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의 영향력 안에 있는 검찰이 공정수사를 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 구성되는 특검이지만 의혹을 풀기는커녕 오히려 국민들이 분통을 터트리게 만들고 있다. 특검을 진행했지만 검찰 수사에서 단 한 발짝도 못나가 “이럴 바에는 특검 하지 말자”는 특검 무용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1999년 국내에 도입된 특검 제도지만 13년 만에 특검의 효용성을 두고 회의론이 힘을 얻고 있다. 특검보다는 국정조사나 청문회를 통해 의혹을 푸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별다른 소득이 없었던 디도스 특검에 야당은 “그럴 줄 알았다”며 조만간 진행될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특검에도 회의론을 품고 있다.
심지어 국민들은 특검을 ‘정치특검’이라는 모욕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고 있다. 권력에 굴복하는 검찰을 향해 부르는 ‘정치검찰’이라는 표현이 이제 특검에게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2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일 당일 박원순 후보의 홈페이지가 디도스 공격을 받았다. 최구식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원의 비서 공모씨가 연루됐으며 박희태 전 국회의장 비서 김모씨도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의 이름도 거명됐다. 국회의장,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의혹에 휩싸이며 ‘계획된 디도스 공격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됐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결과 공씨와 김씨가 사건을 주도했으며 ‘윗선’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의 발표에도 의혹이 해소되지 않자 결국 여야 합의 끝에 ‘디도스 특검팀’이 구성됐다. 국민들은 특검이 청와대 개입 및 사건 은폐 축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모 의혹 등 의혹의 실체를 규명해 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특별검사팀은 90일간 수사 끝에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포함 5명을 불구속 기소하는데 그쳤다. 국민들이 그렇게 원했던 ‘윗선’ 규명은 없는 것으로 결론 났다. 국민들은 다시 한번 실망감에 빠졌다.
내곡동 사저 특검, 더 크게 번지나
김기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와 박기춘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2일 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양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대정부 질문 일정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과 관련해 특검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하기 위해 각 당에서 2명씩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해 일었던 각종 의혹 중 하나인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이 특검을 통해 실체가 밝혀질지 여부에 대해 벌써부터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민들은 이번 특검이 대통령의 아들인 시형씨가 어느 정도의 이익을 봤는지를 밝혀내는 것보다 그나마 작은 의혹에 속하는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을 시작으로 더 큰 의혹에 대한 특검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이 높다.
역대 정권은 모두 임기 말과 차기 정권 초기에 진행된 특검을 통해 타격을 입은 바 있다. 따라서 국민들은 내곡동 사저 특검이 파장의 시작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내곡동 사저 특검과 함께 민간인 사찰 국정조사도 이뤄질 전망이어서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에게는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자신도 지난 정권의 민간인 사찰 피해자’라고 밝힌 바 있어 민간인 사찰 국정조사도 국민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특검이든 국조든 대선자금이 ‘핵심’
특검과 국정조사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뤄진 이상 한번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수위는 점점 높아져 결국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자금으로 향할 것이라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상관없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자금이 핵심이다”라며 “야당이야 당연한 것이고 여당 입장에서도 만약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을 꾀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결심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다만 수위의 문제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점쳤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상득 전 의원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특검 또는 국정조사 요구는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이상득 전 의원은 현재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2007년 대선 당시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만간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여기에 현 정권의 개국공신인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도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았다. 정 의원은 대선 직전 임 회장을 이 전 의원에게 소개시켜주고 1억 원가량의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렇듯 대선자금 의혹이 불거지면서 민주통합당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6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늘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30억 원을 이상득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며 “검찰은 즉각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자금에 대해 수사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집권 초기부터 자신과 친인척·측근에 대한 각종 의혹에 휩싸였던 이 대통령으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박 전 비대위원장의 결심 여부에 따라 정권 말에 ‘식물대통령’으로 추락할 수 있는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역대 정권 특검도 용두사미가 대부분
지금까지 9번의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9명의 특별검사가 임명됐다. 특검이 진행되면 국민들은 ‘뭔가 새로운 사실이 나올 거야’라는 기대감을 가졌다. 몇몇 특검은 정권을 흔들 만큼의 파괴력을 지닌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특검은 의혹의 실체를 제대로 밝히지 못해 용두사미 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특검 후에는 무용론이 제기돼 왔다.
지난 2003년 진행된 대북송금 특검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북한에 5억 달러를 비밀송금 했다는 의혹에서 출발했다.
특검팀은 “북한에 송금된 돈의 액수는 총 5억 달러이며 이 중 5000만 달러는 현물로 보내졌다”며 “5억 달러에는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김대중 정부가 북측에 건네기로 약속한 1억 달러가 포함돼 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또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임동원 국가정보원장 등 핵심인사가 구속되었다.
특히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특검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면서 정치권과 아울러 재계에도 상당한 충격을 던졌다.
2007년 10월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은 자신이 50여억 원의 삼성그룹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고 폭로하면서 그 파장이 전 사회로 번졌다. 그동안 무성한 소문으로만 돌았던 삼성의 비자금의 실체가 김 전 법무팀장의 양심고백을 통해 밝혀지면서 삼성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김 전 법무팀장은 에버랜드 사건 로비, 중앙일보 위장 계열분리, 미술품 구입 의혹 등 삼성의 전 방위적 불법을 폭로했다. 삼성은 비자금과 분식회계를 인정했으나 검찰과 법원에 대한 로비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에버랜드 재판을 맡은 판사에게 30억 원을 건네도록 지시한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결국 특검이 구성돼 김 전 법무팀장이 제기한 의혹을 조사했다. 1,2심 재판부는 허태학, 박노빈 등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이건희 회장 등이 피고인인 ‘SDS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를 내렸다. 이 때문에 ‘봐주기 특검’, ‘면죄부 특검’이라는 오명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밖에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특검도 진행된 바 있다.
지난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 전 비대위원장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BBK는 누구의 회사입니까”라며 “오늘 아침 신문에 BBK의 실제 주인이 우리 당의 모 후보라는 비밀계약서까지 있다고 나왔다”며 이명박 대통령을 에둘러 지목했다. 또한 박 전 비대위원장은 “차명계좌에 위장전입에 위증교사, 금품살포, 거짓말까지...”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특검이 진실을 밝히지 못하며 특검 무용론을 더욱 부추겼다.
‘특검=특수변호사’ 불신 속 국정조사 간다
야당에서는 국민들도 특검 무용론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면서 국정조사나 청문회 등을 통해 의혹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디도스 특검이 국민들을 전혀 납득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른 특검도 결국에는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끝날 것이라는 얘기다. 그나마 여야가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서도 야당은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권재진 법무부장관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상 효과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행히 여야가 19대 개원을 앞두고 민간인 사찰의 국정조사를 합의함에 따라 의혹의 실마리가 풀릴지 국민들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다만, 국정조사 대상을 현 정권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전 정권까지 할 것인지를 놓고 여야가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이석현 민주통합당 민간인불법사찰 국정조사특위 간사는 6일 “이명박 대통령이 증인으로 나와야 한다”며 대통령을 증인으로 신청할 것임을 밝혀 증인 채택을 놓고도 날선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도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저축은행 사태도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당은 저축은행 사태를 국정조사하게 되면 대통령의 대선자금 실체 중 일부가 드러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새누리당의 수용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대야소의 국면이지만 야당 전체 의석이 새누리당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상황이라 새누리당이 의석수를 앞세워 일방적인 국정운영이 힘든 상황이다. 또한 대선이 앞두고 있어 셈법에 따라 현 정부 출범 이후 제기됐던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여야가 사안을 두고 합의만 이뤄지면 각종 의혹에 휩싸였던 인물들이 청문회에 서는 모습이 공개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이 대통령의 레임덕 가속화는 불을 보듯 뻔하고 동시에 ‘식물정권’이라는 비아냥도 함께 받을 것으로 보인다.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