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들어야지…‘그들만의 축제’가 되면 괴물, 흉물로 남을 것 같아”
서울시민·해외 관광객·동대문 상인 모두를 만족시킨다면서, 하나도 못 건질 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의 대형 사업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일부 동대문 상인, 시민들의 걱정거리로 전락했다. 기존 패션타운과 동떨어진 전시 행정, 인근 지역과의 소통부족이 원인이다. DDP는 준공을 1년 앞둔 시점임에도 현재 내부 콘텐츠 계획이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오세훈 전 시장의 계획안을 모두 취소시킨 것. 박 시장은 건물 구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은 다 뜯어고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공들여 계획해야할 콘텐츠를 급하게 만든다면 운영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DDP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동대문 패션타운 관계자들이 가장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DDP를 과거 시정과 현 시정의 충돌로 보고 있다. 계획안을 전면 철회한 이유 또한 정책 색깔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시선이다. ‘서울시의 랜드마크’, ‘세계적인 디자인 센터’를 취지로 시작된 DDP는 2010년 당시에도 2230억 원의 공사비가 책정됐다. 동대문 패션타운과 DDP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는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사업을 진행한 오세훈 전 시장과 아마추어적인 후속 대응으로 일관하는 박원순 현 시장 모두에게 책임을 돌렸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첫 삽은 오세훈 전 시장의 개인적인 감상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프랑스 유럽 여행 당시 옷 한 벌에 2000~3000만 원의 수익을 남기는 것에 충격을 받은 오 전 시장은 그 원동력을 디자인으로 보고 ‘디자인을 발전시키고 연구해보자’고 제안했다.
오 전 시장은 2007년 당시 “동대문운동장 근처에는 3만 개의 섬유산업 업체가 있다. 패션업종은 고부가가치 사업이다. 이곳에서 패션 및 디자인 사업을 진작시킬 수 있는 컨벤션 시설, 전시실, 교육 시설을 마련할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동대문 패션타운 관리자로 5년 가까이 지낸 A씨는 ‘오 전 시장의 의욕으로 시작된 DDP가 동대문에 도움이 될까’라는 첫 질문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지만, 대화가 진행될수록 현 DDP 상황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을 가했다.
A씨는 DDP의 가장 우려스러운 점을 ‘백지상태’인 콘텐츠로 봤다. A씨는 “현재 외관을 제외한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 확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기본 스케치를 서울디자인재단에서 가지고 있는데 참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009년 착공과 함께 콘텐츠가 개발됐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의 결정하에 이 때 안건들은 모두 버려졌다.
애초 계획보다 좀 더 시민들과 밀접하며, 문화 휴식적인 측면을 강조하려는 것이 박 시장의 방향이다. 새로운 방향에 어울리는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서울시, 서울디자인재단, 동대문 관광특구 관계자 등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이 같은 늑장 대처가 벌써 반 년 이상 이어졌다는 것.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1월에도 “아직까지 DDP에 대한 문화, 예술 관련 콘텐츠 구축을 위한 자문단 계획 등이 확정되지 않았다. 문화, 예술과 관련해서는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야 되는데 아직 아무런 것도 진행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공사 이전부터 치밀하게 연구하고 준비해야될 콘텐츠 사업이 걸음마도 못 뗀 상황이다. 2009년 4층 건물로 지은 DDP ‘홍보관’ 또한 의미가 크게 퇴색됐다.
지난 4월에는 박 시장의 참석하에 ‘시민이 사랑하는 DDP 만들기’ 워크숍을 개최했지만 굵직한 방향도 없이 참여 시민들에게 활용방안에 대해 질문, 떠넘기는 듯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2006년부터 기획된 DDP는 2009년 3월말 착공에 들어갔으며 준공 예정일은 내년 7월이다. 개관은 2014년 3월로 알려져 있다.
박 시장, DDP 애물단지로 볼까
A씨가 생각한 DDP의 다른 문제는 정체성이었다. DDP는 동대문 패션타운 중심에 ‘디자인’ 이름을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컨벤션, 동대문운동장기념관, 동대문역사관, 리소스센터, 도서관 등으로 역할을 분산시켰다.
DDP에 대한 주변 상인들은 ‘무엇을 짓고 있는지 아는가’ 라는 질문에 “모르겠다. ‘디자인’자가 들어가니까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을까”, “디자인이 곧 패션이니까 패션 관련 건물이지 않을까” 하는 답변이 전부였다.
A씨는 DDP가 인근 지역과 동대문 디자이너·상인들을 위한 지원으로 색깔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대문 패션타운이 과거에 비해 ‘침울한 수준’으로 떨어진 이 마당에, ‘이상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만 전시하는 것은 서로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A씨는 DDP 일대 지역에 시급히 보완해야할 점으로 휴식공간과 주차장을 꼽았다. 인프라적인 면에서 부족한 점으로는 디자이너와 봉제업자들의 여건을 꼽았다.
A씨는 “다들 공감하겠지만 DDP 주변과 동대문 패션타운에는 휴식공간과 주차공간이 없다”며 “매년 동대문 패션타운에 3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데 버스를 소화할 수 있는 주차장을 가진 패션타운이 한 두 곳일 정도로 극소수다. 봉고차가 버거운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휴식공간도 마찬가지다. 주머니를 열지 않고서는 앉아서 쉴 곳도 없다. 방문객들 휴식 공간을 만드느니 한 칸이라도 더 쪼개서 분양을 받으려는 사업자들의 마인드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DDP가 완공되면, 휴식공간은 한정 지역이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주차공간은 전혀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DDP는 이미 자체 주차공간이 협소하다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유럽 디자이너들, DDP 관심 있겠나”
동대문 패션 인프라에 대해서 A씨는 “여기는 수만 명의 디자이너가 있다. ‘디오트’ 같은 건물은 1400여 개의 점포, 1400명 이상의 디자이너가 있다. 다들 아직 성장이 많이 필요한 디자이너들이다. DDP가 디자인의 허브, 디자인 메카가 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 교육이 중요하지 않을까”면서 “DDP 내에서 양질의 교육이 열리고 관세·무역·유통 등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어린 디자이너들의 짐을 덜어준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A씨는 ‘8월말이나 9월초에 워크숍이 한 번 더 개최 된다더라’는 소식을 듣자, “4월 워크숍 같이 진행된다면 한번 더 개최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싶다”면서 “당시에는 시민연대, 문화연대 등 다양한 이들이 참석했지만 그 이전에 동대문 지역상인·시민들과 현실적이고 상세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아직 DDP를 모르는 상인들을 위해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한 홍보만 하지 말고 현수막 홍보 등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수년간 지켜본 결과 DDP는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큰일 날 가능성이 많다. 세금만 낭비되지 않도록 잘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