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정치권 개인정보는 부지불식간에 정부기관이나 대기업에 빠르게 넘어가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바로 피감기관인 정부 부처와 대기업의 ‘대정치권 로비 수단’으로 인적 정보가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과 정보기관의 대정치권 로비 과정에서도 인적 정보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국정원과 삼성의 인적자원 활용 노하우를 알아본다.
국정원 국회 보좌진 2000명 지인 명단 ‘보유설’
“삼성으로부터 황당한 경험을 했다”
민주당 고위 당직자 Y씨의 첫 마디다. 그는 최근 삼성중공업 협력 업체 T사 직원 이모(42)씨의 작업중 추락사 관련 노조대책회의에 참석했다.
이씨가 건조중인 선박에서 이동하다 10m아래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미 삼성중공업은 2004년부터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해 2011년 11월22일에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사장과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이 ‘안전한 거제 만들기’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지만 5개월만에 터진 사고였다.
Y씨는 민주당 당직자로서 사고 경위와 실태, 그리고 안전 점검 등을 알아보고 당 차원에서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 지를 알아보기 위해 사적으로 간 자리였다.
하지만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아 Y씨에게 뜬금없게 삼성에 다닌다는 먼 친척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1년에 얼굴 한번 볼까 말까한 8촌 지간인 이 인사는 “삼성중공업관련 조사를 벌인다고 들었다”며 “어떻게 처리하려고 그러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던 것. Y씨는 황당하면서도 어떻게 알았는지가 궁금했다.
삼성직원 매년 30명씩 지인명단 업데이트
내용인 즉, Y씨가 사고대책회의에 참석할 당시 삼성 직원도 와 있었고 생소한 얼굴을 본 직원이 수소문해 Y씨의 신분을 알고 회사에 보고해 윗선에서 직원 인적 네트워크 명단을 돌려 직원중에 Y씨와 ‘친인척’이 있는 것을 조사해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이었다.
황당한 일은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Y씨는 먼 친척에게 ‘신경쓸 필요 없다’고 간단히 전화를 끊었지만 가슴 한켠 찜찜한 구석마저는 지울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친인척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지 얼마 안돼 이번에는 성균관대 직원이면서 삼성 명함을 갖고 있는 한 인사와 인사 담당 전무가 직접 Y씨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성대 직원은 ‘무슨 문제가 있느냐’, ‘작업자 실수로 일어난 사고다’,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안전사고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는 등 장황한 설명과 설득이 이뤄졌다. 하지만 옆에 있는 인사 담당 전무는 한 마디 언급도 없이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었다.
Y씨는 “설명하는 성대 직원보다 가만히 있는 인사 전무가 더 신경쓰이더라”며 “자칫 8촌이 어렵게 들어간 삼성에서 좌천당하거나 쫓겨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Y씨는 어떻게 자신을 알고 찾아왔는지를 들었을 땐 황당함의 극치를 느껴야 했다. 8촌 친척이 전한 말에 따르면 삼성은 입사때 아는 지인 30명 명단을 강압적으로 적게 한다는 것이다. 한칸이라도 비우면 인사고과에 반영된다는 반협박마저도 간혹 듣기도 했다는 것.
특히 주로 청와대 국회 등 정치권, 정부부처와 산하기관, 공기업, 대기업, 전문직 등 사회 저명한 인사들 위주로 리스트업을 하고 있고 한번만 작성하는 게 아니라 매년 업데이트까지 시켜 DB화해 갖고 있다는 말을 듣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삼성 직원이 2만5000명 수준으로 75만 명이고 고위직의 경우 사후 퇴직자까지 관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100만 명에 육박하는 인적 정보를 갖고 있는 셈이다.
Y씨가 “대한민국에 삼성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이 없는 셈이다”고 실토하는 배경이다.
삼성이 이처럼 직원들의 인적자원을 ‘로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과 유사한 정부기관으로는 국정원을 꼽을 수 있다.
국정원을 피감기관으로 하는 국회 정보위 소속 한 인사는 “국정원 역시 비슷하다”며 “국회 보좌진으로 등록하면서 신원보증인 3명을 사무처에 제출하게 돼 있는 데 그 명단이 국정원으로 넘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국정원 관련 문제가 생길 경우 지인들을 통해 설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국회의원 한 명당 국회 보좌진은 총 7명이다. 인턴까지 채용할 경우 9명. 신원보증인 3명씩 적을 경우 한 의원실당 제출하는 지인 명단은 21명이다. 여기에 국회의원 숫자가 300명이면 인턴 직원을 제외하더라도 2100명의 국회 보좌진들이 있다. 즉 6300명의 국회 보좌진과 관련된 인적정보를 알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사회 특히 정치권이 학연, 혈연, 지연으로 얽히고 설켜있다는 점에서 국회보좌관 인적네트워크는 국정원에게 매우 고급정보일수밖에 없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일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매개가 되고 한 발 더 나아가 삼성의 경우처럼 협박의 수단으로 변질될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대한민국 대표적 정부부처인 국정원 그리고 대표적인 삼성의 대정치권 로비가 비슷하다는 점은 여타 정부기관이나 기업 대정치권 업무가 대동소이할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똑똑한’ 지방대보다 ‘인맥’ 좋은 SKY 선호?
이번 일을 겪은 민주당 당직자 Y씨는 “왜 대기업이 학점도 좋고 스펙도 잘 쌓은 지방대생보다 스펙도 덜 하고 학점도 그리 높지 않지만 스카이(서울대·연대·고대) 출신을 선호하는 줄 알겠다”며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학연·혈연·지연으로 계급화 돼 있는 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