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여론조사 맞을까”
기존 방식 한계… “응답인 성향 알 수 있는 시스템 도입 필요”ARS 전화번호부 추출방식 대표성·신뢰도 결여
RDD방식 휴대폰 조사 한계…그나마 휴대전화 대세
지난 4월 20일 KBS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분당을 지역구에서는 강재섭 한나라당 후보가 37.6%, 손학규 민주당 후보는 45.1%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이번 조사는 같은 달 17일부터 사흘 동안 각 선거구별로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그러나 같은 날 발표된 조사 결과는 딴판이었다. 매일경제 조사 결과는 강 후보가 41.8%의 지지율로 41.4%를 차지한 손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투표함을 개봉하기 전까지 결과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혼전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각 후보 측에서는 각자의 구미에 맞는 여론조사 결과를 수용하면서 유리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강 후보 측은 텃밭인 분당을 지역에서 보수성향의 부동층을 중심으로 지역민들이 결집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당내 대구·경북 인사들의 지원유세에 힘입어 보수대결집이 성사될 것이라는 기대다.
민주당도 자체 여론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손 후보가 강 후보와 오차 범위 내에서 박빙의 승부를 벌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분당은 주민의 42.8%(19만여 명)가 대학 졸업 이상의 고학력을 지닌 만큼 ‘경기도의 강남’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중산층이 많이 분포돼 있는 분당에서 보수층의 결집을 우려하고 있지만 젊은 표를 결집시키는 전략을 통해 승기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분당을 선거 판세가 박빙으로 예상되긴 하지만 적극 지지층에서는 지고 있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스럽다”며 “20~40대 투표율을 제고시키는 노력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 대변인은 이어 “분당을 비롯해 용인 지역으로 출퇴근 하는 주민들과 시민단체가 자발적으로 2시간 늦게 출근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지지층 결집과 투표 격려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지사 선거 편차 상당
강원도지사 선거도 여론조사 결과 역시 판이하게 나타났다. 지난 4월 18일 각 언론사 등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지만, 편차가 상당했다.
중앙일보가 자체 조사연구팀을 동원해 같은 달 14~16일 전화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엄 후보 지지율은 48.5%, 최 후보는 28.5%로 나타났다.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20%p를 보인 것. ‘적극 투표층’ 조사 결과에서는 엄 후보 51.9%, 최문순 31.7%를 보였다.
그러나 리서치뷰와 뷰앤폴이 이틀전인 15~16일 RDD(무작위번호추출) 방식을 이용해 ARS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엄기영 47.8% 최문순 43.2%로 나타나 오차범위 이내인 4.6%p 내에서 경합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 김해을에서는 야권 단일후보인 이봉수 국민참여당 후보가 김태호 한나라당 후보에게 오차 범위 내에서 우위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그러나 김해을 역시 각 기관마다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상반되게 나온다.
지난 4월 11일 리서치뷰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는 20.8%p까지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3일뒤 14∼16일 실시된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4.3%p 차이로 격차가 좁혀졌다. 또한 전날 KBS 여론조사에서의 격차는 이 후보 42.0%, 김 후보 38.1%로 3.9% 포인트 차이로 더욱 좁혀졌다.
이 처럼 선거 전에 실시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기관마다 서로 다른 것으로 나타나자 정치권은 물론,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성에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회의론이 불거지는 것.
지난해 6ㆍ2 지방선거에서도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개표 결과가 크게 다르게 나타났다. 강원도지사 선거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선거 일주일 전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계진 강원지사 후보는 민주당 이광재 후보에게 11~12%p 가량 앞섰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선거 일주일 전 여론조사에서 11~12% 가량 앞섰던 한나라당 이계진 강원지사 후보는 민주당 이광재 후보에 오히려 8.8% 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여론조사 결과
다르게 나오는 이유
그렇다면 같은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기관마다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가장 큰 이유로 조사 기법의 한계를 지적한다. 즉 조사원이 직접 응답자에게 의견을 묻는 방식과 ARS 방식의 차이, 전화번호부를 통한 표본추출과 RDD방식의 차이 등에 따라 표본 집단의 성향이 달라지게 된다는 것. 특히 전화번호부 표본추출 방식은 등재 가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점차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현재 집에 전화를 설치하지 않고 휴대전화만 쓰는 가구는 25%가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집 전화를 갖고 있는 가구 중에도 전화번호부에 등록하지 않은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일부 기관에서는 전화번호부 표본추출 방식은 정치적 성향이 편향돼 있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전화번호부 표본추출 방식은 투표율이 낮은 재보선이나 지방선거에선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 결과와 다르게 나오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분석이다.
전화면접과 ARS방식에 대한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이들 조사기법은 1992년 대선을 전후해 우리나라에서 여론조사가 대중화된 이후 가장 많이 활용돼 왔다. 전화면접은 상담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 질문하는데 비해 ARS는 기계에 녹음된 질문을 들려주면 응답자는 다이얼로 해당 번호를 눌러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ARS는 기계음에 대한 거부감 탓에 응답률이 떨어지는 대신 익명성이 보장되는 만큼 야당 지지층 의사가 좀 더 반영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화를 받은 사람 중에 5% 가량만이 대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화면접은 ARS에 비해 응답률(15~20%)이 높은 반면 솔직한 답변을 얻어내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두 방식은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집전화만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다.
대안으로 도입된
신기술도 문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최근 도입된 것이 RDD방식이다. 미국 등에서 보편화된 RDD는 지역번호와 국번 이외 마지막 네 자리를 컴퓨터에서 무작위로 생성한 뒤 전화를 거는 방법을 쓰고 있다. 전화번호부 등재를 기피하는 젊은층 등의 의견을 반영해 표본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됐다.
하지만 이 방식 역시 문제점이 존재한다. 전화번호부 미등재자를 상대로 조사를 실시 할 수 있지만 휴대전화 이용자는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조사 비용도 ARS보다 약간 비싼 편이다.
최근 휴대전화를 활용한 여론조사 방법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 이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은 휴대전화 조사 방식이 도입됐을 경우 25% 가량의 유권자층 여론이 반영 될 것이라 보고 있다. 하지만 걸림돌도 있다. 일반 전화는 지역번호 코드를 통해 응답자의 거주지를 파악할 수 있지만 휴대전화 이용자는 거주지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GPS 등 위치조회 기술이 발달됐다고 하지만 일일이 응답자의 위치조회를 하는 데는 법적 검토가 필요하고 시간적 제약이 따른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사생활 침해 여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이밖에 온라인 조사 방식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단점 또한 존재한다. 선거에 관심이 큰 연령층인 20~30대와 중장년층이 온라인과 선거에 보이는 관심도가 서로 다르게 교차하고 있어서다.
정치권은
여론조사 결과 ‘맹신’
정치권이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한계를 알면서도 의존도가 점차 커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번 재보선에서도 야권은 김해을에서 100% 여론조사로 후보 단일화를 실시했다. 한나라당 역시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공천 명단을 확정했다.
정치권이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유세 및 공천을 지속한다면 유권자들도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 기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론조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이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언론플레이를 하는 사례가 많아진 것 같다”면서 “한나라당의 경우 강원도에서의 특정 여론조사 기관에서 실시한 결과만 가지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지금 방식에서는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금까지 나온 여론조사 기법에 대한 대안이 마련돼야 하는 시점인 것 같다”면서 “여론조사기관들은 표본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저마다 새로운 조사기법을 도입했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표본의 정치적 성향 확산성에 대한 문제 때문이다. 현재의 여론조사 방식은 특정 표본군의 성향을 일반화하는 방식에 가깝다. 하지만 표본 한 사람 당 주변인들에 대한 정치적 성향까지 질문하는 방법을 더해 별도로 부가 환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한다면 어느 정도 오차를 줄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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