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을 패배시 칩거… “야권 ‘삼국지’ 다시쓴다”
분당을 패배시 칩거… “야권 ‘삼국지’ 다시쓴다”
  • 전성무 기자
  • 입력 2011-04-19 11:44
  • 승인 2011.04.19 11:44
  • 호수 885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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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봉황(鳳凰)될까 봉될까
4.27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손학규 민주당 후보가 지난15일 경기 성남 KT본사 앞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나오는 직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대권 입지 강화’ VS ‘손학규 대안론’ 솔솔
유시민·정동영·정세균 재보선 결과 ‘주판알’ 튕겨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운명의 기로에 섰다. 4·27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그는 이번 선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선거에 임하는 각오부터가 남다르다. 승리했을 경우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가 굳건해진다. 반면 패배했을 경우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는 것은 물론, 당 내 계파 수장들과 함께 삼분하고 있는 권력지형 개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분당을 선거에 출사표를 내던진 손 대표의 득과 실을 따져봤다.

4월 재보선에 뛰어든 후보들 간 불꽃 튀는 전쟁이 시작됐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14일 민주당 구원투수로 나선 손 후보는 상대인 강재섭 한나라당 후보와 상반되는 행보로 주목을 끌었다. 강 후보가 홍준표 나경원 최고위원 등 당 내 핵심인사들 수십 명을 총동원해 유세전에 임한 반면 손 후보는 ‘나홀로 선거’ 방식을 택했다. 이날 손 후보는 분당을 찾아 낮은 자세를 이어가면서 표를 호소했다.

손 후보는 자신의 경기지사 시절 성과를 강조하면서 중산층 표심을 공략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힘 있는 여당’이미지 전략에 맞서 손 후보 개인을 부각하는 ‘인물론’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강 후보가 낡은 정치인 이미지를 가졌기 때문에 손 후보의 참신하면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대권주자 이미지를 내세운다면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아울러 야권 대표 주자인 ‘손학규를 살려달라’며 감정적으로 읍소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정권 심판의 다른 표출인 셈이다. 당보다는 손 후보 개인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선거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첫 선거 운동은
미금역 사거리서


손 후보는 오전 6시30분께 유동인구가 많은 미금역 사거리에서 첫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손 후보는 출근길 시민들에게 “안녕하세요. 인사 좀 드리겠습니다”며 고개를 숙이는 등 2시간 가까이 한 자리를 지키면서 시민들과 만났다.

손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나온 강봉균 원혜영 김재윤 이찬열 의원,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등은 손 후보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만 봤다.

손 후보는 출근인사 중 강 후보와도 만나 서로 “열심히 하시라”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복장과 유세차량, 플래카드 등을 한나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으로 물들인 강 후보와 달리 당색(黨色)도 자제하는 모습이다.

미금역 사거리에는 ‘이대로 안 되면 손 들어주십시오, 변화가 필요하면 손 잡아주십시오’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플래카드 색깔은 민주당의 당색인 초록색이 아닌 흰색이었다. 20∼30대로 구성된 선거운동원들은 청바지에 흰색 상의를 입었다.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손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대표적인 중산층 도시인 분당에서 승리, 우리나라의 변화를 이끌겠다”면서 “분당의 민주시민에게서 변화가 보인다.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각오로 선거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 후보는 출근 인사를 마친 후 분당에 위치한 게임업체 네오위즈게임즈를 방문했다. 명예 사원증을 받고 게임을 시연하는 모습이 주목을 끌었다. 과거 경기도지사 때 벤처기업단지인 킨스타워와 판교테크노밸리 등을 유치한 실적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분당구 내 근로자 1만5000여 명이 IT업종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래성장 동력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보여 젊은 벤처기업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겠다는 의도다. 손 후보는 네오위즈게임즈를 방문한 직후 NHN 본사 앞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나온 직장인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손 후보 분당 출마 왜?

손 후보의 분당을 선거 출마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인물 영입에 실패한 책임론이 첫 번째 이유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손 대표는 밤중에 (영입 대상자) 집으로 찾아가는 등 모든 열과 성을 다했지만 사양했기 때문에 스스로 분당에 출마하겠다는 강한 결심을 했다”고 했다.

두 번째는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 강화를 위한 모험이다. 손 후보로서는 이번 재보선이 대표 취임 이후 처음 맞는 전국단위 선거라는 점에서 선거 승리를 통해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한나라당 텃밭인 분당을을 빼앗아 온다는 것은 정치적 상징성이 클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차기 대권주자 지지도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고,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야권 주자 가운데 두 자리 수를 보이며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유 대표와 손 후보가 최근 미묘한 감정 대립 상황에 놓이면서 정치권은 이에 대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유 대표는 김해을에서 민주당 후보를 경선에서 승리함으로써 탄력을 받고 있다. 이에 유 대표가 분당을 선거에 출마한 손 후보를 지원하겠다고 하자 손 후보측은 사실상 이를 거절했다.

유 대표는 지난 13일 오전 10시30분 국회에서 열린 야4당 대표가 재보선 야권연대 협상 타결을 공식 선언한 자리에 앞서 손 후보를 만났다. 그는 손 후보를 향해 “(김해을 경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아깝게 돼 대표로서 당 안팎의 어려움을 겪진 않을까, 지난해 지방선거 때도 내가 굉장히 어려웠을 때 손 대표가 중재를 잘 해줬는데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어 유 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분당에 (선거일까지) 13일간 있으라고 하면 있겠다”며 손 대표의 선거운동을 직접 돕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유 대표의 제안에 대해 손 대표는 이날 오후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야4당 승리를 위해 한 얘기다. 구체적인 실무 검토를 해야겠지”라며 즉답을 피했다. 사실상 유 대표의 선거 지원을 우회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차기 대권주자로서 경쟁자인 유 대표에게 ‘빚’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현재 손 후보의 대선주자 지지율은 한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 어떻게든 분당을 선거를 독자적으로 승리해야 당내외 지지 기반을 확실히게 넓힐 수 있다.

또 이번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분당을 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 승리 했을 경우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의 야권 연대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이명박 정권의 레임덕도 덩달아 가속화 될 것이라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손 후보가 분당을 출마를 결심한 것이 이 때문이다.

패배에 따른 위험 부담
어느 정도?


승리에 따른 전리품이 화려한 만큼 패배로 인한 위험 부담도 따른다. 손 후보가 분당을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가 강화될 것은 분명하지만 패배할 경우 당내 입지 축소와 함께 ‘손학규 대안론’이 고개를 들 수 있다. 민주당 내 주요 계파 수장인 정동영 정세균 최고위원 측에서 반기를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당권과 대권사이를 저울질 하며 상황을 관망하는 모습이다.

정세균 최고위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손 후보가 패배했을 경우 대권경쟁에 본격 뛰어들며 손 대표 체제와 각을 세울 공산이 높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가 당권에서 멀어졌다 하더라도 ‘손학규 계’를 제외한 특정 세력의 우군으로 노선을 선회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당밖의 유시민 대표의 독주도 예상된다. 손 대표가 대권가도에서 멀어질수록 야권에선 유시민 대세론이 힘을 받을 공산이 높다. 이 때문에 손 후보에게 분당을 선거 승리는 각 계파 수장이 당내 패권 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유 대표와 대선 지지율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돼버렸다.

반면 분당에서만 패할 경우 손 후보의 출마가 당초 당내 ‘차출론’에서 시작됐고, 한나라당 텃밭이라는 불모지가 전쟁터라는 점 때문에 책임과는 무관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손 대표의 추후 행보가 분당을 선거 결과에 따라 큰 변화가 있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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