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두언 체포동의안 부결’ 파문이 ‘박근혜 사당화’ 논란으로 옮겨 붙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사당화’에 적극적으로 맞서고 있는 이들은 정두언 의원을 필두로 남경필, 김용태 의원 등이다. 이들은 이미 지난해 말 ‘박근혜 사당화’를 우려하며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김성식, 정태근 전 의원과 연락을 취하며 향후 행보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2008년 이상득 전 의원 등의 권력 사유화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왔다는 점에서 박근혜 전 위원장에 맞서 제2의 선상반란을 꾀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두언 체포동의안 부결 파문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데는 새누리당 ‘쇄신파’, 그들 중 특히 남경필 의원과 김용태 의원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남경필 의원은 정 의원을 위해 자유발언에 나서 “언론 보도만으로 한 사람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건 잘못이니 기권해 달라”고 호소했다. 남 의원은 “사흘간 고민한 끝에 나섰다”며 “대선을 위해 한 사람을 정치·사회적으로 매장하자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김용태 의원은 지도부가 본회의 의사진행발언자를 남 의원 한 명으로 제한하자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를 쫓아가 발언기회를 달라고 졸라 발언권을 따냈다. 김 의원은 “여러분 상당수가 검찰의 선거법 수사를 받고 있는데, 체포동의안을 안 보내리란 보장이 있느냐. 국회에 체포동의안을 보내면 무조건 통과시키는 관례를 만들 거냐”며 부결에 힘을 보태줄 것을 당부했다.
이후 표결에서 정두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찬성 74 대 반대 156으로 부결됐고, ‘국회의원의 잘못된 특권 의식’, ‘새누리당의 동료 감싸기’ 등 부정적인 여론에 역풍을 맞았다.
문제는 ‘정두언 파문’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당 지도부나 대통령 후보가 아닌 박근혜 전 위원장이 ‘지침’을 내리고 당 지도부가 ‘박근혜의 뜻’을 그대로 따라 결론을 내렸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박근혜 사당화’ 논란이 재점화된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이 지난 13일 ‘정두언 파문’ 수습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의원총회 직전 기자들과 만나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는 마음”이라고 직접 대국민사과를 했고 정두언 의원에 대해 “정두언 의원이 직접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결자해지를 촉구했다.
이후 당 지도부는 황우여 대표의 ‘대국민사과’와 정두언 의원의 ‘결자해지’를 지켜본 후 출당을 포함한 향후 대책을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체포동의안 부결에 앞장섰던 김용태 의원은 황우여 대표의 대국민사과 기자회견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박 전 위원장의 발언을 가리켜 “오늘 아침 의총 즈음해서 특정 경선 후보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의총 말미에 당 대표가 그 가이드라인에 준하는 결과를 갖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며 “이 당이 특정 정파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고 격분했다.
김 의원이 ‘박근혜 사당화’를 강력히 비판한 이후 주말 동안에도 김문수 경기도지사, 임태희 전 대통령 실장, 안상수 전 인천시장 등 비박진영 대선주자들과 함께 쇄신파 남경필 의원도 가세하며 논란은 더욱 더 확산됐다.
남경필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선 후보의 말에 영향을 받고 (당 차원의) 결정은 잘 안되다 보니 정상적인 당 의사결정구조가 아니다"라고 이른바 ‘박심(朴心)’에 의한 당 운영을 비판했다.
남 의원은 “당 지도부의 의사결정이나 당 운영이 의원들의 전체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고 토론을 거치는 게 아니라 박 전 위원장의 의견에 많이 영향을 받는다는 판단이 내려지니까 사당화라는 표현, 당내 민주화가 실종됐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문의 당사자인 정두언 의원은 “이번 일의 문제점(체포동의안의 절차적 하자)을 인식해 저의 입장에 함께해 준 선배, 동료의원들도 더 이상 곤경에 빠져 어려움을 겪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라며 “앞으로도 제가 우리 당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더 심각하게 고민하겠다”고만 했다.
‘55인 파동’ 주역들
‘정두언 부결 파문’으로 불거진 ‘박근혜 사당화’ 논란을 일으킨 이들은 약 4년 전에는 ‘상왕’으로 불리던 이상득 전 의원의 ‘권력 사유화’를 강력 비판한 바 있다.
18대 총선을 20일 앞둔 2008년 3월 21일, 남경필 의원은 한나라당 당사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이날 “총선 승리와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이상득 국회부의장(당시)의 불출마를 촉구한다. 이 부의장이 18대 국회에 들어올 경우 당내 모든 사안을 이 부의장과 상의해야 한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그의 말은 곧 대통령의 말로 해석돼 거수기 정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남 의원이 테이프를 끊고 이틀 뒤인 3월 23일엔 정두언 의원의 주도로 총선 공천자 55인이 이상득 부의장의 불출마를 요구한다.
이것이 소위 ‘55인 파동’이다. 거사는 실패했지만 이들은 이후에도 이상득 전 의원의 ‘사당화’와 ‘권력 사유화’를 비판하며 당 쇄신, 국정 쇄신을 요구했었다. 이를 계기로 18대 국회에선 남경필·정두언 두 사람을 중심으로 쇄신파가 형성됐다.
‘친이 7인 성명’도 주도
‘55인 파동’이 있은 지 1년 후인 2009년 6월2일, 국회 기자회견장 단상에 차명진·임해규·정태근·김용태·권택기·조문환 의원 등이 섰고, 정두언 의원 이름이 들어있는 성명서를 김용태 의원이 낭독했다.
이른바 ‘7인 성명’이다. 이들은 “작금의 민심이반은 단지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전부가 아니다. 국민은 힘들고 어려운데 한나라당과 정부 그리고 대통령은 여전히 혼자 앞장섰다. 지금도 ‘나를 따르라’라고만 외친다. 바로 그 독선과 오만에 대한 심판이다. 국민의 뜻에 부합하게 국정 기조와 국정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태근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기조 변화와 정부와 청와대 참모진의 대대적인 인적쇄신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부연하여 주변 인사 문제를 손보라고 이 대통령을 압박했다.
정권 출범 이후 계속됐던 ‘만사형통’(萬事兄通·모든 일은 형을 통해야 한다)’ 논란을 문제 삼은 거였다. 정두언-정태근-김용태 의원이 참여한 이 회견 뒤 이상득 의원은 정치 2선 후퇴를 선언했다.
“이제는 박근혜다”
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이번 ‘정두언 파문’이 일어나기 전까지 박근혜 전 위원장과 밀월 관계를 유지했다.
이들이 친박계와 본격적으로 손을 잡은 것은 2011년 5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 때였다.
친이(친이명박)계에 반기를 든 쇄신파는 친박계의 지원에 힘입어 황우여 원내대표 체제를 탄생시켰다. 친박계-쇄신파가 신주류로 부상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들의 밀월 관계는 이후 지난 비대위 체제에서 드러난 ‘박근혜 사당화’ 논란으로 김성식-정태근 전 의원이 탈당하면서 삐걱거리더니 새누리당이 총선 공천을 통해 완벽하게 ‘박근혜당’으로 탈바꿈하면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총선 이후 박 전 위원장의 독선적인 당 운영이 계속되자 정두언 의원은 ‘1인 체제’의 당으로 정권재창출을 꿈꾸기는 힘들다는 주장을 계속 펼쳤고, 김성식 전 의원 역시 “박근혜의 사전에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없다”고 맹비난했다.
‘정두언 부결 파문’ 이후 내뱉은 박 전 위원장의 발언은 쇄신파들로 하여금 비박 전선을 형성케 하는 기폭제가 됐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전 위원장과 쇄신파는 애초부터 서로의 이해관계에 의해 결합한 상황인 만큼 언제든 관계가 깨질 수 있는 여지가 존재했다”면서 “당의 80% 이상을 장악한 친박계에 맞서 당장 맞설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형태로든 박 전 위원장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쇄신파, 잇단 회동
쇄신파가 밀월 관계를 먼저 깨뜨린 박 전 위원장에게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쇄신파 한 의원은 지난 17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너서클에 들지 못한 친박계 의원들조차도 박근혜 전 위원장의 비민주적 당 운영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면서 “쇄신파가 경선과정에서 어느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냥 이대로 박 전 위원장의 독단을 모른척하며 대선까지 끌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더해 이들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재오-정몽준 의원 등과 함께 비박 전선을 형성할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관측도 있다. 또한, 비록 탈당으로 인해 당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18대 국회에서 새누리당내 쇄신파의 한 흐름을 만들어왔던 김성식-정태근 전 의원 등과 공조를 통해 보수 세력 내 거대한 반박근혜 전선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당 관계자는 “쇄신파 의원들이 정두언 의원 부결 사태 이후 함께 모여 향후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안다”면서 “김성식-정태근 의원과도 연락을 취해 힘을 모아줄 것을 부탁했다는 말도 들었다”고 전했다.
친박 “탈당 막아라”
쇄신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당 지도부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서둘러 진압에 나섰다.
친박 핵심인 이정현 최고위원은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정 의원이 의혹을 다 해명하고 검찰수사를 제대로 받아서 (잘못이) 없다면 굳이 탈당할 이유는 없다. 당의 소중한 의원을 왜 쫓아내느냐”고 반문했다.
이 최고위원은 ‘박근혜 전 위원장이 결자해지를 촉구한 것이 자진탈당을 압박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도 “박 전 위원장은 ‘탈당’이라는 용어를 쓴 적도 없고 그런 뉘앙스를 풍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당 관계자는 “쇄신파의 좌장격인 정두언 의원에 대해 당 지도부가 계속해서 탈당을 요구하는 것은 박 전 위원장의 대선가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화학적 결합까지는 아니더라도 쇄신파와의 공조를 이어나가야만이 대선 승리를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