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당 사무차장, “금뱃지만 달고 당뱃지는 왜 안다냐”
“당 뱃지 안달라면 들어오지도 마!”민정당 창당과 함께 최초의 국민심판이었던 11대 국회의원 선거는 민정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다. 80년 ‘서울의 봄’을 구가하던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씨는 이미 정치규제에 묶여 가택연금과 은신을 하고 있을 때 였다. 그 배경속에 이른바 신군부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그와 함께 당내에서는 바야흐로 권정달 사무총장과 이종찬 원내총무, 이상재 사무차장의 무소불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들 ‘당의 실세’들의 권한은 참으로 큰 것이어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라는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 였다.
이렇듯 권력이 ‘실세’ 들에게로 집중되자 당에서는 여러 가지 웃지못할 촌극들이 벌어졌다. 모든 당직자는 물론이요 국회의원들 까지도 이들에게 잘보이기 위해 갖은 추태를 연출했다. 특히 본인의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현실을 이해 해주시길 바랄뿐이다.
일례로 이 실세들은 출근하자마자 방으로 찾아가 ‘아침 문안’을 드리는 것은 물론이오. 퇴근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가 서로 90도 허리를 굽혀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했다. 당시 중앙당의 국장을 역임했던 모 국회의원(당시는 전국구 국회의원을 당의 국장으로 발령)은 현관까지 달려나가 바라보지도 않는 그들의 자동차 뒤 꽁무니에다 대고 90도 인사를 하는 모습을 필자도 여러 번 봤다.
더욱 웃지못할 촌극은 이 사무차장 방 앞에서 펼쳐졌다. 당시 이상재 사무차장은 국회의원이 아니였다. 그러나 사무차장이라는 ‘실세’로 항상 일반 국회의원은 물론 국장급 국회의원들에게 따지고 호통을 치곤 했다.
“당신들을 말야 왜 국회의원 뱃지만 달고 당 뱃지는 안다는 것야? 당이 당신들을 국회의원에 당선시켰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거야? 당이 국회에 파견한 사실을 모른단 말야?”
당뱃지를 안다는 것과 당의 권위를 살리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든 국회의원 뱃지가 꼴사납다는 이야기 일텐데……··
아무튼 그 많은 국회의원들이 그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꼼짝 않고 당하고 있는 것 까지는 좋았다. 그 이후 이 사무차장의 방 앞에만 가면 급히 국회의원 뱃지를 빼내고 당뱃지를 달기에 바빴으니 만약 그를 뽑아준 국민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참으로 아득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한번은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당시 부대변이었던 고인이 된 이종률씨(동아일보기자 출신)가 매일아침 열리는 사무차장 주재의 국실장 회의에 참석했을 때 이 사무차장의 큰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신은 앞으로 당 뱃지 안달려면 이 방에 들어오지 마쇼!”
마침내 이종률씨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다. 그 역시 만만찮게 나왔다. “당 뱃지가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안 그렇습니까?” “당원으로서 주인의식을 갖고 당에 대한 애정만 있으면 됐지 그 깟 당뱃지를 달고 안달고로 당에 대한 충성심을 가늠한다면 그건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
이 사무차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다 하며 웃어넘길 수 도 있지만 사실 이 모두가 당시의 정치상황을 한마디로 말해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곧 우리 정치의 불행이자 비극이기도 했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만 터지누나!
국회의원도 아닌 사무차장이 국회의원을 향해 그렇게 호통을 칠 정도였으니 이들 실세들의 권한이 얼마쯤 이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밤낮으로 그들 실세들의 방은 들끓었고 오히려 당대표인 이재형씨의 방은 썰렁했다.
이 대표는 상징적인 존재. 이른바 “얼굴마담”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결코 그런 상황을 좌시하진 않았다. 국회의원의 권위가 무시되고 있다고 판단되면 될수록 더 원칙을 중시했다. 그 과정에서 이 대표는 늘 강조하는 것이 ‘당헌당규’였다. 당헌과 당규대로만 한다면 모든 것은 다 해결된다는 것이다.
“당헌.당규대로 해라!”
이 원칙에 관한한 어떻게나 철저하셨는지 아주 사소한 것만 몰라도 혼쭐이 나기 일쑤였다.
특히 대표 보좌역으로 있던 필자는 아예 달달달! 당헌당규를 외워야 했다. 그런데 이 문제로 언제나 제일 많이 지적을 당하고 비판을 당한 사람은 다름아닌 권정달(당시 사무총장)씨 였다.
어찌 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 알다시피 군인의 속성은 속전속결이다.
하나하나 절차를 따져가며 원칙대로 하는 것은 ‘말만 앞세우는 일’로 여겨졌을 것이고 원칙에 따라 제대로 절차를 밟아 하라는 이 대표의 철칙과 항상 충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령 아침에 사무총장의 방에서 “이런 성명을 내자”는 결정이 났다고 하자. 원칙대로 하자면 당연히 이것을 당 대표 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야 한다. 그러면 결재를 받으러 올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대표는 “회의도 거치지 않고 어찌 그런 성명이 나왔소?” 라고 반문한다.
하나에서 열까지 이런 식이었으니 사무총장과 당대표 사이에 마찰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나중에는 그나마 그런 형식적인 절차마저도 무시되었고 당 대표도 모르는 결정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으며 심지어는 당 대표 방에 오는 사람까지 견제를 할 정도 였다. 결국 후에 몰아닥칠 더 큰 파란은 이미 약속되어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어떻든 이 과정에서 정작 곤욕을 치르는 건 필자였다. 권정달씨가 회의석상에서 “당헌당규대로” 대표에게 무안을 당하고 난후 문을 열고 나오자 마자 맨 먼저 부딪치는 얼굴이 필자였다.
그러면 한 마디가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저 영감은 무슨 절차를 그렇게 따지냐! 정말 죽겠구만”
이렇게 혼잣소리만 하는데 까지는 좋았다.
한번은 끝내 충돌을 하고 말았다. 중앙집행위원회가 열리던 날이었다. 아마 그날도 권정달씨는 당대표로부터 질책성 비판을 받은 모양이었다. 회의장은 9층 이었는데 회의가 끝날 즈음 계단을 오르고 있던 필자는 권정달씨와 맞닥뜨렸다.
그리곤 튀어나오는 고함소리
“야 임마 넌 도대체 영감님을 어떻게 모시는 거야?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나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너무도 급작스럽게 당한 일이었다. 그때 주변에는 당시 대변인이었던 박경석 의원, 서울신문의 이동화 기자, 그리고 중앙일보 고흥길 기자(현 국회의원) 등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모욕감이 치밀어 왔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야, 임마라니요! 저도 애가 중학생입니다. 지금 누구에게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하시는 겁니까?” 내 목소리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권정달, “미안하다” 사과했지만…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필자를 끌고 계단을 내려왔다. 곧 강창희 의원이 달려왔다.
강창희 의원은 당시 권정달 사무총장의 보좌역이었는데 당 대표와 사무총장과의 갈등사이에서 서로 동병상련의 아픔을 함께 나누던 사이였고 사석에서는 형, 아우하며 지내던 사이였다.
“형이 참으소! 아까 형이 나와 친하고 하니까 내 동기 인줄 알았나 봐요 아무튼 참아요”
강창희 의원은 권정달씨의 육사 후배였다. 물론 필자 강창희 의원과 친하고 하니까 동기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필자가 아무리 어리고 못났다 해도 엄연히 당대표를 모시고 있는 공식 보좌역이다. 사무총장이 아니라 설령 대통령이라 해도 한사람의 공인에게 그렇게 할 수 는 없는 것이다.
나는 끝내 강창희 의원을 뿌리치고 사무총장의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조금 전 행동이 자신이 생각해도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권정달씨는 웃음부터 터뜨렸다.
“아 장 의원이 나이가 어떻게 되지? 난 강창희하고 동기인줄 알았어?…”
“아무리 동기인줄 착각하셨다해도 다중이 있는 앞에서 그러시면 됩니까? 만약 제가 대표를 잘못 모시는 일이 있으면 사석에서 불러 말씀하시는 게 순서지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제 입장은 뭐가 되고 제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아…몰라서 그랬다니까…미안해 미안해!”
결국 사과는 했지만 그날의 해프닝은 그렇게 일단락 되었다. 내가 겪은 그 해프닝 그야말로 당시 당의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었고 그 속에서 막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은 내가 받아야만 했던 충격은 실로 큰 것이었다. 그러나 이건 이 대표가 받아야 했던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음호에 계속]
[장경우 전 국회의원] kwa815@naver.com
#프로필
●1942년 4월 12일생
●경기중·고/고려대 경영 졸
●대한축구협회부회장
●대한수영연맹 명예회장
●제 11·13·14대 국회의원
●한국캠핑캐라바닝연맹 총재(현)
●세계캠핑캐라바닝연맹 아·태 지역위원회 의장(현)
장경우 전 국회의원 kwa8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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