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 『육영수의 사랑 그리고 또 사랑』은 그 누구보다 자애롭고 지혜로웠던 육영수 여사의 극적이고 아름다웠던 삶을 추모하는 뜻에서 기록되었다. 육영수 여사의 탄생 일화에서 시작하여 그녀의 49년 생애를 기록하는 한편, 서거이후의 정황 그리고 그녀의 흔적이 차후 한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짚어보며, 현재 우리들이 삶에 치여 잠시 잊고 있었던 소중한 가치들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갖게 한다.
살아생전 육영수 여사의 이름 앞에는 ‘국모’, ‘퍼스트레이디’, ‘한국의 어머니’, ‘청와대의 1인 야당’ 등의 무수히 많은 수식어가 따랐다. 어느 것 하나도 그 무게가 가볍지 않은 이름들이다. 하지만 이 이름들은 육영수 여사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 이름들을 얻기까지는 육영수 여사의 남 다른 생각과 실천, 그리고 숱한 노력과 관심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는 그 노고를 잘 알고, 감사함을 느꼈기에 그에 대한 존경의 염을 담아 여러 수식어들을 만들어 붙인 것이다. 육영수 여사는 그렇게 얻은 새로운 이름과 존칭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다.
퍼스트 레이디로서 보냈던 10년 9개월의 시간 내내, 언제나 따뜻한 가슴으로 가난한 나라를 그리고 그 가난한 나라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국민들을 생각했던 육영수 여사.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의 곁에서 항상 함께 울고 웃었던 우리들의 어머니를 이제 다시 회상해본다.
▲ 책 속에서...
육 여사는 세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만큼은 절대로 ‘영부인’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것은 학교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의미이자,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배려였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학부형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자연스레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고,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근혜는 어머니가 서예 하던 모습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제4장 어머니의 마음 아내의 마음 - 교육에 대한 열의, 159P』
1970년 6월엔 한 사람의 비서와 함께 직접 나환자 마을을 찾았다.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성생농장과 천생원이 그곳이었다. 성생농장에 들어선 육 여사에게 나환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코는 뭉그러져서 제대로 된 형태가 아니었다. 손가락도 마디가 몇 개씩 떨어져 있었다.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간 것 같은 모습은 참혹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 사이에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너무 해맑았다. 게다가 아이들의 얼굴이나 몸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았다. 육 여사는 그곳을 둘러보고,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던 중 한 아이가 코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직 어린 이 아이는 엄마의 치마를 붙들고 있었다.
“내가 코를 닦아줄까?”
육 여사는 아이 앞으로 다가간 뒤, 아이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는 가방을 열어 손수건을 꺼내 아이의 코를 닦아 주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나환자 마을 사람들은 크게 감동을 받았다. 아이의 어머니는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육 여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는 진작 들렀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찾아와서 미안하다며 인사를 건넸다. 육 여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인자한 미소를 띠며 인사를 한 뒤, 지도자의 손을 잡아 악수를 했다.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이어 육 여사는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손을 잡으며 상냥하게 물었다.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고생이 많으시죠? 아이는 몇이나 되세요? 농사는 잘되시나요?”
『제5장 그늘진 곳에 빛을 - 진심을 다해, 202~203P』
식순에 따라 경축식이 시작되었다. 먼저 국민의례가 있었고, 애국가 제창이 이어졌다. 그리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마치자, 박 대통령의 경축사가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검은색과 흰색이 들어간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있었다.
박 대통령 특유의 음성이 마이크를 타고 장내에 울려 퍼졌다. 2층 왼편에 자리한 보도진의 카메라가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다. 박 대통령의 경축사는 ‘평화 통일 3단계 기본 원칙’에 대한 것이었다.
“오늘 감격과 희망의 광복절 29주년을 맞이하여 나는 먼저 남북의 5천만 동포 여러분과 더불어 뜻깊은 이날을 진심으로 경축하는 바입니다. … 조국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바로 그때였다. 아래층 뒷줄 가운데 쪽에서 총성이 울렸다.
“탕!”
대통령은 총성을 듣지 못했고, 경축사를 이어갔다.
“우리가 그동안…….”
검은 옷을 입은 정체불명의 사내가 앞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단상을 향해 뛰어가며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탕! 탕! 탕!”
대통령은 연단 뒤로 몸을 피했다. 곁에 있던 경호실장이 검은 옷을 입은 괴한을 향해 총을 쐈다. 경축식은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있었다.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던 육 여사의 상체가 순간 옆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10시 23분, 첫 총성이 울리고, 모두 일곱 발의 총성이 오가기까지의 시간은 채 20초가 되지 않았다. 괴한의 총알은 연단 뒤에 있는 태극기에 맞았고 대통령 경호원의 총에 여고생 장봉화 양이 맞아 희생되었다.
『제6장 하늘의 눈물 - 하오 2시, 222~223P』
박 대통령은 병원에서 육 여사의 운명을 지켜본 뒤,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와 간호사들을 만나 일일이 악수를 했다. 그리고 수고했다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한 뒤 발길을 옮겼다.
육 여사의 유해가 서울대학교 병원을 나설 때, 하늘도 함께 울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간 모습을 보이던 하늘은 갑자기 세찬 소나기를 퍼부었다.
이튿날 새벽 2시, 빈소에 몇 사람이 남지 않았을 때다. 박 대통령은 갑자기 유해가 안치된 대접견실로 내려와 시신을 끌어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천지를 울릴 것만 같은 통곡이었다. 염을 하기 전에는 시신을 끌어안고 울었으며, 염을 한 후에는 육 여사의 관을 끌어안고 다시 울었다.
『제6장 하늘의 눈물 - 하오 2시, 227P』
육 여사의 유해가 국립묘지로 향하던 19일 아침. 대한민국은 슬픔에 잠겼다. 박 대통령은 영정을 향해 왼쪽엔 근혜를 세우고, 오른쪽으로 근영과 지만을 세운 뒤 함께 묵념했다. 떠나는 아내에게, 떠나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가족의 마지막 인사였다. 육 여사를 태운 운구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6장 하늘의 눈물 - 군악대의 장송곡, 236P』
이영호ㆍ문무일 지음,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김선영 기자 aha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