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정’ 여당 압박 카드
정치권에선 10월 재·보궐선거 이전 노 대통령의 탈당을 점치고 있다. 물론 대연정을 받아들이는 주체는 한나라당이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박 대표의 발언 수위에서도 대연정 수용은 요원해 보인다. 그렇다 해도 노 대통령의 탈당은 정치권에 심상치 않은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지속적인 노 대통령의 대연정 구애 공세가 여당 의원들에게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는 데서도 감지된다. 연정론과 관련, 노 대통령이 당과 상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다.
우리당 호남 지역 의원들은 한결같이 “호남의 반(反)한나라당 정서”를 주장하고 있으나, 이 같은 볼멘 소리도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앞에선 ‘기득권’일 뿐이다. 그렇다면 장기집권 플랜 2차 승부수는 무엇인가. 이는 노 대통령의 대연정 구상이 앞서 언급한 ‘기득권’ 포기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비치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한나라당이 대연정 거부가 영남 지역주의라는 기득권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노 대통령의 비난과도 맥이 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대연정이 싫다면 선거구제 개편이라도 동의하라는 노 대통령의 의지에서도 이 같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대연정 제안 후 노 대통령은 일관되게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지역구도가 해소돼야만 현재의 대결적 정치문화를 바꾸는 게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거나 권역별로 특정 정당이 의석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편은 한나라당뿐 아니라 우리당에서도 반대가 있을 수 있다. 영·호남 지역 의원들 모두 기득권을 일부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편이 이뤄지면 각각의 지역에서 현역 의원들의 20~30%는 당선권에 들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여야를 바꾼다는 발상
이처럼 현역 의원들의 차기 총선 당락과 직결돼 있는 문제이기에 정치판의 근본적인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대연정은 무리수일 뿐이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발판으로 한나라당 주도의 행정부를 견제하면 된다는 논리를 폈다. 여야를 바꾸겠다는 발상. 이는 정치판의 변혁이며, 거국 내각의 탄생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개헌 역시 마찬가지다. 개헌은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결국 개헌도 새로운 정치판 이후에야 가능한 시나리오인 것이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승부사 노무현의 특단의 카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최측근들의 비리와 맞물려 자신에 대한 대국민 지지도가 30%를 밑도는 상황, 노 대통령의 ‘재신임’ 카드는 야권의 ‘탄핵’을 간접적으로 조장하는 역할을 했으며 결국 여대야소 정국이 탄생했다. 재신임 정국이 정치권은 물론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는 와중에도 야권과 반노세력을 자극하며 17대 총선 직전 반전의 상황을 연출했던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 노무현. 때문에 연말까지 대연정 불씨를 살려나가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에는 또 한번의 대국민 시청자를 위한 반전 드라마 개봉의 복선이 깔려 있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이미 노 대통령은 ‘대연정 정국’ 기선 제압에도 성공했다. 개헌이라는 이슈를 선점함과 동시에 대연정의 수비수인 한나라당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청와대를 향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조롱과 막말은 탄핵 정국을 방불케 할 정도다. 그렇다면 연말까지 대연정으로 몰아붙인 후 노 대통령이 내밀 특단의 카드는 무엇인가.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통령-하야, 국회-해산’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북풍이 살을 에일 무렵,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한나라당을 향해 “하야할 테니 국회는 해산하겠는가”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임기 단축과 정치 복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노 대통령의 ‘임기 단축 고려’ 언급이 ‘정계 은퇴’를 의미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는 약한 정부를 운운하며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같게 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다시 말해 노 대통령의 개헌 구상은 변형된 내각제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는 차기 주자를 상대로 한 지분 공유로 이어진다. 거국 내각구성은 여야 차기주자의 행보에 있어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판의 형성과 개헌이 이뤄진다면 이는 그의 ‘임기 단축’과 맞물려 있다. 그러나 개헌을 통한 변형된 내각제로의 권력구조 개편은 퇴임 후 노 대통령의 정치권 복귀를 암시하는 대목인 것이다. 이른 바 ‘상왕정치’다. 때문에 노 대통령이 차기 주자를 중심으로 한 정치판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도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 현행 헌법상 대통령-하야, 국회 해산 가능한가
노무현 대통령은 자진해서 중도 사퇴할 수 있을까. 헌법 제68조 2항은 ‘대통령이 궐위(闕位)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궐위’는 대통령의 사임 성명만 있으면 된다”는 헌법학자들의 견해와 “대통령의 임기는 권리이자 의무”라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어쨌든 노 대통령이 ‘하야’를 천명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이다. 헌법 제71조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노 대통령의 사임이 이뤄지면 이해찬 국무총리가 대행을 하게 된다. 이어 60일 이내에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그러나 후임 대통령의 임기는 헌법에 보장돼 있지 않아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후임 대통령의 임기 역시 ‘5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헌법학자들의 해석과 전임 대통령의 남은 임기까지만 채워야 한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현행 헌법은 국회 해산을 보장하고 있을까. 87년 개정된 헌법에는 국회 해산과 관련된 조항이 없다. 다만 5공화국에서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할 수 있었다. 대통령은 국가의 안정 또는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에는 국회의장의 자문과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그 사유를 명시해 국회를 해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행 헌법에선 ‘대통령 국회 해산권’이 폐지됐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의 잦은 출석 거부는 국회를 마비시켜왔다. 이러한 파행이 장기전으로 간다면 곧 ‘국회 해산’이라는 시각이 많다. 문제는 ‘평양감사’를 택한 대통령을 따라 함께 평양감사가 될 우군만 확보하면 된다. 헌법 제49조는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의석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의석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가부동석인 때에는 부결된 것으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다. 노 대통령과 한 배를 탈 의원들 절반이 ‘장기 파업’을 선언하다면 나머지 의원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회 해산’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국회의원의 임기는 의무”라는 ‘위헌’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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