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 문제가 된 CD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의 경우 대외신인도가 급격히 추락하고 있어 향후 CD금리가 조작으로 판명 나거나 논란 끝에 폐기될 경우 천문학적 금액의 국제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돼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년 이자율 스와프(IRS)는 공정위가 CD금리 담합에 대한 현장 조사가 시작되자 지난 10일 장중 한때 연 2.62%까지 0.24%포인트 급락했다가 2.75%에 마감했다. 이처럼 급락한 것은 그동안 CD금리가 하락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변동금리를 받고 고정금리를 지급한 투자자들이 CD금리 조작 논란에 손절매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자율 스와프란 두 거래상대방이 일정한 원금에 대한 고정금리 이자와 변동금리이자를 서로 교환하는 계약이다. 원화 이자율 스와프 사장의 경우 대체로 CD금리를 변동금리로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CD금리를 기초로 한 파생상품은 모두 4587조 원에 달하며 이중 90% 가량이 CD를 기초 자산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IRS 4332조 원, 이자율 선도 5조1000억 원, 이자율 옵션 250조3000억 원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 CD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한 구조화 채권인 변동금리부사채(FRN)가 2조3000억 원, 파생상품연계 증권(DLS)가 6조8000억 원 가량이다.
천문학적 국제 법률분쟁 가능성…금융권 ‘좌불안석’
CD금리가 조작으로 결론이 나거나 폐기될 경우 CD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의 청산이나 조기 상환이 잇따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날 금투협 관계자는 “IRS나 구조화 채권(FRN) 등은 보통 평균 만기가 10년이나 20년짜리도 있다”면서 “만약 CD금리가 조작으로 판명되거나, 조작논란으로 폐기된다면 모든 물량을 재계약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 IRS의 경우 3개월에 한 차례 결제가 이뤄지지만 선도계약이나 옵션계약은 매일 가격이 바뀌게 돼있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는 CD금리가 하루만 고시가 안 돼도 결제가 이뤄지지 않아 국내 금융기관 및 홍콩, 싱가포르 등 외국 금융기관에 일대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FRN이나 DLS의 경우 기초자산인 CD금리가 없어지면 대체가격을 결정하거나 청산절차를 밟게 돼 있다. 문제는 일부 상품의 경우 기초자산이 바뀌는 경우 어떻게 할지 규정되지 않아 결국 천문학적인 액수의 국제법률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돼 금융권이 좌불안석이다.
금투협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한국 파생 상품이나 FRN에 대한 대외 신인도는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한국 금융시장 인프라에 대한 믿음도 추락할 것”이라며 “CD금리가 담합이나 조작으로 결론나면 모든 물량을 재계약해야 하나, 이 과정에서 청산할 가능성이 크고, 사안에 따라서는 국제적인 법적 소송도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관계자들은 CD금리 폐기 우려는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CD금리 관련 파생상품 시장 규모가 지난 3월 말 현재 4500조 원이 넘어서는 상황에서 당장 이를 대체할 만한 금리를 만들어 낼 수 없다며 CD금리 폐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지적했다.
또 파생상품에서 CD금리는 그 수준만을 참고할 뿐 별도의 스프레드(가산금리)를 더해 계산하기 때문에 조작으로 결론이 나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여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눈치다.
하지만 금융소비자연맹은 공정위 판결이전에 곧바로 단체 소송에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연행 금소연 상임부회장은 20일 “당초 공정위 조사결과가 나온 뒤에 소송을 추진할 방침이었으나, 곧바로 소송을 진행하기로 방침을 바꿨다”면서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위해서라도 소송을 최대한 빨리 진행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공정위 조사결과 담합사실이 드러나더라도 과징금만 부과될 뿐 금융사들이 금융소비자에게서 취한 조 단위의 피해에 대한 실질적인 구제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선제적 조취를 취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3월 말 기준 국내 은행 총 원화대출 1080조 원 가운데 CD금리에 연동된 대출은 324조 원(30.0%)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시중금리가 내려가는 데도 불구하고 대출금리는 움직이지 않자 최근 3개월 동안만 해도 연 3.45%로 고정돼 있는 CD금리가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금융권에 따르면 CD금리는 시장의 금리 인하 추세를 반영하지 못한 채 ‘식물 금리’로 전락한지 오래다. 그사이 금융당국은 적시 대웅을 하지 못해 결국 ‘서민이 낸 이자로 금융회사 배만 불려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CD금리 산출 기준이 되는 ‘시장성 CD’ 발행은 2010년 이후 급감해 2009년 말 13조6000억 원에서 지난 6월 말 현재 2조4000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금융당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회사의 건전성 규제 강화를 위해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금 비율) 산정 시 CD발행액을 제외하면서 CD발행이 줄어들 것은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금융당국은 관련 대책을 내놓지 못했고 뒤늦게 CD금리를 대신할 대안 지표 마련에 나서겠다며 부랴부랴 대책회의를 소집해 ‘뒷북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시장금리 움직임과 다른 CD금리가 꿈적하지 않는다면 담함 여부와 상관없이 금융회사들이 이득을 보개 된다”면서 “금융당국이 진작 이로 인한 소비자 피해는 없는지 등을 면밀히 살폈으면 사전에 인지하지도 못한 채 공정위에 안방을 내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뿐만 아니라 은행들이 일부러 CD를 발행하지 않는 방법으로 CD금리를 ‘식물금리’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은행들은 단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주로 채권(은행채)과 CD를 발행하는데 2010년 하반기부터 CD는 거의 발행하지 않았다. 운행들은 “CD는 유동성이 많지 않아 조달 금리가 높으니 발행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하지만 실제 채권 발행 물량이 많을 때는 채권금리가 CD금리를 넘어서기도 했다.
지난해 8월과 올해 1월의 경우 채권금리가 높았지만 이때도 은행들은 CD 대신 채권만 발행했던 것.
이와 함께 은행들이 계열 증권사가 담함에 가담할 유인이 있다는 게 공정위의 시각이다. CD 금리에 기반한 가계 대출이 많은 은행은 CD금리를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하면 이득이 되기 때문에 계열 증권사가 분위기를 잡고 다른 증권사를 끌어들여 CD금리를 실제보다 높게 신고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CD금리가 비정상적으로 0.2%포인트 높게 유지됐다면 은행들이 1년 동안 총 6200억 원 정도 추가 이익을 볼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CD금리로 대출받은 가계가 3320억 원, 기업은 2880억 원 손해를 본 셈이다.
공교롭게 공정위가 강도 높은 조사를 시작하자 지난 4월 이후 3개월간 꿈쩍 않던 CD금리는 지난 17일 이후 사흘연속 매일 0.01%포인트씩 떨어져 19일 91물 CD금리는 연 3.22%로 장을 마쳤다.
금융당국, 기 싸움에 화 키워…‘사후약방문’ 대책
공정위가 조사에 나설 만큼 비정상적인 상황임에도 감독당국인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한국은행이 뒷짐만 지고 있었던 점에서 비난이 일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 CD금리를 대체할 대안금리를 찾겠다며 은행들과 민관 합동 테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정책적인 사안’이라며 제동을 걸었고 한은까지 가세해 TF가 구성됐지만 각자에게 유리한 방식만 고집해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은행들 역시 새 방식이 도입돼 금리가 낮아지면 손해라며 소극적 태도를 보여 결국 중단됐다.
그 이후 6개월간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다가 CD금리 담합의혹이 제기되자 금융당국은 다시 TF를 구성해 논의에 나서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
지난 19일 회의에서는 CD금리를 대체한 단기지표금리를 마련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고승범 금융위 금융정책 국장은 “단기지표금리 개선문제는 수많은 이해관계자와 기존 상품의 잔액 등을 그려할 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이번 TF에서는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검토된 과제를 논의해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의 CD발행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은행들이 긍정적으로 반응을 보이면 일정 부분 의무발행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늦장대처에 대해 일각에서는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높은 CD금리를 방치해 대출 문턱을 높인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1분기 가계 부채가 3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인 것은 다른 금리가 떨어지는데도 대출 기준 금리인 CD금리가 떨어지지 않은 덕을 봤다는 것.
그러나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계 부채가 줄어든 것은 정부가 내 놓은 각종 대책이 효과를 거둔 것이지, CD금리가 높았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한편,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CD금리 담합과 관련 담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공정위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사실 금융당국은 이번 CD금리 담합을 조사한 공정위로부터 ‘한 방’ 제대로 먹었다는 얘기가 금융권에서 나돌고 있을 정도다.
김 금융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에서 “우리나라는 금리가 자율화돼 있기 때문에 금융회사들이 자유롭게 가산금리를 정할 수 있어 특별히 시장 지표를 조작해서 얻을 이익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금융권을 두둔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금융권에서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가 확인된 바 없다”면서 섣불리 특정회사에 대한 의혹을 논하면 안 된다“고 거들었다.
이 같은 금융당국의 안이한 대응자세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공세가 뜨거워질 전망이다.
이에 관해 민주통합당 정성호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저축은행 게이트에 이어 CD 금리 담합의혹까지 이명박 정권의 금융감독기능이 총체적인 무능과 부실로 드러나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CD금리를 대체할 대안금리를 만들겠다고 말하던 금융당국의 늦장대응에 따른 책임은 없는지, 금융 감독업무 전반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정 대변인은 또 “공정위 조사결과에 따라 검찰의 강력한 수사가 뒤따라야 한다”며 “검찰은 영국의 리보금리 조작사건을 연구사례로 삼아 금융사의 모럴헤저드는 물론 감독기관의 직무유기 등 협의를 철저히 규명하고 관련자들을 엄정히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당 민병두 의원도 “최근 은행채 3년물 금리는 3.80%에서 3.24%까지 내렸는데 CD 금리는 3.54%에서 몇 달째 변하지 않고 있다. 금리의 시장원리를 감안할 때 선뜻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라며 “검찰은 영국의 리보금리 조작사건을 연구사례로 삼아 금융사의 모럴해저드는 물론 감독기관의 직무유기 등의 혐의를 규명하고 관련자들을 엄정히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노회찬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CD금리가 0.5%포인트만 떨어져도 가계는 약 1조4000억 원의 이자부담을 줄일 수 있는데 지난 10개월 동안 CD금리는 변동이 없었다”면서 “CD금리가 다른 금리와 같이 하락했다면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이 크게 줄어들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국민들이 수조원의 부당한 대출이자를 부담하고 있는데도 이를 알면서도 방치한 금융감독 당국에 대한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며 “이를 당론에 반영시켜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국정조사 추진 의지를 드러냈다.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