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를 막론하고 19대 국회 개원 초기부터 민생법안을 발의하고 있지만 국회가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 국민들은 언제쯤 법안이 통과될지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대학생들은 반값등록금을 요구하고 있고 노동계는 최저임금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또한 영유아를 둔 부모들은 정부의 무상보육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가 예산이 바닥났다는 지자체 발표에 대선을 의식한 포퓰리즘 정책이었다며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서민들은 하우스 푸어로 전락했으며 골목상권은 막다른 골목까지 이르렀다.“국회의원들은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겠다”는 국민들의 푸념 섞인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6월 물가가 지난해 대비 2.2% 올랐다고 밝혔다. 4개월째 2% 수준의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명목임금상승률은 월평균 6.85%로 지난해 월평균 1.18%를 크게 웃돈다. 실질임금상승률도 4월까지 평균 3.83%를 기록해 물가가 상승폭보다 컸다. 수치상으로는 임금이 올라 서민들의 삶이 조금은 나아졌다. 하지만 이를 체감하기에는 아직까지 서민들의 주머니는 여전히 가볍다.
특히 대학생 자녀들을 둔 부모들은 이제 막 시작한 여름방학이 끝나지 않기를 벌써부터 바라고 있다. 방학이 끝나면 등록금을 내야 해 가계에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반값등록금 화두 올해도 계속
민주통합당은 지난 5월 30일 1호 법안으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안 등 19개 민생 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 법안은 대학에 대한 정부 재정 지원 규모를 내국세 수입의 8.4%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등록금산정위원회를 설치해 합리적 수준의 등록금 표준액을 정하자는 내용의 법안도 제출했다.
민주통합당은 지난 10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반값등록금특별위원회 발족식 및 실천결의대회를 열고 반값등록금 실현의 뜻을 다시 한번 모았다. 이 자리에서 우상호 반값등록금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적어도 내년도 1학기부터는 전국의 대학생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민주당은 지금부터 각계각층과 연대하고 국민과 함께해 반드시 등록금을 인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당장 내년부터 가계에서는 대학등록금에 대한 부담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장학금을 지급해 등록금 부담을 줄이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 새누리당 또한 아직까지 반값등록금에 대한 당론을 정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의 공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대학생연합은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는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선 출정식에 반값등록금 기습시위를 벌이며 박 전 비대위원장의 입장을 요구했다. 기습시위를 할 만큼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에 대한 열망은 절박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야당에서 제출한 법안이 언제 통과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대학생들은 현재 방학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조만간 내야할 2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도서관이 아닌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또다시 쥐꼬리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대학생들은 최저임금 인상을 보고 또다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을 시급 4860원으로 의결했다. 이는 올해 4580원에서 280원, 6.1% 오른 금액이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4860원의 최저임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루 8시간씩 30일 동안 근무하면 116만 원이 조금 넘지만 이 돈으로는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급 5600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은 이런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노동계에서는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구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근로자 대표위원 9인, 사용자 대표위원 9인, 공익 대표위원 9인 등 총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 중 공익 대표위원은 모두 노동부장관이 제청하고 있어 친정부 성향의 인사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전병헌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12일 현행 공익위원 임명 제청 방식을 노동부장관 단독에서 국회 3인, 대법원장 3인, 대통령 3인 제청 방식으로 변경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다.
전 의원은 “법 개정을 통해 사실상의 일방통행식 결정구조를 개선해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보다 많은 배려와 견해가 수렴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법안 제출 취지를 설명했다. 만약 전 의원이 제출한 법안이 통과된다면 해마다 노동계와 사용자 측의 갈등으로 인해 파행을 겪었던 최저임금위원회가 현재보다는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내년부터는 노동계의 입장도 지금보다는 많이 반영될 것으로 보이지만 새누리당이 법안을 그대로 수용할지 여부는 아직까지 안개 속이다.
서민 몰락의 핵 ‘하우스 푸어’ 대책도 제각각
무리하게 대출 받아 간신히 마련한 집이지만 이자와 대출금을 갚느라 가계가 파탄 지경에 이르는 가구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하우스 푸어는 현재 157만 가구로 추산된다. 이자와 대출금이 가계 부채의 핵이 되면서 서민들이 급격히 몰락하고 있다.
심재윤(가명·38)씨는 “서울에서 살다가 집주인이 전셋값을 너무나 많이 올려달라고 해서 많은 대출을 끼고 인천에 집을 사서 이사 왔다”면서 “하지만 이자와 대출원금 갚느라 허리가 휠 정도다.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매달 허리띠를 졸라매야 해서 애들한테도 제대로 못해주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심씨는 “그렇다고 집을 팔고 다시 서울로 나가기도 힘들고 집을 내놔도 팔릴 가능성이 거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이자율이라도 조금 낮아졌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이렇듯 하우스 푸어 문제가 사회 전반의 화두로 대두되자 정치권에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이다. 특히 대선 주자들은 해결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할 경우 서민층을 잡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박 전 비대위원장의 경우 아직까지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출마선언에서 “집 없는 사람들은 전셋값 오르는 것이 불안하고, 집 가진 사람들도 대출금 갚는 것이 불안하다”고 말해 공약을 통해 하우스 푸어 해결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세균 민주통합당 의원은 금융기관과 정부가 공동출자해 기구 또는 기금을 설립한 후 자산가치는 있지만 거래가 부진한 국민주택규모 이하 주택을 매입해 임대로 전환하겠다는 해법을 내놓았다. 이렇게 되면 주택 소유자는 임차인으로 지위가 바뀌지만 살던 집에서 계속해서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는 주택수당 도입과 하우스 푸어 주택의 임대조건부 매입 공약을 내놔 정 의원과 비슷한 해법을 제시했다.
손학규 민주통합당 고문은 12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사회포럼에서 “통합 도산법을 제정해서 균형 잡힌 채무 조정을 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겠다”고 밝혔다. 손 고문은 “파산을 쉽게 해서 파산자, 채무자들이 사회에서 완전히 그 능력이 사장되어 다시 올라오지 못하는 것을 막고, 그 생존 능력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손 고문은 금융기관이 ‘약탈적 대출’을 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의지 또한 표명했다.
하우스 푸어들은 누구의 공약이든 상관없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정책이 하루 빨리 나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골목상권, 막다른 골목에 처해
가계 대출의 피해 확산과 함께 자영업자들의 몰락도 정치권에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자리에서 밀려나며 받은 퇴직금으로 시작한 가게가 경기불황과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로 인해 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
동대문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48)씨는 “우리 가게 주변에도 치킨집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한데 몇 년 전 근처에 대형마트가 생기고 거기서도 치킨을 팔다보니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대형마트에서 안 파는 게 없어 손님이 모두 그리로만 몰린다”며 “요즘은 월세 내는 것도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지난 2010년 11월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은 전통상업보존구역 500m 거리 이내에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규모 점포와 준대규모 점포(SSM 등)의 출점을 3년 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만큼 골목상권의 붕괴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최근에는 SSM의 월 2회 강제휴무가 실시되며 붕괴된 골목상권 부활을 꾀했다. 하지만 일부 SSM은 ‘51%룰’을 이용해 강제휴업에서 제외되고 있다. ‘51%룰’이란 농수산물 매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51%가 넘을 경우 휴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규정을 말한다. 단, 매출은 전년 매출이 기준이 된다.
하지만 농수산물의 기준이 모호하고 지자체마다 기준을 달리 하다 보니 일부 SSM은 몇 번의 강제 휴무를 진행하다 51%룰을 적용받아 그대로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SSM의 월2회 강제 휴무는 직접적인 동네상권에 큰 도움이 된다.
인천 서구의 한 슈퍼마켓 주인은 “150m 안에 SSM이 두 곳이나 있다. 우리 슈퍼가 먼저 생겼지만 SSM이 들어오고 나서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런데 강제 휴무를 하는 날은 매출이 SSM이 들어오기 전과 비슷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슈퍼마켓은 SSM 강제 휴무일에는 일부 품목이 이른 오후임에도 품절이 됐다. 그동안 SSM이 슈퍼마켓 상권을 얼마나 침해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골목상권, 재래시장의 부활이 있어야만 지역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지적은 계속돼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실질적인 대책이 부재한 결과 골목상권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19대 국회가 민생국회를 표방하고 있지만 개원 초부터 정치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자칫 국회공전이 길어지면서 민생법안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할까 서민들은 걱정만 하고 있다.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