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반격 역시 매섭다. 제1야당의 원내 수장인 박지원 원내대표를 저축은행 사건과 관련 금품수수 혐의 등으로 공개 소환을 통보한데 이어 박 원내대표가 계속해서 이에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이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검찰은 급할 것이 없다는 자세다. 방탄 국회라는 오명과 함께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박 원내대표가 이를 마냥 거부할 수만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박지원을 건들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의 무죄판결 사건에 이어 검찰과 민주통합당의 완력싸움이 제2라운드를 맞고 있다.
지난 19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사에 적막감이 흘렀다. 솔로몬저축은행과 보해저축은행 등으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의혹과 관련,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의 소환이 예정돼 있었지만 이에 불응한 그는 끝내 검찰청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시각 박 원내대표는 당 고위정책회의를 주재하고, 이후 진행된 외교통일안보분야 대정부질문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참석했다.
‘벼르던’ 민주, 검찰과의 ‘전면전’ 선포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구속된 직후 언론을 통해 박지원 원내대표에 대한 검찰의 내사 진행 상황이 흘러 나왔고, 민주통합당은 이에 강하게 반발, 형님 사건의 대한 물타기라며 맹공을 폈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10일 의원워크숍에 참석한 자리에서 저축은행 사건과 관련 연일 박 원내대표가 거론되자 당 차원의 단호한 대처를 주문하며 “가만두지 않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족 수사는 물론 한명숙 전 총리와 서갑원 전 의원의 무죄판결에 이어 박 원내대표에 대한 금품수수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대선을 앞두고 제1야당을 압박하는 검찰의 모습을 마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이 대표가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다음날인 11일 민주통합당은 검찰개혁을 내세우며 ‘정치검찰공작수사 대책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아울러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신설하고, 검-경 수사권 독립 등 관련법 개정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의 정치 공작은 내가 대표로 있는 동안 분명히 단죄하겠다”며 전날 검찰에 대한 선전포고에 이어 공세수위를 높여 갔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박영선 의원도 이 대표에 힘을 보태며 검찰개혁을 강조했다. 박 의원은 지난 13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검찰 내 ‘범죄정보기획단’에서 야당 의원들을 사찰하고 있다. 회의 내용 등을 조사해 검찰 수뇌부에 매일매일 보고하고 있다”며 야당 의원에 대한 검찰의 사찰을 폭로했다.
아울러 박 원내대표의 소환과 관련해 “검찰이 내사를 진행하고 이를 특정 언론에 흘려 지속으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내곡동 사저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씨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언론을 통해 물타기를 했다”고 지적했다.
박 원내대표가 검찰 소환을 거부한 가운데 검찰은 오는 23일 오전 10시로 재소환을 통보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검찰이 영장을 가져올 경우 소환에 응하겠다”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현재 정기국회가 끝나는 다음달 3일을 전후로 또 다시 임시국회를 열어 박 원내대표에 대한 검찰 소환을 막을 계획이다. 아울러 권재진 법무부장관과 한상대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검토하는 등 적극적인 반격에 나설 방침이다.
검찰의 ‘박지원 소환’ 카드
박 원내대표를 소환하지 않을 것이라던 검찰은 당초의 태도를 바꾸고 민주통합당과의 전면전을 각오, 박 원내대표에 대한 출석을 통보했다.
검찰은 지난 17일 오후 6시께 팩스와 유선을 통해 박 원내대표의 변호인에게 소환 날짜(19일 오전 10시)를 알리고 이를 바로 언론에 공개했다. 전날 대검에 항의 방문한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박 원내대표에 대한 소환 계획이 없다”는 검찰 측의 말을 들고 다소 안도하는 모습이었지만 갑작스런 검찰의 소환 명령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단 하루 만에 수사팀의 기류가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제1야당의 원내 수장을 소환했다는 점에서 일단 박 원내대표에 대한 범죄혐의를 입증할 구체적 진술과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검찰 최고 수뇌부가 직접 소환을 지시했거나 외부 요인에 의해 검찰의 태도가 바뀐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박 원내대표 측에 소환을 통보하기 직전까지 일선 수사팀은 이를 전혀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소환 결정이 대검찰청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단장 최운식 부장검사)과의 의견조율 없이 갑자기 이뤄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에 대한 민주통합당의 공세 수위가 높아가자 이에 대한 반발로 검찰이 박 원내대표의 소환 계획을 앞당겼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더 이상 시기를 늦출 경우 민주통합당의 공세에 자칫 소환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민주통합당은 검찰의 박 원내대표 소환이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물타기라며 공세를 펴고 있다. 검찰의 소환통보가 있던 당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첫 공판이 진행됐고, 최 전 위원장은 이날 공판에서 ‘대선경선 자금으로 파이시티 측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진술, 검찰 측에서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박용진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오늘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의 대선자금 이야기가 나온 뒤 박 원내대표에 대한 소환통보가 이뤄졌음에 주목한다”며 “검찰은 더 이상의 정치 공작수사를 하지 말라”고 꼬집었다.
한명숙 무죄 이후 박지원도 ‘무혐의’ 자신
민주통합당은 검찰의 박 원내대표 소환을 과거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무리한 기소와 대법원 무죄판결을 상기하며 적극 반격에 나서고 있다. 일종의 학습효과를 통해 박 원내대표에 대한 사건도 자신 있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이춘석 의원은 지난 19일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한 전 총리는 검찰이 체포영장을 집행하고 기소까지 했지만 결국 무죄로 판결났다”며 “검찰이 바라는 건 진실이 아니라 야당 원내대표가 검찰에 출두하는 사진, 그 사진 한 장이 필요해서 ‘한명숙 무죄 시즌2’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원식 원내대변인도 같은 날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박 원내대표가 소환되면 죄와 관계없이 소환되는 그 그림 하나만 가지고도 상황 자체가 완전히 반전되는 것을 검찰이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사건을 통해 박지원 원내대표와 검찰의 질긴 악연이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2003년 박지원 원내대표는 현대그룹으로부터 비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고, 이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이와는 별건으로 금호그룹과 SK그룹에서 1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또 다시 박 원내대표를 기소했고, 결국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사면 복권된 박 원내대표는 지난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검찰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국회 법사위원으로 활동하던 2009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스폰서와 동반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을 밝혀내 천 후보자를 낙마시켰고, 야당의 원내대표로서 끊임없이 검찰개혁을 주장해왔다.
사건 결과에 따라 박지원 원내대표와 검찰 중 하나는 치명적인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박 원내대표의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고, 민주통합당의 입장에선 대선을 앞두고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현 정부 들어 야당의 거물 정치인에 대한 수사에서 번번이 헛물을 켠 검찰이 또 한 번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받고 국민적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야당의 검찰개혁이 명분을 얻으면서 야권의 검찰개혁도 한 층 더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