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먹으려다 목에 걸린 ‘뜨거운 감자’
공짜로 먹으려다 목에 걸린 ‘뜨거운 감자’
  • 이규성 
  • 입력 2005-08-30 09:00
  • 승인 2005.08.3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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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모일간지에 ‘양평TPC골프장 회원에 가입했거나 가입하려는 분들께 알림’이라는 이색 광고가 떴다. 광고 내용의 골자는 이렇다. ‘대지개발이 양평TPC골프장의 회원을 모집하는 행위가 불법’이며 따라서 ‘회원가입으로 인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성 광고였다. 사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양평골프장은 썬앤문그룹의 소유였고 계열사인 대지개발이 회원을 모집해왔다. 하지만 시내산개발이 골프장사업계획승인권을 놓고 법정소송에 들어갔고 지난해 1차로 법원은 대지개발의 손을 들어줬으나 이번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승소판결을 낸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지개발의 골프장 회원 모집은 불법인 셈이 됐다. 얼핏 보면 골프장개발의 이권을 놓고 벌이는 ‘그렇고 그런’ 다툼정도로 비쳐질 수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무려 10년간의 긴 세월 동안 9개 기업이 직·간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매우 복잡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의 중심에는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지난 1996년. 출판업체인 계몽사는 계열사인 영아트개발을 통해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대평리 112번지 일대를 인수하고 27홀 규모의 골프장 개발을 시작한다. 인수대금 및 개발자금은 골프장 부지를 담보로 동원파이낸스(현 한국투자은행)로부터 모두 259억원을 빌리게 된다. 그러나 1년 뒤 영아트개발이 부도가 나면서 골프장 개발이 힘들어졌고, 대출금 회수가 힘들어진다. 대출금을 떼이게 된 동원파이낸스는 지난 1999년 경매를 거쳐 시내산개발에 195억원에 낙찰을 결정한다. 195억원은 동원파이낸스의 입장에선 이자는 제쳐두고서라도 대출원금(259억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당시 시내산개발은 계약금인 19억5,000만원을 납입했으나 나머지 경락잔금인 175억원은 납부기일을 넘기고도 마련하지 못한다. 경락잔금을 받지 못한 동원파이낸스는 재경매를 추진했고 시내산개발은 다급해진 마음에 ‘재경매 기일 연기와 잔금 대출’을 요구한다.이에 동원파이낸스는 시내산개발이 보유하고 있던 골프장 사업승인서와 경영권 포기각서를 받고서야 12월 28일로 재경매를 연기해줬고 경락잔금에 대한 이자 등 제반비용 35억원을 납입하면 잔금 175억원도 대출해줄 수 있음을 시내산개발과 약속한다.문제는 35억원의 현금을 도저히 융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던 시내산개발은 차라리 골프장 매각을 결심한다. 이때 등장한 이가 문병욱 썬앤문 그룹 회장이다. 문 회장은 정 대표에게 460억원에 골프장을 사들이기로 합의하고 재경매 날짜의 하루 전인 12월 27일에 계약금 46억원을 납부할 것을 약속한다. 시내산개발로서는 문 회장은 구세주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경매 하루전 문회장 골프장 계약 없었던 일로

그러나 어쩐 일인지 계약금을 주기로 한 12월 27일, 문 회장은 ‘시내산개발의 대표이사인 정운기씨가 자리에 없다’는 어설픈 이유를 들어 계약금 지불을 거절해버린다. 계약금을 받지 못한 정 대표는 다음날인 마감일까지 돈을 구하지 못했고 동원파이낸스에 골프장에 대한 모든 권리를 자동으로 넘기는 꼴이 됐다. 반면 문 회장은 이 날 동원파이낸스의 소유가 된 골프장을 시내산개발과 합의한 460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25억원을 주고 인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문 회장은 235억원을 절약했고 동원파이낸스는 계약금 19억5,000만원과 썬앤문의 응찰금액 225억원을 합쳐 244억5,000만원을 받아 대출원금인 259억원에 육박하는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시내산개발은 문 회장과 동원파이낸스측이 서로 야합을 통해 골프장을 빼앗았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때부터 법정다툼은 시작됐고 결국 두 번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승소판결을 얻어낸 것이다. 물론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아직 남아 있어 시내산개발이 사업권을 다시 되찾을지 미지수다. 여기서 몇 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자본여력도 없이 수백억이 드는 골프장 개발에 나선 시내산개발의 실체는 무엇이고 ▶시내산개발과 함께 데이콤까지 나서서 대지개발에 2차례에 걸쳐 법정다툼을 벌이는 속내는 ▶동원파이낸스가 설립한 대지개발이 현재는 썬앤문그룹의 소유가 된 사연은 ▶시내산개발의 소송 건을 제외하고도 문병욱 회장과 썬앤문그룹이 끊임없는 소송에 휘말려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사실 이번 법정공방의 발단은 시내산개발이 자금여력 없이 ‘덥석’ 골프장을 물었다는 데에 있다. 왜일까. 당시 시내산개발의 대표는 정운기씨였다. 정 대표는 영아트개발이 부도가 난 98년, 조익성 데이콤 전무에게 ‘부도난 골프장을 인수한 뒤 되팔아 이익금을 나눠 갖자’며 접근한다. 조씨는 은행에 예치된 데이콤의 공금을 담보로 신한은행과 한빛은행을 상대로 1년여 동안 총 590억원을 사기 대출을 받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조성된 불법자금을 통해 양평골프장 인수에 나섰고 골프장 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런 불법대출이 꼬리가 잡힌 것은 시내산개발과 문 회장간의 골프장 인수 건이 깨지고 시내산개발이 부도가 나버리면서다. 정씨와 조씨가 끝까지 골프장개발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데에는 문 회장이 골프장을 인수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도위기에 몰렸던 1999년 12월19일에도 당시 데이콤 대표이사의 당좌인감 등을 이용하여 추가로 86억원의 위조약속어음을 발행한 뒤 할인하여 융통자금을 쓸 정도였다. 같은 달 27일 문 회장으로부터 계약금을 받아 동원파이낸스에 건네주면 골프장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회장 지난 2년간 7건의 소송에 휘말려

양평골프장의 운영법인인 대지개발을 상대로 데이콤이 채권자 취소소송 및 손해배상소송을 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불법대출의 전모가 드러난 2001년 신한은행은 데이콤을 상대로 약속어음 86억원에 대한 지급청구소송을 냈고 데이콤은 50억7,0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던 것이다. 결국 50억7,000여만원에 대한 손해배상을 받고 싶은 것이 데이콤의 속내였던 것이다. 대지개발의 실체에 대해서도 ‘설왕설래’ 말들이 많다. 원래 대지개발은 동원파이낸스가 양평골프장 인수를 위해 설립한 법인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대지개발의 모든 지분은 문 회장 일가에 전격적으로 넘어간다. 공교롭게도 동원파이낸스와 골프장 인수를 계약한 바로 다음 달인 2000년 1월이다. 99년 12월, 문 회장과 동원파이낸스 사이에 모종의 계약을 한다. 계약서엔 “문 회장이 양평골프장 재입찰에 225억원으로 응찰할 경우 대지개발 주식의 전액을 문 회장측에 양도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동원파이낸스는 어떻게 하든 문 회장이 재입찰에 나서기를 원했기 때문에 대지개발의 주식은 일종의 당근과도 같았던 것이다.

현재 대지개발은 문 회장의 동생인 문병근씨가 대표로 있지만 문 회장이 지분 90%를 갖고 있어 실제론 문 회장 개인 소유의 회사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문 회장은 크고 작은 송사에 휘말려 왔다. 지난해와 올해 만해도 감사보고서에 언급된 소송 사건만해도 데이콤, 시내산개발, S씨, 영아트개발, 계몽사, 투어렉스, 이천시장으로부터 총7건의 소송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썬앤문그룹의 법무팀 한 관계자는 “골프장을 개발한다고 하니까 여기저기서 이권을 노리고 소송을 걸어왔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이 관계자는 시내산개발의 소송 건에 대해서도 시내산개발의 현 대표인 송모씨는 깃털에 불과하고 실제론 박모 전 영아트개발 이사가 몸뚱이라고 주장한다. 박씨는 영아트개발이 부도가 나자 자금여력도 없는 시내산개발을 앞세워 골프장을 다시 찾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지금 소송을 벌이는 이유도 골프장을 되찾기보다는 합의를 통해 보상금을 받으려는 속셈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재심판사와 선후배관계를 맺고 있는 대표변호사를 거액을 주고 채용하여 소송을 진행해 승소판결을 받아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결국 양평골프장의 소송전모는 썬앤문그룹, 동원파이낸스 (현 한국저축은행), 대지개발, 시내산개발, 영아트개발, 데이콤 등이 각자의 이권이 첨예하게 서로 얽혀있는 판국이란 게 주변의 시각이다. 썬앤문그룹은 동원파이낸스와 계약을 통해 시내산개발이 제시한 금액보다 저렴하게 골프장을 인수하게 됐고, 동원파이낸스는 대지개발의 지분을 내주기는 했지만 역시 좀더 높은 가격으로 골프장을 팔 수 있었고, 불법대출을 통해 골프장 인수 및 개발을 했던 시내산개발은 어떻게 하든 골프장 사업권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줄 소송을 시작한 것이다. 이 와중에 약 50억원의 피해를 입은 데이콤도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규성  bob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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