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인력 빼가기로 LG전자 울렸다
현대차그룹, 인력 빼가기로 LG전자 울렸다
  • 김나영 기자
  • 입력 2012-07-03 08:42
  • 승인 2012.07.03 08:42
  • 호수 948
  • 31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현대차그룹의 타 기업 인력 향한 러브콜, 차량용 반도체 진출하며 심화돼
- 현대차ㆍ기아차ㆍ현대모비스에 이어 현대오트론까지 LG전자 연구원 끌어가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현대차그룹(회장 정몽구)이 현대오트론을 설립해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면서 대규모로 타 기업의 인력들을 끌어와 구설수에 올랐다. IT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경력연구원 채용에 이어 지난 4월 현대오트론 출범 전후로 대거 스카우트에 나섰는데, 특히 LG전자(부회장 구본준)의 연구원들이 그 타깃이 됐다는 전언이다. 이렇게 연구인력의 대이동 현상이 지속됨에 따라 현대차와 LG 사이의 기운이 심상찮다는 말까지 흘러나오는 현황을 들여다봤다.

LG전자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LG전자의 임직원 퇴사율은 25.6%다. 같은 기간 동종업계이자 경쟁사인 삼성전자 임직원 퇴사율은 9.85%다. LG전자의 퇴사율이 2.5배 이상 높은 것이다.

재직자 중 4분의 1에 달하는 퇴사자 수치는 대개 이직을 비롯해 학업·계약만료·건강 등의 사유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IT업계에서는 “LG전자 연구원들이 KT와 현대차로 대거 이동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LG전자 퇴사율 25%의 상당 부분에 기여한 것이 바로 두 기업”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LG전자에서 퇴사한 한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이 자동차-IT융합에 나서면서 LG전자 등 타 기업의 해당직군 연구원들을 끌어가는 것을 익히 봐 왔다”면서 “전에 LG전자 MC사업본부 연구원들은 현대차 계열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와 관련한 메일을 단체로 받았을 정도다”라고 털어놨다.

또한 IT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순수하게 경력직 모집 공고를 내고 원서를 받아 인력을 선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래도 물밑 작업을 벌여 인재를 물색하는 사례가 더 많이 회자되고 있다”면서 “기존에 삼성전자가 KT 임원과 연구원 빼가기로 도마 위에 올랐던 것처럼 이제는 KTㆍ현대차가 LG전자의 연구원들을 곶감 알 빼먹듯 경쟁적으로 끌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계열사별로 LG전자 연구원 수집해

앞서도 현대차그룹은 LG전자를 비롯한 IT업계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경력직을 대거 채용한 바 있다.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은 지난해 6월 현대차그룹 경력직 모집을 통해 반도체·소프트웨어·전장품 설계·자동차-IT융합 서비스 전략 등 분야별 연구원을 대폭 늘렸다. 특히 현대모비스의 경우 경력직 채용 이전부터 LG전자 MC사업본부 연구원들을 불러 모았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또한 유독 LG전자에서 인력이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 IT업계에서 “현대차의 인력 빼가기는 LG전자의 침체와 맞물려 탄생한 작품”이라는 비아냥까지 흘러나오는 실정이다.

LG전자에 정통한 관계자는 “구본준 부회장 복귀 이후 ‘인화’를 버린 LG전자가 연구원들에게 성과 위주의 업무 효율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에 따른 보상은 부족한 실정”이라며 “핵심인력으로 분류돼 최고의 대우를 받는 몇몇 최우수인재도 있지만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동료들의 잇단 퇴사와 보다 높은 급여조건으로 인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스티브 잡스가 생존하던 시절, 애플의 엔지니어들은 ‘가능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하는 것, 혹은 거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이 목표였던 잡스의 철학에 매료됐다”면서 “때문에 다소 무리한 잡스의 요구에도 부응해 최고의 성취를 이뤄냈고 퇴사율 역시 업계 최저였던 것은 LG전자가 다시금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라고 덧붙였다.

 
향후 기술유출 소송 가능성 ‘불씨’로 남아

한편 현대차가 계속해서 LG전자 등 타 기업 연구원들을 끌어올 경우 자칫 기술유출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IT기업에서는 입사 시 연구원들이 연봉계약서와 함께 서명하는 보안유지각서에 향후 1~2년 간 동종업계로의 이직 금지 등의 조항을 담고 있다. 때문에 기업들은 동종업계에서 인력을 끌어올 때 해당 기간 동안 협력업체에 위장 취업을 시키는 등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현대차의 경우 지금까지 완성차에 주력해 전자ㆍ전기와 다른 업종으로 분류돼 왔다. 하지만 현대오트론으로 차량용 반도체 진출과 자동차-IT융합을 선언한 이상 동종업계라는 틀에 충분히 묶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최근 효성과 LS산전 간 초고압직류송전(HVDC) 기밀유출 공방,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와 LG디스플레이(LGD) 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밀유출 공방에서 볼 수 있듯이 연구원 이직으로 인한 기술유출 분쟁은 이미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상태다.

이와 관련, LG에릭슨은 경쟁사인 노키아지멘스로 이직한 연구원 4명을 상대로 전직금지청구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지난 1월 승소했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도 LG에릭슨은 노키아지멘스로 옮긴 연구원 3명을 상대로 같은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바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ㆍ기아차, 현대모비스의 경력직 채용에 이어 현대오트론에서 자동차용 반도체 인력을 모아 구성한 것은 맞다”면서 “사실 신입만으로 자리를 채울 수 없어 기존 인력을 끌어올 수밖에 없는 부분은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소송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단은 같은 연구원이라도 구성된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보안유지각서 침해 여부나 기술유출 소송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