상으로 하는 공수처 설치를 통해 독립적인 수사와 기소를 담당하게 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을 밝혀 공수처 설치를 적극 주장했다.
지난 2009년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중수부 수사를 받던 도중 서거하면서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중수부 폐지론과 공수처 신설론이 강하게 일었다. 하지만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하고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최근 여야 모두가 공수처 신설을 공감하면서 꺼져가던 논의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7일 고위 당정협의에서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원내대표는 “검찰이 제대로 엄정하게 적극적으로 수사에 힘을 써야 한다”며 “고위 공직자 관련 부정부패가 제대로 뿌리 뽑힐 수 있도록 믿음을 주는 조치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해 검찰을 압박하는 동시에 공수처 신설의 도화선을 당겼다.
이에 정성호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전제조건으로 ‘고위공직자 부정부패 문제에 대해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인 것에 대해 유감”이라면서도 “부디 이한구 원내대표의 공수처 설치 발언이 정두언 체포동의안 부결 직후 밝혔던 원내대표 사퇴 선언과 같은 허언이 아니길 바란다”고 밝혀 이 원내대표의 발언이 제대로 실현되기를 기대했다.
검찰, 여전히 보신(保身)에만 급급
검찰개혁에 대한 신호탄이 터졌지만 검찰은 여전히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측근을 주요 자리에 앉히는 구태를 보이고 있다.
검찰이 지난 13일 검사장급 고위간부 인사를 단행했지만 야당은 크게 반발했다. 야당은 이번 검찰 고위간부 인사는 정권 말기에 그동안 공이 있던 인물들에게 한자리씩 주는 인사라고 폄하했다.
사법연수원 19기 동기들 중에서 제일 먼저 검사장으로 승진한 김진모 서울고검 검사(46)는 권재진 현 법무부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당시 권 장관을 보좌하면서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런 김 검사를 승진시키는 ‘파격’을 보였다. 검찰 주변에서는 권 장관이 법무부 수장이 되면서 자신과 함께하며 여러 일을 했던 공을 인정해 승진자 명단에 포함시켰다고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유임된 이른바 ‘빅4’에 대한 소문도 무성하다.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중앙수사부장, 대검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을 일컫는 ‘빅4’는 막강한 권력을 가짐과 동시에 향후 검찰 최고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자리다.
정부는 집권 후반기 안정적인 국정을 수행하기 위한 인사라고 밝히고 있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각종 의혹의 실체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코드가 맞지 않는 인사를 주요 보직에 앉힐 경우 집권 말 레임덕 상황에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검찰 소식통은 “권재진 장관이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등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에서 믿을 만한 측근을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이는 권재진 장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필요한 조치가 아니겠느냐”며 반문했다.
레임덕이 심각한 상황에서 야당과 검찰의 벼랑 끝 승부는 이미 시작됐다. 여기에 대선에서 민심을 얻기 위해 여당도 종전과는 다른 모양새를 취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이 때문에 여당인 새누리당이 야당의 검찰개혁 요구를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것이냐에 따라 검찰개혁은 종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우선 여야가 어느 정도 교감하고 있는 공수처 신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검찰개혁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민들의 눈길은 이제 검찰개혁이 어느 선까지 이뤄질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